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글이다.
프랑스 시인 장 루슬로의 시 <또 다른 충고>를 다시 읽는다.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충고하려 들지 말라
그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너의 충고는 그를 상처 입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선반 위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별을 보게 되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K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 동숭동의 학림다방에서였다.
대학교 신입생인 나는 서른한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
화가 장욱진, 시인 김종삼이 출입하던 전설적인
학림다방을 학교보다도 더 자주 드나들었다.
수업을 등한시하고 그 목조 건물 이층 구석에 앉아 라벨의 볼레로를 신청하고는
시를 쓰고 카뮈와 랭보와 로르카를 읽었다.
어느 주말, 다방에 사람이 붐벼 한 여학생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친구를 기다리는 듯한 그녀의 태도가 몹시 눈에 거슬렸다.
거슬린 정도가 아니라 한심해 보였다.
나처럼 대학 신입생인 것이 분명한 그녀는 진한 화장에 껌을 씹으며
연신 손거울을 꺼내 머리 모양을 매만졌다.
그 무렵 나는 가진 것은 없었으나 문학적 자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433행이나 되는 엘리어트의 장편시 <황무지>를 줄줄 외워
문예장학생 면접시험을 단번에 통과한 문학청년이었다.
그녀의 속물스런 모습에 화가 난 나는 정색을 하고서
처음 보는 그녀에게 격한 질책과 충고를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 불온하고 부조리한 시대에 고뇌로 가득 차야 할 대학생이
그렇게 아무 의식 없이 살아도 되는 것인가가 비난의 핵심이었다.
나는 충고를 넘어 울분을 터뜨렸고, 그녀는 놀라서 커다랗게 뜬 눈으로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나의 자기 일변도의 주장을 들어야만 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그녀는 나의 비난에 얼굴을 들지 못했고, 스스로 자신의 말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나는
달리 수습도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나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잊기 위해
낮술에 취해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
감추고 싶은 내 젊은 날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 K가 학림다방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긴 머리는 단발로 짧아져 있었으며, 그
녀의 눈빛은 형언할 수 없는 세계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왔다고 했으며,
무섭기까지 한 얼굴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후 4년 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삶을 말하는 것은 때로 한 시대를 말하는 것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삶이 우회하지 않고 시대와 격렬하게 부딪쳤을 때 그렇다.
그날 이후,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이어지는 그 4년 동안
K는 반정부 데모에 온몸을 던졌으며, 혁명 전사가 되었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자해까지 하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운동권 핵심 세력이 뒤에 있을 때 K는 몸을 사리지 않고
맨 앞에 서서 정의를 부르짖었다. 돌아온 대가는 가혹했다.
그녀는 금방 수배자가 되었고, 여성의 몸으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누군가에게 하룻밤 신세를 져야만 했으며, 끝내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2년 여의 감옥 생활 동안 혹독한 취조로 정신의 문제까지 얻었다.
내가 대학 졸업반일 때 형기를 채우고 나온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그때는 학림다방이 문을 닫고 다른 주인에게 팔려
건물도 새로 짓고 이름만 남아 있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 근처
카페에서 나는 그녀와 마주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대의 부조리와 부딪치지도 못했고,
밖에서 최루탄이 터질 때 골방에 앉아 시를 썼으며,
세상의 문제보다 나 자신의 문제와 씨름하느라 청춘기를 다 보냈다.
그녀가 차가운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의식 있는 삶'을 외치던 나는 마음의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진리의 깨달음을 진실의 실현보다 우선시한 어리석은 삶이었다.
그녀 또한 말이 없었다.
차라리 그녀가 나를 질책하고 무슨 말을 하기를 바랐는데,
그저 긴 침묵만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나는 간신히
나로 인해 망가진 그녀의 삶에 대해 참회했고,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삶이 더 나은 삶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작가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글의 소재가 된다.
작가라면 어떤 소재로든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K는 단순한 글의 소재가 될 수 없다.
그녀는 나의 아픔이고 회한이고 참회이다.
뒤돌아볼 수조차 없는 나의 상처이다.
얼마만큼 진실했는가. 얼마만큼 치열했는가.
나는 K 앞에서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다만,
K의 삶이 그 이후의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마치 삶은 이렇게 불태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치열하게 추구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더는 길이었다.
어떤 글은 이렇듯, 오랜 후의 고백이고 고해성사이다.
주) 제목은 옮긴이 마음대로 지은 것이다.
거위의 죄책감과 고해성사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좋은글 감사 합니다.
자신이 남들 보다 깨여 있다고 생각 하는 모든이가 한번 곱씹어 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 됩니다.
무력한 관념 보다는 작은것 이라도 행동 하는 자가 돼야 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