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나"

by 모퉁이 돌 posted Sep 08, 2013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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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의원 기고] 적대적 공존을 넘어선 정의로운 진보를 꿈꾼다

 

이석기 정국'이 끝났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258 대 14라는 압도적 결과로 가결됐다. 새누리당·민주당은 물론, 한때 통합진보당과 한 지붕을 이었던 정의당 역시 찬성 당론으로 본회의에 임했다. 정의당은 김제남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이 의원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소아병적"이라고 맹비판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지난해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부터 촉발된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탈당한 이들이 만든 정당이다. 당초 의석수는 7석이었으나, 강동원 의원(전북 남원·순창)이 '지역 민심'을 이유로 탈당하고 노회찬 전 의원(서울 노원병)이 '삼성 X파일' 사건 결심공판 결과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해 현재는 5석으로 줄었다.

<프레시안>은 정의당 소속 박원석 의원으로부터 '이석기 체포동의안 찬성'의 이유와, 향후 진보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기고문을 받아 싣는다. 박 의원은 이같은 내용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토론을 하려 했으나,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을 모두 받지 않기로 하면서 발언하지는 못했다. 박 의원은 현재 당 정책위 의장을 맡고 있고, 원내대변인을 역임했다. <편집자>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나와 정의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다. 적지 않은 수의 당원들, 진보운동 진영의 활동가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 또한 그와 같은 결정에 비판적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먼저 나는 이번 사안이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자로서든, 인권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든 완벽한 답을 내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분단체제', '사상의 자유', '헌법적 가치', '정치적 책임', '사법적 판단', '절차적 정당성' 등이 한데 뒤엉켜, 어떤 결정도 모순과 반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사안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분명한 얘기를 하지 않는 길을 갈수는 없다. 나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치가가 내리는 결정의 본질적인 속성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동시에 이 복잡한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치가는 시민권력 대행자…진영논리 벗어난 책임있는 선택 해야"

우리는 때로 의도의 선함과는 상반되는 결과에 종종 직면한다. 특히 정치가는 더 그렇다. 정치가 내재하고 있는 악마적인 힘은 종종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선한 목적과 의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의 그런 힘들을 잘 다룰 수 있는 담대함이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른 바 '녹취록'으로 드러난 결과,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제기한 언행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정원의 불순한 의도나, 그들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 언론환경, 급격히 악화된 여론 등 모든 것이 당혹스럽고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지금까지 국정원의 의도만 탓하고 자신들을 향한 질문은 회피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조차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정치가는 권력을 갖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시민권력을 대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의 책임이 있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나와 정의당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해 책임 있는 답을 시도하듯이,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도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해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공안탄압이다', '매카시즘이다', '국정원 물타기다'라며 배후 의도만 강조하거나 '날조다', '왜곡이다'라고 부분적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설명의 책임을 덮기에는 사건이 너무 커졌다.

나와 정의당은 국정원의 의도를 똑같이 의심하고 경고했다. 더 나아가 국정원은 이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동시에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또한 책임 있는 설명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이 시간까지 나는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으로부터 책임 있는 답을 듣지 못했다.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이 사건을 국정원 대선개입의 진실 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까지 왜곡시킬 위험으로부터 분리해야 했다. 방어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었고, 불체포 특권으로부터 나와 당당히 수사에 임하라는 의미였다. 설사 정의당 내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나와 정의당은 고심했겠지만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함께 나서 싸워야지, 왜 분리하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인 나는 더 이상 '적의 적은 동지'라는 진영논리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백 번 양보해 그 진영논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수 차례의 말 바꾸기로 일관하며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역으로 입증하고 만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태도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고 민주 헌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진보여야"

그러나 나는 위와 같은 방어적 관점만을 갖고 체포동의안 찬성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나는 이석기 의원이 추구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념은 인간이 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며, 진보 역시 진보 그 자체의 이념성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민주헌정체제의 일부인 국회의원 신분이면서도 우리 공동체가 합의한 민주헌법, 민주적 정치체제 위에 자신의 이념을 놓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한 기본적인 정치질서는 헌법이다. 그 합의는 완벽한 것도, 최선도 아니며 절대적인 이성과 정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서 합의되는 최대한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판단한 합당한 절차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사회에서 그와 같은 결론의 기초가 87년 민주화운동에서 나온 민주헌법에 있다고 본다. 물론 불완전하며,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영토조항, 기본권조항, 권력구조, 경제민주화의 명료한 헌법적 규율 등. 그러나 인간사가 본디 불완전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도전과 책임을 이끌어 내야 하며, 그것이 정치가의 몫이다.

민주주의 안에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갖는 것. 그것을 혹자는 '애국심'이라 표현하고 혹자는 '시민정신'이라 표현한다. 우리 시민 다수가 합의한 민주헌법과 이를 기반으로 한 민주적 정치체제 위에서 정치적으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혁명세력과 혁명가가 아닌 정치세력과 정치가로서의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이석기 의원의 '녹취록' 발언은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가 분단돼 있고, 한국의 정부수립과 체제발전 과정에서 지난한 역사적·정치적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북의 체제가 선하고 충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근거는 아니다. 더 나아가 이석기 의원 자신이 속하고 우리 공동체가 합의해 발전시켜 온 25년 간의 민주적 정치체제를 부정하는 근거는 결코 될 수 없다.

분단체제는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 자신들의 세계관의 발전을 지체시키고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손쉽게 도피하는 회로로 작용해 왔다. '녹취록'을 통해 나타난 이석기 의원의 세계관과 정치적 태도 또한 그렇다. 적어도 진보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남북 간의 평화적 공존과 공동번영에 기초해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루자는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남북공동선언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이 녹취록에서 말하고 있는 통일의 방식은 이에 상반되는 것이다. 이 의원과 사건관계자들 발언의 기저에 깔려있는 이른바 '반제민족해방혁명론' 방식의 통일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후방을 파괴시키겠다는 폭력적 의지마저 고려하는 통일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한참 돌린 60년 전 냉전체제의 한 편향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현실과 그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은 물론 심지어는 북한의 '실질적인 체제유지 전략'과 '정치적 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이다. 그와 같은 세계관은 유전적으로 진보가 아니다. 냉전체제와 함께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산일 뿐이다.

나와 정의당이 지향하는 진보는 남북이 평화공존의 원칙위에서 선물처럼 다가올 수도 있는 통일을 준비하는 진보이다. 나와 정의당이 지향하는 진보는 우리 공동체가 합의한 민주 헌정체제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정치적인 경쟁과 연대를 하는 진보다. 나와 정의당이 지향하는 진보는 사회적, 경제적 자원의 균등한 배분을 위해 노력하고, 노동의 정당한 시민권이 보장되도록 정치적으로 노력하는 진보다. 고단했고 지금도 고단하지만,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이다.

"새누리 '이석기 제명, 통합진보당 해산' 매카시즘 중단해야"

끝으로 이 사건이 가지는 복잡성 중 하나는, 우리 사회 양 극단에 존재하는 냉전 수구세력과 급진 민족주의 세력의 쌍생아적인 요소가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로 적대하고 있지만 서로가 존재의 이유가 되는 기묘한 공생관계에 있다. 이 현실로부터 우리가 새로운 공간을 열지 못하면 이 두 힘에 의해서 한국 정치 발전이 발목 잡히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는 진보, 보수를 떠나 한국 정치에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존이 만드는 공간 때문에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국기문란 행위를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의 민주적 의지와 목소리는 위축되고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무책임도 지속되고 있다.

이 국면을 틈타 한 극단에서는 마치 독버섯처럼 매카시즘이 피어오르고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의원직 제명',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장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체포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상식 밖의 매카시즘을 용납한다는 뜻이 결코 아님을 직시하고 경거망동을 중단해야 한다. 국기문란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가정보원 개혁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균형 있고 합리적인 목소리가 국회와 거리에서 나올 때다.

                                                                                                             

                                                                                                                                           박원석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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