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 the dog

by 김균 posted Jun 27, 2013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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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웩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이 말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 <웩 더 독>(1998)은 미국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사건으로 현실 정치를 풍자한다.

'성추행 의혹' 대선후보가 재선을 준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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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래드 브린 역의 로버트 드 니로. 대통령이 스캔들에 휘말리자, 가장 먼저 찾는 그는 정치 해결사다.
ⓒ 뉴라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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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 대통령 선거를 12일 앞둔 미국의 백악관에선 무거운 분위기가 돌고 있다.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재선이 난관에 부딪히자, 백악관 참모진은 정치 해결사 브린(로버트 드 니로 분)을 불러들인다.

브린은 곧장,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에게 체류 기간을 늘리라고 요청한다. 시간을 번 브린은 대통령에 얽힌 스캔들을 묻어버리기 위한 정치 공작에 들어간다. 바로 미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알바니아와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계획. 물론 알바니아와 미국이 전투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배역을 맡을 배우를 섭외하며, CG 기술을 이용해 진짜 같은 전쟁 화면을 만들어 뉴스로 보도하는 것이다.

내부의 갈등을 가장 빠르게 없애는 방법은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백악관의 주도로 '테러를 조장하는 국가'로 포장하는 일에는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이 동참한다. 그 효과로 반 알바니아 감정이 커지자 국민들의 관심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 집중되고,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해결사 브린, 그를 도우며 전쟁 상황 연출과 촬영 작업에 임하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모스(더스틴 호프만 분)과 백악관 참모진 누구에게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상황. 양심은 사라지고, 그저 재집권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정당화될 뿐이다.

진실 규명 요구에도 계속되는 거짓말... 휘둘리는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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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모츠 역의 더스틴 호프만. 그는 대통령의 스캔들을 덮을 정치공작의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 뉴라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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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거짓 뉴스의 범람에도 상대 후보는 흔들리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밝혀라"고 외친다. 설상가상으로 CIA마저 '알바니아와의 전쟁'이 사실무근임을 밝혀내고 브린을 압박한다.

하지만 정치 공작의 전문가 브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대 후보가 "알바니아와의 전쟁은 끝났다"고 공식 발표를 하고 대통령 측에 진실을 추궁하자, 브린은 끝난 전쟁을 한 번 더 이용할 계획을 구상한다.

'전쟁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며 한 명의 군인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전쟁이니 영웅이 될 군인도 따로 섭외를 해야 하는 상황. '슈먼'이라는 군인이 적지인 알바니아에서 구금 중인 상황이라고 언론에 떠벌린 브린은, 그의 이름에서 착안해 '올드 슈즈'라는 노래까지 제작하며 '전장에 홀로 남겨진 애국자' 이미지를 부각한다.

대중의 관심은 또다시 집중되고, 감정이 자극된 사람들에 의해 슈먼 구출작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세진다. 자연스럽게 다음 '작전'은 슈먼을 입국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 대통령의 지시로 그를 구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정권의 지지율은 급상승한다.

결국, 성추행의 스캔들에 휘말렸음에도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재선하는 데 성공한다. 희대의 정치 공작은 그렇게 '그들만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진실을 누설할 만한 사람들은 조용히 제거된다. 권력의 탐욕과 천재적인 거짓말의 비극적 조화는 대국민 사기극을 낳았지만, 속인 사람을 제외한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내용은 다소 과장됐다. 하지만, 걸출한 명성을 자랑하는 로버트 드 니로·더스틴 호프만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된 이 영화는 전혀 어색하거나 민망하지 않다.

영화가 따로 없는 2013년 대한민국 정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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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웩 더 독>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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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3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나 더스틴 호프만 같은 배우들 없이도 영화 같은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전후로 국정원이 인터넷에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그러자 국정원은 이 충격적인 일을 묻으려는 듯 뜬금없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관련 자료를 통해 연일 맹공을 퍼붓는 일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동참했다. 북한 정상과의 회담 내용이 기록된 문건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영화 <웩 더 독>에서 브린이 물타기의 도구로 '반 알바니아' 감정을 부추겼던 것처럼, 한국 국민들이 북한에 갖고 있는 적대심을 적절하게 이용한 셈이다.

하지만 영화와 다른 점도 존재한다. 영화 <웩 더 독>에서는 진실을 규명하는 데 첩보기관인 CIA가 관여하지만, 한국에서는 되레 국정원이 사건의 주범으로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에서 누구도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끝났던 것과 달리,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내용이 거의 동일한 발언을 선거유세에서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김 의원에 의해 지난 선거와 국정원 사건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임이 부각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회의록 사전 입수가 사실로 드러날 때에는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여론조작을 통해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아닐까. 영화 <웩 더 독>의 절묘한 표현처럼 말이다. 비록 영화는 씁쓸한 결말로 끝을 맺지만, 현실의 한국에서는 정치 공작에 국가와 국민이 휘둘리지 않고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 '진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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