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피아노(A Naked Piano)

by 최종오 posted Apr 22, 2013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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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의 여름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2012년 7월말 우리가 이사를 할 땐 이틀 연속 비가 내렸다.

 

트럭을 빌렸다.

일꾼은 고용하지 않았다.

시간당 20달러짜리 인부 둘을 두 시간 정도 고용하면 80달러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

그 돈을 절약하고 싶었다.

 

이삿짐을 나르는데 나빼고 나머지 세 인간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사 갈 때마다 이삿짐은 거의 나 혼자 나른다.

 

그런데 피아노가 문제였다.

1층에 살 때는 나 혼자 어찌어찌해서 피아노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집은 2층이라 그게 어려웠다.

 

피아노는 우리 식구 넷이서 달라붙어서 옮겼다.

내려오는 동안 피아노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밑에까지 내려왔을 땐 완전히 분해가 되었다.

사람이 안 다친 게 다행이었다.

 

우리 집의 물건은 대부분 얻어온 것들이다.

그 중에 피아노는 우리 집의 가보와 같은 물건이었다.

세상을 일찍 떠난 이미라 집사님이 물려준 것이었다.

 

인부를 고용했으면 2시간이면 끝났을 일을 꼬박 이틀을 옮겼다.

게다가 이틀 내내 비는 추적거리며 내렸다.

 

나를 뺀 나머지 가족들은 직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혼자 남아 짐을 나르는데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전에 일을 갔던 가족들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힘센 멕시코 사람까지 한명 데리고 왔다.

 

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옮겨진 짐을 보니 무슨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침대는 뼈대가 다 부서져 있고 피아노는 조각조각 분해되어 있었다.

 

트럭 이틀 빌린 값, 인부 인건비, 우리가족 일 하루 공친 것, 그리고 물건 다 부서진 값,...

시간적, 재정적 손실이 너무 컸다.

하지만 인건비 80 달러는 끝내 아끼고야 말았다.

 

산산이 부서져 알맹이가 다 드러난 피아노.

난 누드김밥은 많이 봤어도 누드피아노는 처음 봤다.

망연자실한 나는 그 피아노를 한동안 방바닥에 방치해 놨다.

 

2주쯤 후에 피아노 조각들을 다 모았다.

그리고는 망치와 못을 가져다가 얼기설기 못질을 해서 다시 벽에 세워놓았다.

피아노는 온몸에 프랑켄쉬타인(?)처럼 못 자국이 나 있었다.

.

바이엘을 전공(?)한 우리 가족들이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했다.

그렇게 핍박(?)을 받고도 아름다운 소리가 나왔다.

그 피아노는 피아노나라의 스데반인가보다.

.

그 피아노를 두고 고국에 귀국한지 어느덧 7개월이 다 되어간다.

갑자기 그 피아노가 그립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 가족을 자기 등위에 태우고 있을 그 피아노가 그립다.

 

 2012-08-09 23.12.31 누드피아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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