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일본의 패권주의

by 평화교류협의회 posted Apr 30, 2013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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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나다 토론토 중앙일보 칼럼난에 실린 삼육대학교  명지원 교수(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 상생협력대표)의 글을 소개합니다.


 

토론토 중앙일보



(명지원 칼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일본의 패권주의

기사입력 2013-04-26



한반도를 둘러싼 중일 패권주의가 심화되고 있다지난 2012년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국유화로 중일 양측의 갈등은 더 심화되었고 동북아에서의 패권을 위한 일체의 양보없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이는 또한 최근 중국의 커지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환태평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아세안에서의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의 적극 참여와 연관되어있다.

 

지난 21일 일본의 2인자 아소 부총리겸 재무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26일로 예정된 한일외교장관회담 취소를 통보한 지 하루 만에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과 대리인으로 온 66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이 뉴스가 큰 화제인 것은 참배자 집계를 시작한 1989년 이래로 가장 많은 정치인이 참배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1876년 운요호사건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까지의 전사자 246만 여명의 전몰자의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야스쿠니 신사가 외교문제로 비화된 것은 1978년 일본 정부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등 2차대전 전쟁책임자들을 가리는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을 기획주도해 평화를 해친 죄로 기소된 28명 가운데 A급 전범 14명을 극비리에 합사(合祀,죽은 이의 영혼을 한 곳에 모아 제사 지냄)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일본 정부의 의도는 미국과 연합국의 날조된 재판으로 전범의 오명을 뒤집어 쓴 국가적인 영웅들의 명예를 회복코자 하는 것이었다강제 징용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성찰없음은 이러한 역사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야스쿠니 신사의 야스쿠니라는 말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지만한국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에 의해 1,000만 명의 인명 희생과 약탈과 파괴의 엄청난 전쟁 피해를 입은 국가들을 불편하게 해’ 왔다.

 

2006년 2월 국회에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A급 전범들에 대하여 연합국에 의해 도쿄재판이 열렸다거기서 7명이 사형당했다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이 사람들을 재판한 것이 아니다일본에 있어서 그들이 범죄인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지난 해 12월 중의원 선거 과정에서는 자학사관에 입각한 담화들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하며 소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고 있다일본 정부 각료들과 국회의원들의 이번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는 대내적으로는 엔저 정책을 바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경기회복의 청신호가 나오는 가운데 70%에 달하는 아베 내각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이뤄 이후 전후 평화헌법의 근간 조항인 헌법 제9조의 개정을 위한 것이다.

 

주변국들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이 유엔군 파견 등을 통한 집단안보 참여가 아닌 독자적인 군사력을 동원하기 위한 재무장 전략으로 보기 때문이다이는 지난 해 9월 일본 정부가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의 국유화 선언 이후 중국대만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지난 22일에는 일본 국우단체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이 센카쿠열도에 접근하자 중국과 대만이 순시선을 파견하는 등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제국주의 전쟁과 관련된 독도센카쿠 열도북방4개섬과 관련하여 한중러시아와 지속적으로 영토 분쟁을 꾀하고 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요동반도당시 대만 땅이었던 센카쿠열도를 점령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독도를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일본이 소련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북방4개섬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소련의 참전과 점령에 의해 빼앗겼으며 이 땅도 원래 일본이 100여 년 전에 아이누족에게 빼앗은 땅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은 일본의 패전 후 2차 세계대전 종료를 위하여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오끼나와를 일본에 돌려주지 않고 센카쿠열도를 오키나와 현에 편입시켜 관할한 후 1972년 일본에 반환할 때 센카쿠열도도 돌려주었다일본이 청나라러시아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지배권을 확실하게 하고요동반도를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야욕으로 벌인 제국주의 전쟁인 청일전쟁으로 빼앗은 땅을 일본에 돌려준 것이다. 1943년 11월에 미국영국중국의 지도자들은 전후 영토문제를 밝힌 카이로선언에서는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땅은 모두 돌려준다고 하였고, 1945년 9월 2일 포츠담선언을 통해 재확인되었다.

 

일본이 강점한 한반도를 비롯한 점령지는 일본의 패전으로 반환하고독도와 센카쿠열도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조약 위반이요책임있는 국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다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점령했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던가제국주의 침략으로 강탈한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하면 센카쿠열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나므로 일본의 대외정책 기조가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의 21세기 지향에 부응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다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역사적 성찰을 기대한다/


 

명지원

삼육대학교 교수/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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