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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나온 "문명밖으로(주류 문명에 대한 정항 또는 거부)"에서 한 꼭지를 쓴 안연희 선생님의 글 중 일부를 옮깁니다.



그 외에도 당시 기독교의 가입의례인 세례에 대한 여러 규정들을 보면 지중해세계의 도시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로 보인다. 초기 기독교인은 제국의 여러 신들과 그 신들이 수호하는 질서가 보편타당하고 영원하다는 데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들을 받들고 황제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에 따르거나, 그 신들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것조차 자신들이 고대하는 참된 나라, 자신들의 진정한 왕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다. 주류 세계에 대한 그러한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 전망을 가진 채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남은 길은 무엇일까.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떻게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윤리적·종교적 요구를 따르던 기독교인들이 4세기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실질적 주인공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미셸  루슈의 말을 조금 바꾸면, 기독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멸시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을 정복하러 나서게 되었다." 적어도 4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수호 종교로 눈여겨볼 만큼 성장한 기독교 집단을 키워낸 힘은 '세상을 멸시하던 기독교'와 '세상을 정복한 기독교' 사이에 있는 '어떤 기독교'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것은 독특한 논리로 '세상을 사랑한 기독교'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예수가 말했던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의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는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했는데, 그것도 기존 사회 규범이나 종교적 계명을 더욱 철저히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좋은 관계와 평화를 위해 문명 제도와 형식화된 종교가 놓치고 있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 꾸미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가 또 자기 재산을 팔아 나눠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무엇이든 기꺼이 주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칠 때, 그 순수한 마음과 사랑의 회복이 뼈와 살을 깎는 자기부정과 희생이며, 존재 자체의 변혁임이 드러난다. 자신을 따르려는 자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까닭이다.

  예수는 새롭게 변화된 삶의 계명을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음 '모호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사랑으로 매개되고, 전환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가변적인 것들을 멸시할 수 있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게 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결국 바로 옆에 있는 가장 비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요청하는 논리가 된다.

  이는 후기 로마제국에서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의미를 띤 자선과 구휼의 제도로 나타났다. 초기 기독교 운동을 통해 고대문명이 통치자와 지배계급에 할당한 사회적 의무였던 (동시에 특권이기도 했던) 자선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확대된 것이다. 귀족과 엘리트 집단의 자선행위나 공공사업이 과시적 연출의 형태로 사회적 거리를 공고히 한 데에 반해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자선의원칙과 동기를 내밀한 양심의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누구나 죄를 짓고 누구나 참회와 구원이 필요한 것처럼, 이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가난뱅이처럼 아무런 대가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베푸는 자선의 철저한 무방향성은 하느님의 위대한 초월성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서로 돕고 돌보는 데서 나아가, 이와 같은 논리로 자선과 구휼을 공동체 외부에까지 확대했다. 그리하여 기독교 공동체의 자선과 봉사 조직들은 로마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막교부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없다면, 세상으로 나가 곤경과 궁핍에 처했는데 도움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죄인과 원수를 용서하는 일은 기독교의 가르침 속에서 죄인인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요청하는 간절한 탄원이 되었다. 그러한 논리 속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을 멸시하면서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근거를 얻게 되었고, 현존하는 세계를 부정하는 종말론적 비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접촉하며 살아갔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신의 사랑과 용서도 기대할 수 없을 테니까. 기독교적 이타주의와 사랑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토록 절실한 자기애, 사랑의 동력이 초기 기독교가 반문명과 문명의 기로에서 문명으로 향하는 한 걸음을 내딛게 한 디딤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로마문명의 거대한 조직 속에서 자유와 사랑에 의거한 새로운 질서를 외치던 초기 기독교의 거침없는 목소리, 구원에 대한 절절한 소망,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서 솟아나는 활력을 그려보면서, 문명 속에 편입한 기독교가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안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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