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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4 / 부활 후 둘째 주일

 

진리가 무엇인가? 2

요한 8:31-38

 

곽건용 목사

 

빌라도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매주 설교전문을 이메일로 보낸 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0년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가장 많은 답신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매주 2백 명이 넘는 분들에게 설교문을 보내는데 답신이 한 통도 없는 때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땐 설교가 제대로 배달이나 됐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답신을 보내는 분이 있는데 대개는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라거나 “감사합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는 신약학을 전공한 학자에게서 온 전문적인 의견과 조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신도들에게서 왔는데 그 중 다수는 “다음 주 설교가 기대됩니다.”였습니다. 지난주일 설교 마지막에 오늘은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반드시 하겠다고 ‘장담’했기 때문에 그런 답신을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간을 저는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지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했듯이 제가 하려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기대하고 있다고 하시니까 “더 좋은 답이 있나?”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설교에 대해 평소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됐고 제가 할 말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게 이 질문을 한 분은 지난주와 오늘 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저도 그에 못지않게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바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던진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말씀했습니다. 질문하는 빌라도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진리가 무엇인지는 제한된 사람의 생각과 언어로는 담을 수 없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답하지 않은 이유 못지않게 궁금한 점은 빌라도가 왜 이 질문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빌라도는 왜 이 질문을 했을까요? 그는 자기 명령 한 마디에 목숨이 좌우될 한 초라한 유대인에게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엄청난 질문을 왜 했을까요? 정말 그게 궁금했을까요?

 

본디오 빌라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만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자료만 갖고도 그가 온 마음을 다해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그걸 추구한 자가 아니란 사실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가 진리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의 삶은 진리를 추구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기 때문에 하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폭군’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란을 일으킨 사마리아인들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총독 자리에서 쫓겨났으니 말입니다. 이런 자가 던진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진지했다고는 보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우린 그가 왜 이런 질문을 예수께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빌라도는 그랬다 치고 현재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과연 “진리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묻고 있습니까? 우리는 왜 기독교를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진리에 대한 관심과 물음은 빌라도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열린 종교와 닫힌 종교

 

흔히 종교는 ‘열린 종교’와 ‘닫힌 종교’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컨대 기독교는 열린 종교이고 불교는 닫힌 종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독교 안에도 기독교를 열린 종교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고 닫힌 종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불교나 유대교, 회교 안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닫힌 종교’는 어떤 절대적인 권위를 상정하고 무조건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반대로 ‘열린 종교’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종교입니다. 열린 종교의 하나님은 한계가 없는 분, 테두리가 없이 한없이 크고 무한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는 분으로 한계가 없는 분입니다. 반면 닫힌 종교에서 하나님은 정해져 있는 원칙 같은 분이고 고정된 체계로 받아들여집니다.

 

요즘 우리는 두 개의 성서학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20년 가까이 해온 것으로서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서 있고 다른 하나는 올해 처음 시작한 것으로서 토요일 오전에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립니다. 둘 다 제가 이끌기 때문에 저는 주말이 되면 몸도 마음도 바빠집니다. 금요일 저녁 9시에 첫 번째 시간이 끝나고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9시부터 두 번째 시간을 갖는데 두 성서학당의 주제가 완전히 다르므로 두 강의를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좀 바쁘고 힘들긴 하지만 그런 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학당 모두에 진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토론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서학당이 좋은 점은 모든 참가자들이 질문하고 또 대답도 한다는 점입니다. 저만 대답하는 게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이 대답하는 성경공부는 그리 많지 않을 터인데 우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뿌듯합니다.

 

저는 성서학당은 진행하면서 기독교를 닫힌 종교로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인 자신이란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기독교를 닫힌 종교로 만드는 당사자는 기독교인들 자신입니다. 물론 목회자의 책임도 없진 않지만 목회자들을 앞뒤가 꼭 막힌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평신도들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이런 현실에서 희망을 봅니다. 이유는, 사정이 이렇다면 기독교를 열린 종교로 만들 수 있는 당사자 역시 다름 아닌 평신도들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중에 어느 편이 더 변화하기 쉬울까를 생각해봤습니다. 현재까지의 제 결론은 목회자보다는 평신도가 더 바뀌기 쉽다는 것입니다. 먼저 평신도가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회자도 따라서 변하고 목회자가 변하면 교회도 변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열린 교회’로 바꾸고 기독교를 ‘열린 종교’로 변화시킬 주역은 평신도들이라고 믿습니다.

 

진리를 알면 너희가 자유하게 되리라!

 

예수님은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빌라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진리’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진리에 대해 하신 말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진리가 무엇인지는 정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진리를 알지니......”라고만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진리를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하지만, 예수님은 진리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으신 채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가 자유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염두에 두신 진리는 ‘자유’와 뗄 수 없이 관련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진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로워진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왜 진리를 알면 구원을 얻는다, 영생을 누린다고 말씀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거라 말씀하셨을까요? 혹시 진리는 자유를 누릴 조건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란 뜻이 아닐까요?

 

진리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게 되면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얼핏 보면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예수께서 이전에 진리가 뭔지를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물론이고 다른 복음서에도 예수께서 진리가 뭔지 정의하셨다는 얘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예수님이 착각하신 걸까요? 아니면 복음서 기자가 착각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진리가 뭔지 정의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서 기자의 의도였다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한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데 있겠지요.

 

결론부터 미리 말씀하자면 예수님에게는 그것만 알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의 ‘진리’ 또는 절대자인 하나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진리’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들에서 했던 부흥회의 주제는 하나같이 ‘복 받는 비결’이었습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여기서 부흥사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복 받는 비결을 자기가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유치한 얘기 같지만 ‘진리’에 대해서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것만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만병통치약 같은 그 무엇을 기독교의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진리는 아예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자유로워지려면 그런 진리를 얻거나 갖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럼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비유해봅니다. 불교에서 수도승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합니다. 길고 길 세월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겨울에는 동안거, 여름에는 하안거, 그뿐 아니라 몇 년을 작정하고 바깥출입도 안 하고 수행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는 분들이 수도승들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은 수행의 결론인 셈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와 좀 다릅니다. 기독교는 말하자면 깨달음에 해당하는 강렬한 원초적인 체험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을 흔히 거듭남(born-again)의 체험, 중생의 체험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체험을 매우 강렬하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좌우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는데 그것으로 만족하고 거기서 멈추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깨달아야 할 진리는 이런 원초적이고 강렬한 체험을 한 후 그것을 삶의 과정에서 풀어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지난 주일에도 얘기했던 부자 청년의 경우를 예로 풀어보겠습니다.

 

진리는 없다!

 

한 부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는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됐는지는 모릅니다. 스스로 일해서 부자가 됐을 수도 있고 부모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겠지요. 좌우간 그는 많은 걸 가졌지만 뭔지 모를 공허감이나 신앙적 갈증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예수께 와서 뭔가를 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예수께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영생’이랍니다. 그는 ‘영생’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냐는 겁니다. 이런 그를 물질적 부를 가진 자가 종교적 재산까지 가지려 욕심을 부린다는 식으로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태도가 매우 진지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복음서 기자의 서술에서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예수님도 그가 얼마나 진실한지 아셨으므로 계명을 지키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던 겁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이 청년에게는 실망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하긴 이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계명들이었을 뿐 아니라 웬만한 유대인은 다 지키려고 노력하는 계명들이었으니 만일 그가 비범한 대답을 기다렸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청년은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나를 따라오너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대답을 오해합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계명 또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그 동안 해온 일은 ‘진리’를 모르고 행한 잘못된 일이었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지 말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한 게 됩니다.

 

우선 예수님은 십계명 같은 계명 지키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계명의 근본정신을 무시하고 외형적으로만 지키려는 태도를 비판하신 적은 있지만 계명 준수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무효화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제자가 되는 것과 대립시키는 일은 예수님 뜻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청년이 영생을 얻는 길과 계명을 지키는 일을 별개로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계명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영생을 얻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아니면 계명을 지키는 것만 갖고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말씀하시고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계명 지키는 일을 보조하는 그 무엇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계명 지키는 일과 영생을 관련시키지 못한 청년의 몰이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계명을 지키는 일과 무관하지도 반대되지도 않습니다. 이 둘은 연장선상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일 따름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십계명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젠 말씀을 마칠 시간입니다.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던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얘기가 시작됐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빌라도는 왜 이 질문을 했을까 라는 문제를 거쳐서 “진리를 알 것인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관심을 옮겼습니다. 이를 다 살펴본 지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것만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걸 알게 되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진리는 애초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에게 진리란 매순간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나를 비우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매순간 체험하는 바로 그것이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진리이고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다, 매순간 나를 변화하게 해주는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 이외에 다른 진리는 없다, 만일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렇게 말씀할 수 있겠습니다.

 

빌라도의 물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는 진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Rilke 2013.04.22 04:59

    목사님,


    Here and Now! 좋은 결론입니다.


    저도 일전에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에 대해서 설교를 한적이 있었는데, 저의 결론은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즉 진리는 예수님인데, 진리를 앞에 두고 진리를 묻는 빌라도에게, 진리이신 예수님은 "할말이 없구나"였습니다.


    대학원 수업때 "Advanced Organic Chemistry" 와 "Carbohydrates" 을 들었 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수업시간에 도대체 교수님이 무슨말을 하는지, 시험문제가 무슨뜻이지를 파악을 못했던때가 이때였습니다. 교수님들은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면서, 더이상 쉽게 설명을 못하겠다고 했는데도, 알아 듣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요즘, 일요일 오후에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무료수학교실을 하고 있느데, 어제 SAT 수학을 준비하는 아주 총명한 11학년들에게 제가 생각해서 가장중요하고 기본인 문제를 몇개 내었는데, 도대체 풀지를 못하더라구요. 설명을 하는데도 학생들의 눈빛을 보니까 이해를 못하는것 같고. 그런데, 중요한것은 답은 그들의 머리속에 다 있는데, 그것들을 연결시키지를 못하는것 이었어요.


    그러면서, 옛날 대학원수업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때 답을 알고 있었는데, 서로 연결을 시키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진리앞에서 진리가 무었인지 모르고 질문하는 어리석음, 진리앞에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아니 보려고 하지 않은 굳은 마음, 그때 예수님은 무슨생각을 했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안타까움. 예수님을 몇년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고 하던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을때, 바로 그때 느꼈을 안타까움, 안스러움.


    "So close", 빌라도는 진리에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타까운것은 아주 가까이 와 있었지만, 진리와 접촉 (Contact)이 되지를 못한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쩌면 오늘날 저를 포함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아주 가까이 와 있지만, 접촉은 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좋아합니다. 그 대화의 핵심도 역시 접촉 (만남)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설교에 Response가 없다고 하시길래, 시간을 내서 답을 해봅니다. 아내랑은 자주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항상 의문시 된 문제들을, 고민하는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고 같이 생각하고, 답을 찾는것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요즘, 설교가 안 올라온다고 저한테 뭐라 합니다. 무슨 기술적인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하는데, 빨리 올려 주시지요. 요즘 설교가 안올라와서 옛날 설교를 듣고 읽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내용에 대해서 설교가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최근 모세 설교도 너무 마음을 울렸다고 하고.


    Here and Now,


    Cheers,

  • ?
    곽건용 2013.04.23 05:29

    역시 릴케 님이 답을 주시네요.


    진리....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진리에 대해선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응답이 없다고 해서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


    요즘 설교가 잘 안 올라가는 것은 첫째, 그 담당자가 한국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그만.... 


    우린 교인이 많지 않아서 담당자가 자릴 비우면 이리 됩니다. ㅠㅠ


    아브라함, 모세, 다 기억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나성 근처에 사시면 식사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요.

  • ?
    Rilke 2013.04.24 19:52



    한참 전도서를 공부할때, 노자의 도덕경과 선불교의 깨달음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이를 전도서와 연결을 해보려고 했었지요.


    그러면서, 성경공부반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인데요,


    선불교의 고승인 조주스님의 이야기입니다.


    [ 조주화상이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온 적이 있습니다.”


    화상이 “차 한 잔을 마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승려가 찾아왔다.
    조주화상은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승려는 “온 적이 없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조주화상은 “차 한 잔을 마셔라”고 말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본 원주가 물었다.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
    모두 차 한 잔을 마시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조주화상은
    원주, 자네도 차 한 잔 들고 가게”라고 말하였다.]



    목사님의 진리라는 화두를 생각하면서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덕분에 엊저녁에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진리"에 대해서 모처럼 찾아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한복음과 전도서는 제 전문분야 (?)라서.


    CH Dodd 의 설명이  Raymond Brown의 설명보다는 명쾌했고, 또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비슷해서 좋았습니다. 예전에 김진홍목사가 캘빈은 성경속에 들어 갔다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Dodd 와 Brown 은 요한복음속에 들어갔다 나온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나성 근처에 살지를 않아서, 식사는 다음 기회로


    목사님도, 차 한잔 하시는것이 어떨까요 (머리도 식힐겸 ?)


    Cheers,


  • ?
    김주영 2013.04.25 00:05

    안식일교인들에게 '진리' 라는 것은

    제칠일 안식일을 포함한 몇가지 신조들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진리 교회" 라는 민초들의 언어가 그런 뜻이었지요.


    어렸을 때 집에 '영생으로 인도하는 진리' 라는 책이 있길래

    뭔가 하고 보니까 여호와의 증인에서 나온 것이더군요. 

    '어, 이사람들도 진리를 가졌다고 말하네'  놀란 기억이 납니다. 


    진리를 그렇게 격하? 시킨 섹트적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진리라는 것은 없다" 는 말씀은  야속하게 들릴 수 있을 겁니다^^


  • ?
    곽건용 2013.04.25 14:52

    차 한 잔 하지? 


    크, 좋습니다. 차 한 잔 하지요.


    진리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랍니다. 적어도 여기선 말입니다.


    진리를 행하면 되지 말만 자꾸 하면 더 헛갈리는 게 바로 진리이니 말입니다.


    '그게 간장인지 콜란지 꼭 마셔봐야 아냐?' '거시긴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아냐?'는 농담도 있긴 하지만


    얼핏 보면 그게 간장인지 콜란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거시기와 된장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그게 간장인지 콜란지 알기 위해서


    전  앞뒤로 살피고 색깔을 비교해보고 성분을 분석하느니 차라리 마셔보렵니다.


    김주영 님의 말씀, "그런 진리란 것은 없다"가 야속하게 들릴 수 있단 말씀,


    그렇습니다. 저도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제게도 야속하게 들립니다. ^^


    전 진리를 매우 구체적이지만 


    소수의 사람들 머릿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기가 듣고 배운 것, 그래서 그것만이 옳고 다른 건 다 틀렸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


    어느 종교에나 다 있습니다.


    그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만난 어떤 분이 있습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는데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저보다 10년은 더 연세가 많은 분인데,


    이 분이 거의 모태신앙인입니다.


    60여 년을 교회에 다녔고요.


    성경공부도 남 못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와 제 주위 사람들과 우리들이 모여서 하는 성경공부에 몇 번 참석하시더니


    화가 난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하는 일에 화를 내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 


    깜짝 놀랐습니다. 조심하느라 했는데 내가 무슨 잘못 말한 게 있나 하고 말입니다.


    근데 그분이 화가 난 까닭은,


    당신이 60여 년 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아직까지 이런 얘기(우리 그룹에서 하는 신앙과 성경에 관한 얘기들)를 


    단 한 번도 못 들어봤기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겁니다.


    그 동안 당신이 다녔던 교회 목사들은 다 뭐였냐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제가 뭐 대단한 얘기나 했는가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단한 진리를 말하지 않았고 제게는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전 다만 믿음이라는 게 단순히 '믿으면 구원받는다'란 말이 전부가 아니다,


    예수 믿는 게 그리 단순하진 않다,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도 애쓰시지만 나도 애써야 한다, 


    성서란 책이 주문 외우듯 외운다고 깨달아지는 책이 아니다,


    우린 성서를 꼼꼼히 읽어야 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진실하게,


    교리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진솔하게 읽어야 한다,


    성서는 다른 텍스트들처럼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 


    모든 텍스트가 그렇듯이 거기에는 쓴 사람의 의도가 담겨 있고


    전하려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전하기 위해 구사한 문학적, 미학적 수단들이 들어 있다,


    이것들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면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성서는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얘기는 거기서 하나님이라는 인격(person)을 만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서를 텍스트로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지만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으려면, 


    다시 말해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것을 텍스트로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거기서 종교적 진리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진리가 '어떻게' 전해지는가,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가,


    어떤 예술적, 미학적 표현 안에 담겨 있는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등등입니다.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습니다.


    이분들과 모여서 성경공부를 토요일 오전에 하고 있습니다.


    아차, 여기가 안식일교인들 모임이지요.


    실례했습니다. ^^


    그 시간이 여러분들 예배드리는 시간이겠군요. 


    그럼 우린 예배드리는 심정으로 성경공부해야겠군요.

  • ?
    student 2013.04.25 15:56

    정말 마음에와 닿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목사님 성경공부에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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