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구원을 바라지만...

by 고바우 posted Apr 30, 2013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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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많은 경우 경제적으로 부요한 나라입니다.

우리의 행복이 풍요나 부요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주 구원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가야할 하늘나라의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말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분과 함께 나누며 경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믿는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구원을 주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령을 마음에 모신 자들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나누며 살고 경험하는 삶을 사는 기쁨을 누립니다.

이것이 관계로 인한 구원입니다.

죄악이 많은 세상에 살면서 

이미 오신 성령을 모시고 함께 나누며 경험하는 삶을 경험하지 못하며,

장차 받을 구원을 소망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감추어진 기복신앙이고 물질신앙을 표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라는 경험이 없을 때에 장래에 바라는 구원이 관계를 제외한 구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는 관계는 소극적으로 이해하고 더 큰 물질적이나 환경적인 어떤 것을 크게 여기는 구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현재 진행형이며 재림은 그 경험의 연속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로 재림을 통한 구원을 소망하지만

구원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면 단순히 장차 오실 예수님을 통한 재림만을 구원이라고 믿고 지금 관계를 통한 구원에 등한히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를 보내셨는데,

그리고 그 보혜사는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있으며 그것이 구원을 누리며 사는 삶이라고 하시는데 오늘 우리의 경험은 어떤가요?

오늘 성령과 함께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서의 삶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라진 죽음일 수도, 아픔일 수도, 슬픔일 수도, 괴로움일 수도, 그 이외의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새롭게 제공된 놀라운 환경일 수도, 영생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험은 죽음도,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전부 그분께서 구원으로 승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원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포함한 모든 것은 오직 그분이 주시는 선물일뿐입니다.

선물이 구원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선물을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관계를 통하여 이르러 오는 구원에 둔감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강하지만 다정한 음성으로 다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더불어 먹는 것.... 삶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은 실제이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은 피상적인 분인가요? 아니면 실제적인 분인가요?

실제적인 그분과 함께 한 경험을 서로 나누는 시간들이 많아지면 참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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