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구원이 무슨 가치 있는가?

by 김균 posted Sep 12, 2013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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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구원이 무슨 가치 있는가?

앞의 글에서 분명하게
인본주의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은 그 파트가 가진 것 중
“인문주의의 철학파트인 윤리와 도덕을 강조했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내가 인본주의 신앙을 조장하는 것처럼 떠들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내가 없는 이 세상은 가치가 없다
남들 잘 살거나 잘 믿거나 이런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이 세상에 있기에 돌아가셨고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우리 모두의 구주가 되셨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구원을 말할 수 있는가?
없다
태어나야만 구원의 가치가 소중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있을 경우에만 구원의 구주도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다중이 될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주님은 태어난 사람, 앞으로 태어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
즉 인간이 있어야 구원설이 성립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구원 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신적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인적 경지에 머문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데 그 변화의 궁극은 예수의 재림이다
그 전에는 아무리 떠들어도 변화되었다는 사람 찾기 힘들 것이다

우리 교회에 장례식이 있었다
그곳에는 먼저 묻힌 묘가 8000여개나 있었는데
그 중 얼마가 부활할까?
그 부활한 사람들 중에 이번에 돌아가신 94세의 할머니가 참여할까?
그 참여함은 누구의 은혜일까?
그가 교회오시면 허리가 구부러져 머리를 의자 성경대에 대고 계셨는데
그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할까?
그것이 하늘에 사는 모습일까?

수많은 의문부호 가운데 나는 서성인다
바로 내가 없는 부활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본주의가 아닌 인간을 사랑하신 그분의 은혜일뿐이다
내가 없는 구원은 아무리 많은 무리가 부활해도 가치 없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흙으로 변해 있는데 내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래서 기독교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이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아무리 떠들어도 남을 대신해서 죽은 인간은 별로 없다
남을 대신해서 죽는 행위는 성육에 속한다
그 대신의 행위에는 은혜가 따를 것이라 믿는다
예수께서 대속하시고 살아나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예수 대신 죽은 아이들 구원 얻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죽은 세상은 무에 이른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죽어서 아무 것도 모를 적에 이 땅에서 내가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 줄
많은 지인들이 저들만 천국에 가서 저들끼리 내 이야기하면
아무리 무라고 해도 지금 기분이 안좋다.
내가 전파한 후에 버림이 된다면 이 땅의 수고가 다 무엇이랴
그래서 기독교는 애고이즘을 잉태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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