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밥 먹고 있으니까

by 김균 posted Jun 13, 2013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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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3 15:04 수정 : 2013.06.13 17:58


대한항공 A380의 일등석(아래)과 기내 면세점(위). 서비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항공기 내부는 점차 항공사의 광고 문구인 ‘하늘을 나는 호텔’을 닮아가지만, 승무원들은 극심한 감정노동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나·들] 현장에서 본 삶 /
항공기 여승무원의 ‘커튼 뒤 풍경’
‘라면 상무’님 원래 유명한 분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항공 승무원입니다. 전날 프랑스 파리까지 비행을 다녀오느라 많이 피곤하네요. 여기, 눈 밑에 다크서클 생긴 거 보이시나요? 원래는 오늘 오전에 헬스장을 다녀와야 하는데 자느라 가지 못했어요. 체력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라 쉬는 날은 반드시 운동해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근무 경력이 꽤 되지만 ‘시차 극복’은 여전히 힘겹습니 다. 10시간 이상 비행하는 유럽이나 미주 지역을 다녀오면 이틀을 쉬고요, 동남아같이 가까운 지역을 다녀오면 하루만 쉬는 식이에요.

음… 그나저나 오늘 저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뭔지 대충 짐작이 가네요. 일명 ‘라면 상무’ 사건이 궁금한 거죠? 저희도 비행을 떠나 있는 도중에 뉴스를 접하게 됐어요. 언론에선 난리가 났지만, 저희들끼리 반응은 딱 두 가지뿐이었어요.

“(승객에게 폭행당한) 그 승무원 어떡하냐.”, “캐빈 리포트(승무원 사건일지) 유출자 색출하려고 또 사람 잡겠네!”

당시 사건 내용에 대해선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왜냐고요? 그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하지만 않았더라도 별 문제 없이 넘어갔을 만한 일이니까요. 그랬다면 리포트만 쓰고 말았을 거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저희는 승객과 어떤 트러블이 생기더라도 무조건 ‘우리 잘못’이기 때문에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회사에 아무리 울면서 사정을 말해봐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저희들 내부에선 ‘그분’(라면 상무)에 대한 정보가 이미 있었어요. 일부에선 임원된 지 얼마 안 돼서 비즈니스석 처음 탄 거라고 하시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 전에도 승무원 불러다 1시간씩 ‘훈계’한 적이 있는 ‘유명한’ 분이거든요.

덕분에 유출 경위를 밝히느라 저희만 들들 볶이게 됐어요. 이번 사안은 안전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이프티 넷’(SafetyNet)이라는 사내 인트라넷에 리포트가 올라간 건데요. 그 사이트를 접속한 직원은 다 불려가서 서명을 받고 있어요. “네가 했느냐, 안 했느냐”라고 물으면서 한 명 한 명 쪼는 거죠. 그래도 리포트가 유출된 이후로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이 확 바뀌긴 했더라고요. 처음에는 “너네들은 날아다니는 걸레 아니냐”, “라면 끓여달라면 끓여주지 왜 딴말을 했느냐” 등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이 3천개씩 달려 있었거든요.

마침 라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저희끼리는 “라면 덜 익었다”고 트집 잡은 대목을 보고 좀 어이가 없었어요. 기내에서는 기압이 낮기 때문에 물이 100℃에서 끓지 않는답니다. 라면 물이 지상에서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게 된다는 거지요.

게다가 그 라면은 도시락면(컵라면)이었어요.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은데, 그 라면 만드는 회사 사장님도 비행기를 타서 라면 주문할 때 “끓이지 말라”고 하세요. 그냥 뜨거운 물 부어달라고 하는 거죠. 도시락면은 면발이 얇기 때문 에 끓이면 바로 퍼져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처음에는 면발의 바삭바삭한 맛을 즐기면서 먹다가 서서히 퍼진 라면 맛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그 임원분이 “덜 익었다”고 해서 다시 전자레인지에 익혀오고 “너무 짜다”고 해서 스프량을 조절해 다시 라면을 제공했는데요. 사실 사람 입맛이 저마다 다르잖아요. 제한된 공간인 기내에서 그 입맛을 온전히 맞춰드리기란 어려운 일이랍니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이런 트집 잡는 승객 만날 때마다 “아, 저분이 지금 ‘나 이런 사람이니까 알아서 잘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구나”라고 이해하는 편이에요.

비즈니스석 이상 승객, 직함 숙지 필수

이해를 돕기 위해 저희가 기내에서 하는 일에 대해 좀 설명할까 해요. 기내 좌석은 세 등급으로 구분돼 있어요. ‘라면 상무’가 탄 대한항공 항공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A380 기종이었습니다. 1층 맨 앞부분에 일등석이 12석 있고, 그 뒤로 일반석(이코노미석)이 301석이 있어요. ‘그 분’은 2층에 있는 94석의 비즈니스석(프레스티지석) 가운데 한 곳에 자리를 잡았죠.

‘상위 클래스’로 갈수록 가격은 비싸지기 마련이죠. 대충 짐작하겠지만 한번 알아볼까요? 이 비행기를 예로 들면, 가장 저렴한 일반석 왕복 항공권이 180만원가량입니 다. 이에 견줘 비즈니스석은 600만~780만원 선, 일등석은 890만~1100만원 선이에요. 항공권 값이 겅중겅중 뛰는 게 보이시죠?

값이 다른 만큼 좌석의 생김부터 다릅니다. 좌석의 소재와 좌석을 뒤로 젖힐 수 있는 각도, 앞뒤 간격, 개인용 모니터 크기,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파티션 설치 여부 등. 넉넉한 공간에서 뒤로 완전히 누울 수 있는 일등석은 호텔방이나 다름 없다는 광고도 나오잖아요.

무엇보다 값비싼 좌석에선 좀더 밀착된, 세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죠. 우리나라 항공 운항 기준을 보면 승객 50명당 승무원 1명이 응대하도록 돼 있는데요. 비즈니스석은 승무원 1인당 10~15명이고, 일등석은 3명가량으로 보면 됩니다. 일등석은 완전히 1대 1로 서비스합니다.

‘그분’이 탄 비즈니스석에서는 식사가 2시간에 걸쳐 제공돼요. 음료와 함께 제공되는 스타터를 시작으로 전채요리-빵-메인요리-치즈-디저트-커피 등의 순으로 코스가 나가게 됩니다. 죽을 제공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분이 “이 메뉴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거야”라고 불만을 터뜨리셨다잖아요. 하지만 죽은 아침 시간에만 나가거든요.

2000년대 이후로 객실 승무원은 무조건 2년간 인턴 근무를 마쳐야 정규직 사원이 되도록 바뀌었어요. 입사하고 1년까지는, 그러니까 인턴 1년차일 때는 일반석만 담당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상위 클래스 서비스에 나설 수 있도록 교육받게 되지요. 이번에 폭행당한 여승무원이 계약직 2년을 마치고 올해 정식 승무원이 된 직원이라 대처가 미흡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잖아요. 회사에서는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했고, 실전에 투입되는 데 무리 없다고 해명했는데요. 여기엔 이런 사정도 있답니다.

승무원의 업무는 크게 ‘갤리’(Galley) 안과 밖의 일로 나뉘어 있어요. 기내에서 승무원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 어딘지 아시죠? 커튼이 쳐진 곳이죠. 그곳이 바로 갤리인데, 이 안에서 승객에게 제공하는 음식을 카트에 정리해서 넣는 거죠. 이 업무가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요. 음식 담는 그릇을 친환경 플라스틱 용기로 바꾸면서 많이 가벼워졌지만 비즈니스석 이상은 여전히 ‘차이나웨어’를 쓰고 있어요. 6개월 정도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허리 병가를 내는 직원들이 수두룩할 정도예요.

이 때문에 회사에서는 언제부턴가 노련한 시니어 직원에게 갤리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더라는 겁니다. “왜 젊은 승무원들이 나와서 서비스를 안 하느냐”는 승객들의 불만을 반영한 조처라는 거예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상위 클래스 승객을 받을 때는 준비 과정부터 피곤할 수밖에 없어요. 일반적으로 승무원들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3~4시간 전에 출근해요. 그리고 1시간 45분 전에 모여서 ‘캐빈 브리핑’을 받죠. 오늘 비즈니스와 일등석에는 어떤 승객이 타고 스페셜한 요구는 어떤 게 있는지 등에 대해서. 높은 등급의 좌석에 앉는 분들은 과거에 보낸 VOC(고객의 소리·Voice of Customer) 자료까지 숙지해야 하죠.

비즈니스석 이상 승객에게는 행여라도 “고객님”이라고 부르면 큰일 나요. 반드시 어디어디 회사의 사장 혹은 이사님이라고 정확한 호칭을 써야 해요. 이분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특성에 맞게 준비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를테면 오비맥주 사장이 타면 그날 음료 서비스에서 오비맥주를 더 많이 제공한다거나 조선일보사 사장이 타면 해당 신문을 좀더 잘 보이게 비치해놓는 식입니다.

이렇게 준비해도 갈등은 종종 벌어져요. 더운 나라로 비행을 가면 모기에 많이 시달리게 되는데, 한번은 인도 뭄바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사무장이 모기를 잡느라고 어느 기업체 사장에게 인사를 못한 거예요. 난리가 났죠. “왜 날 무시하느냐”고 트집을 잡는데 사무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낑낑대고….

“고객님, 승무원의 감정까지 사셨나요?’

조금 전에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제가 승무원인 거 알아보셨나요? 어떤 모임을 가도 사람들이 제 직업을 알아맞히더라고요. 승무원 표정과 태도, 제스처 등이 일상 생활에서도 기내처럼 바뀐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무릎까지 꿇고 승객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이 많지 않잖아요. 일반석은 승객 이야기가 길어질 때만 무릎 꿇지만, 비즈니스석 이상은 메뉴 주문을 받을 때부터 무조건 무릎을 꿇어요. 매뉴얼돼 있는 거죠. 눈높이를 맞추라는 건데, 안 하면 승객한테서 컴플레인이 바로 들어와요. 처음에는 다리에 쥐도 나고 심리적으로 안 좋았는데, 지금은 그냥 무감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모든 승객이 그런 건 아니지만 ‘라면 상무’ 같은 분을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해 어느 일등석 승객이 기장한테 “내가 밥 먹는 중이니까 비행기를 흔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일이 있었어요. 비행기가 기류 때문에 ‘얌전히’ 갈 수만은 없잖아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승무원한테 본인이 보는 앞에서 기장에게 그 내용을 전화로 알리라고 억지를 부려서 그대로 전했대요.

승무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비수를 꽂는 분도 있어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어느 승객이 승무원에게 짐을 올려달라고 부탁하는데 “니가 올려!” 이러더래요. 그래도 군말 없이 해줬는데 도착해 짐을 내리면서 짐 싣는 칸의 턱에 살짝 부딪혔나 봐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했는데도 “다시 올렸다 내려” 하더니,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사무장을 호출해서 난리를 피웠나 보더라고요. 짐을 10번 올렸다 내리면 기분이 풀리겠다고 했다나요.

특히 상위 클래스에서 나오는 요구는 죄다 들어주는 게 관행입니다. 그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회사 분위기가 있어요. 아무래도 가장 빈번한 문제는 자리와 음식이 문제죠. 이번에 ‘라면 상무’가 그런 것처럼 옆자리를 비워달라는 건 기본이고, 아예 좌석 등급을 올려달라는 요구도 많아요. 비즈니스석 승객이 일등석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눈치채고 그쪽으로 옮겨달라는 식인 거죠. 그 문제는 승무원들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꼭 항공기 문이 닫히고 나면 요구하는 겁니다. 어쩌라고요!

“비빔밥을 먹고 싶은데 왜 안 되느냐. 내가 이거 먹으려고 비즈니스석 탄 줄 아느냐?” 준비된 음식 메뉴와 승객의 주문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이런 말을 듣기 일쑵니다. 저희들도 난감하죠. 예컨대 비빔밥과 스테이크 메뉴가 있다고 치면, 수량을 정확하게 승객 요구와 일치하게 준비하기 쉽지 않거든요.

승무원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인식보다는 승무원을 마치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비행기 좌석을 산 것이지, 승무원의 감정까지 산 건 아닌 데 말이에요. 기내라는, 신체적 자유가 제한된 공간에 오랜 시간 있게 되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데, 이때 조절을 잘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기내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일은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어요. 여성 승무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하는 게 그걸 방증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유명한, 이름만 대면 온 국민이 알 만한 어느 그룹 회장님한테서 “강남에 아파트 마련해줄 테니 같이 살래”라는 소리까지 들었답니다. 한 유명 정치인은 동석한 부인이 화장실 간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제 손을 주무르면서 “도착하면 함께 식사나 할까”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삼성그룹 임원들 스트레스 많나 봐요”

근데 그거 아세요? 승무원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트러블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승객이 삼성그룹 쪽 임원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저 회사가 직원들한테 스트레스 많이 주는구나”라고요.(웃음)

승무원들이 ‘과도한 친절’을 요구받고 일부 승객들의 ‘무리한 언행’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데는 ‘컴플레인 레터’(Complain Letter) 제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봐요. 접수한 승객의 불만에 대해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업무에서 제외되고 서비스 재교육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더라도, 혹은 내가 잘 모르는 일인데도 경위서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일반 기업보다 진급률이 낮은 편인데 이런 걸 스스로 참아내는 걸 최고의 능력으로 여기는 기업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승객과의 갈등보다 팀 상사 혹은 동료와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승무원들도 많아요. 비행만 나가려면 “누가 내 목을 조이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동료도 있고요. 엊그제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어느 승무원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기물 취급 당한다”고. 그런데 기물은 청소하고 수리해서 다시 실어주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없다고. 스스로 상처받은 마음을 극복해서 다시 나서야 한다는 거죠. 슬픈 얘기죠. 그러다 보니 승무원 중에는 과다 음주로 건강에 이상이 오거나 감정조절을 잘 못해서 연애에 실패하는 이들이 꽤 많아요.

참! 기내에서 커피 마시고 싶을 때 가장 빨리 서비스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시나요? 이렇게 말씀해보세요. “바쁘겠지만 시간 날 때 커피 한잔 가져다주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열일 제쳐놓고 먼저 해드리게 되거든요. 우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서비스는 인간관계이고 상호작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훌륭한 서비스’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뜻인 거죠!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이 기사는 지난 5월 7일 <나·들>이 만난 대한항공 여승무원과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해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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