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피해자

by 김균 posted May 18, 2013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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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


길을 다가 보면 도로변에 "흰 색 쏘나타를 찾습니다.

날자는 2003년 2월 25일 저녁 9시 오토바이를 치고서 도주한 차량입니다.

연락해 주시는 분에게 후사하겠습니다"

또는 일금 천만원을 드리겠습니다. 등등으로 붙여 놓는 것을 자주 본다.


사람들은 비상식적으로 뺑소니를 한다.

내가 편히 살기 위해서는 남의 목숨이나 재산을 하찮게 여긴다.

그리고서 평생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이 고민으로 꿈자리 꽤 시끌시끌할 것이다.

언제나 도망 다니는 꿈만 꾸게 될 것이고 이것으로 고민하여 암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고민을 이기지 못하여서 자수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종종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뺑소니는 매우 힘든 범죄인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하나님은 피해자이다. 그러면 가해자는 누구일까? 마귀일까? 아니면 제3자일까?

나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이 심한 표현 같아 보이는가?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다. 요나가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했듯이

우리도 수시로 배타고 도망 다닌다. 그러면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것일까?

아니면 피해자가 하는 것일까? 회개는 누가 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다.

이젠 주께서 피해자의 신분으로 오셔서 우리를 용서하신다.

신학적인 견지에서 회개는 기독교의 시작이다.

그래서 침례 요한이나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회개는 구원의 수단일까? 아니며 구원의 요소일까?

회개는 구원의 수단도 아니요 구원의 요소도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귀의하는 하나의 길일뿐이다.

회개는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을 때에 외치는 하나의 속죄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여겨 주신다.

그 귀히 여겨주심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수단은 일을 처리하는 꾀와 솜씨이다.

그 것은 어떤 일의 빌미가 되기도 하고 도구가 되기도 한다.

즉 목적을 이루는 방법, 또는 수법일 뿐이다.

회개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하나님께 귀의시킬 때,

자신이 철저하게 주님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경험을 가질 때에 이루어진다.

요소일까? 요소는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있어야 성분이다.

회개는 그런 요소를 구비하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통하여 진실 되게 하나님을 찾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자나, 없는 자나 그 반대의 경험에 서 있는 사람 모두에게

값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회개의 경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아무 것도 투자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을 때

하늘이 내려주시는 축복이다.

이런 의미로서 마지막 때에 멸망치 않고 구원 얻는 길은 회개하는 일이다.

이 땅이 조롱하는 믿음을, 주의 약속에 대한 회의하는 세상에서 구원 얻는 길은

회개하는 일이다.


그러면 무엇을 회개할까?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한다고 한다.

죄를 지었다고 한다. 즉 죄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죄를 지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죄인은 상대 앞에서 당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자신을 알고 있는가?

입으로는 죄인이며 회개할 것이 있다고 하지만 실재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죄인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사단에게 모든 것 뒤집어 씌운다

죄는 내가 짓고서 사단 때문에라고 한다

사단을 미워해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 때문에 사단이 입장곤란한지 아니면

사단 때문에 우리 입장이 곤란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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