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의 계절에 생각해 보는 교회과 정의

by 아기자기 posted Dec 25, 2010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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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교회가 생기면, 빈민구호소와 감옥도 틀림없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기와 부정으로 부자가 되더라도 그 부자는 교회에서도 상석을 차지하고 기품 있는 성직자가 개인적 관심을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의 복음(Gospel of Dives)을 설교하고 낙타와 바늘구멍의 비유를 무의미한 장식적 동방 설화로 격하시킨다.”

 

“빈민층과 범죄층이 존재하고, 어린 소녀들이 추위에 떨면서 삯바느질을 하고, 헐벗은 아이들이 맨발로 거리에서 지내는 도시에서 이방인에게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모금을 한다. 이방인에게 선교사를 보내다니! 우습고도 슬픈 일이 아닌가?”

 

“평화의 복음, 선한 의지의 복음을 전할 선교사를 세상 끝까지 보내기 위해 기부금을 많이 걷는 곳에 이교도마저 놀랄만한 불결함과 죄악이 있습니다.”

 

“‘자비’(Benevolence)보다 더 위대하고 ‘자선’(Charity)보다 더 존엄한 ‘정의’(Justice)는 이 잘못을 시정하라고 명령한다.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정의는 부정할 수도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우리가 예배나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정의가 내려치는 칼날을 빗겨갈 수 있을까? 굶주린 어린이가 신음하고 지친 어머니가 울고 있는데, 교회를 세운다고 해서 저 불변의 법칙의 명령을 피할 수 있을까?”

 

“정의가 도덕의 계층에서 가장 상위의 덕목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정의는 최우선적인 덕목이다. 정의보다 상위에 있는 덕목은 반드시 정의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정의를 내포하여야 하며 정의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중략) 사람이 진실로 관대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워야 하듯이 인간 사회가 자비에 기반을 두려면 먼저 정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빈곤에서 생기는 고통과 야만성을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섭리로 돌린다거나 또는 두 손을 모으고 만물의 아버지(All-Father) 앞에 가서는 대도시의 궁핍과 범죄의 책임을 미룬다면 형식상으로는 기도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신성모독이다. 영원하신 존재(Everlasting)를 폄하하는 행위이다. 정의로우신 분(Just One)를 욕되게 하는 행위다.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기보다 차라리 세속의 지배자가 되려고 할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개미의 언덕과 같은 교회를 발로 차버릴 것이다! 우리 문명 속에서 곪고 있는 죄악과 비참에 대한 책임은 전능자(Almighty)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창조주(Creator)는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고 이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돼지가 먹이를 향해 돌진하듯이 우리는 서로 찢고 뜯으면서 이 선물을 진창 속에 뭉개고 있다!”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진보와 빈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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