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한 얘기다.
센스가 있어야 맞추는 난센스 큐즈.
<질문 1> 보통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집은?
‘시집‘
(詩集:시를 모아 엮은 책) 이고.
<질문 2> 보통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집은?
그것도 ‘시집’
(媤宅:남편의 집안) 이란다^^
그러면,
<질문 3> 목수(木手 carpenter)가 못 고치는 집은?
고집
(固執: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지켜서 우김. 또는 그 우기는 성질.)이다.
왜냐하면 목수가 집을 고치려면 문을 열어 주어야 들어가서 고치는데
고집이 문을 안 열어주면 목수가 그 집을 고칠 수 없다.
<질문 4>
그런데, 목수도 못 고치는 고집을 예수님은 고칠 수 있을까? 없을까?
없다!
그럼 예수님도 못하시는 것이 있다고?
<질문 5>
왜 예수님도 고집은 못 고칠까?
이유는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이기 때문이다!
농담하는 것 아니다!
예수님도 내가 ‘고집‘으로 내 마음 문을 안 열어주면 절대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으시고
문밖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만 계신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고집을 버려야 예수님도 내 맘에 들어와서 더불어 먹고 더불어 살며 일하실 수 있다.
<질문 6>
기독교에서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렇다. “고범죄
(故犯罪 Presumptuous sins : 고의로 저지르는 죄(시 19:13),
성령을 훼방하는 죄[마 12:31],[막 3:29])”이다!
<질문 7>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으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하는
고의로 저지르는 죄는 무엇을 말하나?
성령을 훼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고집’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다!
고집으로(고의로) 문을 안 열어주어 성령이 일하지 못 하도록 훼방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고집으로(고의)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성령께서 나를 변화(회개)시키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령님은 저 포악하고 무지한 독재자들 같이
총칼로 강제로 쳐부수고 들어오시지 않는다.
그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강제는 변화도, 용서도, 회개도 아니고 그냥 두려움에 굴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문을 열어야 성령이 내 마음에 들어와 역사하셔서
나를 변화시키고 회개시키고 용서하실 수 있다!
고집을 버려라!
아집을 버려라!
<질문 8>
그러면 우리가 고집을 버리고 회개해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는가?
단연코 없다!
내 맘 문을 열고 회개만하면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문제>
그러나 여기서 흔히들 착각하는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주홍 같이 붉었던 내 죄는 회개하고 용서받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답) 죄의 ‘흔적과 상처’이다.
내 죄의 행위는 신으로부터 용서 받았지만 그 죄의 ‘흔적과 상처’는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다.
아직도 누군가(사람, 자연)가 내 죄의 상처로 아파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
신에게 용서 받은 내가 할 일은 바로 그 상처받은 피조물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일이다.
이것은 나의 죄로 인한 직접적이나 간접적인 상처의 아픔을 모두 다 포함한다.
그래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책임하면 안 된다.
용서받은 삭개오가 두배 세배 갚은 것처럼 죄의 약탈물들을 되돌려 주고
내 죄의 댓가를 치루어 그 죄의 흔적과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이것이 내 죄의 행위는 용서 받았지만
“내가 싸질러 놓은 똥은 내가 치워야하는 이유이다.
닦아달라고 똥방등이를 치들고만 있지 말고”!^^ -남덕현의 글
그런 후에도 내가 못하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자.
나만 용서 받았다고 피해자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또 다른 가중 죄를 짓는 것이다!
상대의 상처가 치유될 때, 내 죄의 흔적도 비로소 흰 눈 같이 하얗게 깨끗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증거, 구원의 열매,
그리스도인의 기쁜 소식(복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