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화인처럼 씌여진 굴레 같은 나의 ethos 에서
제일 혼란 된것이 바로 " 증오심 " 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학습적 인 것인지 혹은 선천적 메카니즘 으로인지
정확히는 규정 할수는 없지만
어쩌던 한 신앙인 으로서 이런 증오심을 초월 하고 삶을 산다는것 은
참으로 어럽고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이런 학습 내지 본능으로 주어진 이 증오심의 증명 표현에 있어
상당히 세련되지 못합니다
마치 세련된 위선을 배우지 못한 촌놈 처럼
이 증오심의 증오 표현은 매우 서툴고 어색스럽 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세련된 위선을 배우지못한 표현이 가족에게 서툴었던것 처럼.
돌이켜 내가 이렇게 소유한 이 증오심의 위선, 혹은 위선적 사랑 이라는
엇질 감정표현 도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기독교육 으로부터 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 하면 이 증오심의 본질이 정확히 어디로 부터인지 무지하면서도
그 확신무지 를 기독교육 으로부터 믿음하게 된것이고
또 반면에 내 원형질 속에 끝없이 분출되는
이 분노적 증오심의 반성의식 역시 기독교육 으로 부터였으니
내 어찌 이렇게 혼란된 행위앞에 혼란된 증오심이 없겠습니까 ?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단 한번도 형상화된 사랑의 신을 본 일이 없고
그렇다고 이 증오심의 분화인 악한신 도 형상화된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보이지 않은 두 존재를 평생동안 인식하며
양 틈바구니 에서 그 혼돈의 증명부담을 끌어 안고 스스로
감당할수밖에 없었던 이 불행한 혹은 이 혼돈하고 있는
세련되지못한 선천적 내지 학습적 증오심 을 두고 어줍잖은
여러분들의 심리과학 신학으로 동정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위선적 기독신학의 증오심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정의가 어디쯤인가
하나쯤은 존재되어 있어리라 믿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다한 사물의 존재진리 가운데서 유독 안식일 기독교회에서 만나
나를 교육시킨 나의 하나님은
왜 인간이란 이 허무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실체의 조건중에
권력, 재물, 명예 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을 증명사명으로 ethos 로 만들라 하셨는가요 ?
그러면서도
이 부정 혹은 증오 되어야 할 실체적 권력, 제물, 명예 를 증오하는 증오심으로
나의 실천 신앙 으로 둔다면
어찌하여 도리어 안식일교회 공동체의 하나님과 혹은 그들의 조직의 하나님 앞에는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가요 ?
이런 혼돈된 안식일기독 교회 의 신앙인 나는 이 물질 을 초월할수 없는
이 위선적 신앙행위 앞에 혹은 반성의식 앞에 던져질때마다
이렇게도 초라하게 되는가요 ?
한없는 이 위선적 증오의 본질과 모순과 부조리의 신앙으로부터
위선적 증오심없이 해석될 안식일교회 또 다른 실체적 신을 나는
어느때즘 만날수 있는가 요?
예수께서는 "네 이웃 이라 " 말씀 하셨고 나의 안식일 교회는 이것을
권력, 재물, 명예 라 해석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갓 무당도 밤새도록 경을 읽고 징을쳐야 먹고살수있는 이 참혹한 땅위에서
무형의 이데아를 넋두리하는 노동도덕성 을 거절한
저 지식 쓰레기 들 아래 우리를 던저놓습니다
이 렇게 만들어진 증오심 이 이렇게세련되지 못한 위선의 증오심이
내 ethos 로 된것이 너무 쪽 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