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저녁에 내종제와 마주 앉아
조각달이 청고한 선비 엿보니 / 片月窺高士
작은 창문에 흰 광휘 떠오르네 / 小窓揚素輝
단정한 옛 폭건에 / 端正古幅巾
썰렁한 새 겹옷이라 / 凄薄新袷衣
뜰에는 서리 국화가 찬란해 / 石堦燦霜華
티끌 하나 더럽히지 않았고 / 浮埃不相依
뭇 동물은 자리에 들었는데 / 群物各歸宿
고요한 생각 전일하고 은미하구나 / 靜想一而微
때마침 아우가 맑고 빼어난 얼굴로 / 小弟色秀澹
자세히 보면서 영기를 묻네 / 凝看問靈機
대답하기를 마음의 경지가 원만하면 / 答云心境圓
옛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하고 / 先民如可希
홀연히 또 경책하고 반성하다 보니 / 忽復發警省
어둠 속에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 들려오네 / 冥鴻一聲歸
<청장관전서 제2권 영처시고2>
몇 해전 고전 번역원에 번역된 방대한 그의 청장관 전서를 들여다보다 우연히 읽은 이덕무의 시다.
그런데 시 속에 영기라는 말을 靈氣로 알고 지내다 나중에 다시 보니 靈機였다.
그 뜻을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사전에도 잘 찾을 수 없어 궁금해 지내다가
중국에서 온 사람에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람은 영이란 단어가 무언지를 처음에 잘 모르고 이해를 못 하더니 나중에 ghost 로 이해하더니
한참 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알려준 영기靈機의 뜻은 intelligent 또는 clear 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영기를 intelligent 로 이해하고 또 clear 라는 뜻으로 보면 위 시가 무엇을 뜻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intelligent 이라는 말이 기독교 신앙에도 매우 중요한 말임을 알게 되었다.
신앙사 적으로 많은 연관이 있는 신플라톤 용어인 누우스(Nous)와도 연관이 된다.
그런 용어를 우리 옛 시 속에서 본 것은 놀라움이고 기쁨이다.
얼굴도 우리 말로 얼이 있는 모양이라니 얼이나 정신이 다 비슷한 말이다.
정신을 차려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바로 생각하는 것이 intelligent 이라면 시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기도하는 것도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intelligent 를 소중히 여기고 이것이 신을 향한 향심을 가지고 지켜야 하는데
감각과 물욕 정욕에 빠져 잃어버려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 옛 신앙하신 분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 여름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