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예 일당백
준비 되지 못한 많은 사람보다는 소수정예로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호언하는 소릴 종종 듣는다.
기드온은 300명처럼
미디안 아말렉 동방사람이 연합하여 13만 명이 쳐들어왔을 때 300명으로 이긴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소수정예를 말한다.
이야기는 너무나 잘못된 성경 해석이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라고 우린 서슴없이 말하지만 성경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면
어디에도 기드온이나 300명이 용사라고 쓰인 곳이 없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로 12지파 중 크게 부각된 적도 없는 지파였고
삿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그런 기드온은 행동도 소심하고 용감한 행동은 한 번도 행한 적이 없고 억지로 이끌림을 받는 자 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바알의 단을 허물 때도 아세라상을 찍을 때도 하나님께 재물을 드릴 때도 백주 대낮에 하지 못하고 늦은 밤에 사람들 몰래했습니다.
그리곤 숨어서 피했습니다.
그 책임은 우상 숭배자였던 기드온의 아비가 앞장서서 변명하고 해결합니다.
추수 때가 되어 13만 명의 미디안 연합군이 노략질을 하기 위해 몰려옵니다.
용기가 없는 기드온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파발을 보내지 못하고 겨우 4지파에게 파발을 보냅니다.
므낫세, 아셀, 스블론, 납달리 아무리 약화되었다지만 지파에게만 요청한 기드온의 처사는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지파당 8000명씩 32000명이 모였습니다.
12지파가 모였다면 96000명은 모였겠죠.
오합지졸 이었습니다.
130,000 대 32,000은 4대1이 넘는 전략적 약세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략적 약세에서도 충분히 승리로 이끈 전쟁은 많습니다.
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은 전함 13척으로 적군 군함포함 400척을 물리친 역사가 역사의 고비마다 나옵니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군도 그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군사는 절대로 그런 군사들이 아닙니다.
그냥 농사짓던 사람들이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그랬고 300명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우린 그 300명을 32000명에서 22000명이 돌아가고 남은 10000명중에서 추려낸 정예병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이라고요.
우린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었죠.
절대 그럴 수 없는 그저 허접한 오합지졸300명인데도
단지 그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냥 엎드려서 혀로 물을 핥아먹지 않고
손으로 움켜서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능력을 부각시키는
믿음의 사람으로 또는 준비된 용사로
민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충직한 병사로 만들고 미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모습이 아니 그냥 10,000명에서 300명을 추려 내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 300명이 용감무쌍하고 철저한 신앙가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부류였다면 그건 당연히 그들의 공이 크고 그럴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삼국지에서 감녕이 용감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병사들을 뽑아 머리에 깃털을 하나씩 꼽고 조조군 에 조조군복을 입히고 밤중에 몰래 잠입하여 큰 소동을 일으켜 조조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야기라면 그 용맹을 찬타하겠으나
기드온과 그 300명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뿐입니다.
기드온과 그의 부하인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에 몰래 잠입하여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미디안 모든 군사들 무서운 꿈으로 두려워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이 준비한 것은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이었습니다.
항아리에 횃불을 숨기고 3대로 나뉘어 미디안군 진영 가까이에 접근하고 갑자기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높이 들고 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
이미 꿈으로 겁에 질려있던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군사들은 자중지란으로 서로 죽이고 도망치다 밟혀죽고 혼비백산을 합니다.
300명만 전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돌아가지 않은10000명이 합세를 하고 돌아가려고 두려워하던 22000명도 전쟁에 참여합니다.
어찌 300명으로 전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돌아가라고 했다고 전쟁이 무서워 돌아간다면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그나마 그 숫자로 라도 희망이 안 보이는데 4:1에서 400:1의 군세로 이길 것이라고 안심하고 돌아갈 군사가 어디가 있겠습니까?
싸움을 포기하고 죽기로 작정하지 않을 바에야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그 32000명이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싸움에서 밀린 미디안 연합군이 에브라임 지파영역으로 후퇴가 할 때에
에브라임 지파군인들이 나와서 엄청난 전과를 올려 이 전쟁 이후에 다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기드온과 300명은 단지 기폭제 역할이었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 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이야기는 성공신화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성경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성공신화 보다는 처절하게 실패하고 실패하면서 그런 실패의 과정에 하나님이 약하고 쓸모없는 이들 약한 이들을 통하여 새롭게 써내려간 이야깁니다.
강한 자 삼손 지혜로운 자 솔로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이 없고 완벽한 미남 압살롬
계교를 씀에 하나님과 같은 아히도벨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기 보다는 오히려 해악을 끼칩니다.
기생 라합 모압여인 룻 예수님의 제자들 초기 신자들
모두 작은 자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또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가뭄에 마른땅에 나온 연한 순 같고 그 모양이 흠모할 아무런 고운모양도 없었습니다.
싫어버림을 당한 모습이었죠.
기드온의 300명은 정말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작은 무리였습니다.
용감무쌍한 빼어난 용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린 흔히 마지막 남은무리
진리로 무장된 진실한 백성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무리 144000명
셋째천사 기별을 가진 무리
바벨론을 향해 힘찬 음성을 외칠 기드온의 용사처럼 용감하게 나팔을 불 남은무리
그러나 기드온의이야기는 너무나 와전되고 미화된 이야깁니다
우리가 허접 쓰레기라고 인정할 때는 하나님이 사용하시지만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선민의식에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강조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해악을 끼쳤습니다.
우린 어떤가요?예수의 참 안식일도 모르면서 안식일을 안 지키는 무리는 바벨론이라고요
예수의 믿음도 모르면서 예수의 믿음과 증거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대언의영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화잇의글이 대언의영이라고 그걸 가진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교회는 정말 라오디게아 의 눈멀고 가난하고 벌거벗은 수치를 모르는 그런 백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