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음모 사건 이후 학생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사찰 활동을 벌이면서 무리하게 통합진보당과 학생 운동 단체의 연계성을 집중 캐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경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총학생회 전직 간부 A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혔고 수신 번호는 02-3414-xxxx라고 찍혀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은 A씨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끊으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전화를 끊지 마라'는 협박성 발언을 한 뒤 주변의 학생 동향을 캐묻는 등 사실상 취조에 가까운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은 2011년 경희대 국제캠퍼스 부총학생회장을 활동했던 강새별씨와 2012년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이자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학생회장이었던 정용필씨, 그리고 현재 한대련 의장과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나래씨의 구체적인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A씨는 컴퓨터 실무에 능해 세명의 전현직 총학생회 대표들을 도와 3년 동안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학생회에서 홈페이지 서버 관리를 맡은 전력이 있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A씨와의 통화에서는 A씨의 전력을 파악해놓고 전 현직 대표자들의 동향은 물론 지난 6월경 학교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했던 사실까지도 물었다.

지난 6월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화면에 '총학생회 빨갱이'라는 문구가 뜨는 해킹을 당했고 서버 관리를 맡고 있는 A씨가 복구를 시킨 적이 있다. 당시 경희대 총학생회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하고 불과 10시간 만에 복구를 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상주하지 않고서는 외부에서 알기 어려운 내용이다.


통화에서는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왜 다른 학교 사람이 드나드는지도 물어봤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학생회는 지난 2년 동안 한대련 의장을 배출시키면서 일명 '거점대학'으로 등록금 투쟁 등 이슈와 관련해 다른 대학과 공동대응 시 종종 회의를 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천안에 확대간부수련회를 가서 뭐를 했냐"는 질문을 하는 등 평소 경희대 총학생회 동향을 알지 않고서는 파악할 수 없는 내용도 질문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1년에 두번 여름과 겨울 방학에 단과대 과학생회장까지 대상으로 한 확대간부수련회를 개최해 학교 등록금 투쟁 등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한대련 측은 국정원으로부터 A씨가 사실상 불법 취조와 사찰을 당했다며 1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대학에 상주하며 대학생들의 출입은 물론 학생회 홈페이지, 학생회 활동까지 사찰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한대련 측은 "국정원이 사찰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학생들은 지난 몇 달간 국정원 대선 개입 정치공작 진상규명을 위해 앞장서온 대학생들"이라며 "학생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촛불을 꺼뜨리려는 보복성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직원이란 사람이 A씨를 통해 동향을 물어본 정용필(2012년 한대련 의장)씨는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대련 활동과 통합진보당 활동이 겹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한대련과 통합진보당을 엮어서 종북 몰이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국정원에서 반값 등록금 투쟁에 대응하다는 문건도 나온 상황이고 한대련이 등록금 투쟁뿐만 아니라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을 열심히 들고 있기 때문에 한대련과 핵심 학교로 활동하고 있는 경희대 대표자들을 탄압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국정원 전경 사진 ⓒ 노컷뉴스

정씨는 또한 지난해부터 수사당국으로부터 내사를 받았던 사실도 있어 오래동안 한대련 및 경희대 전현직 간부들을 상대로 사찰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에 따르면 경찰 보안과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30일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정씨의 휴대폰 통화 내역 및 메일 계정을 감청하고 열람했지만 '혐의 없음'결론을 내렸다고 지난 1월 정씨에게 통보했다.


정씨는 "지난해는 제가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이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일방적으로 내사를 벌이고 구체적인 혐의 내용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것인데 비단 저 뿐만 아니라 학생 대표와 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한번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식의 수사가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희대 총학생회 전직 간부 A씨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비슷한 시기에 경희대 총학생회 간부를 지내고 이미 졸업했던 B씨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주 초 어머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국정원 직원이라고 한 사람이 '아들이 뭐하고 다니는지 아느냐'라는 질문과 저와 관한 활동을 한참동안 물어봤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B씨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란 사람은 B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끊지 마라고 요구하면서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 '종북과 연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등을 질문했다.


B씨는 "불법적인 사찰을 통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과 관련해 통합진보당과 학생단체들의 연계성을 꼬투리 잡아 정치적 공세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드러난 국정원의 사찰 활동은 현행법 위반일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 대상이 된 사람들이 모두 경희대와 수원 지역에서 활동한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과 관련돼 수사를 확대하려는 사전 정지 작업일 수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국정원 관계자는 A씨와 B씨에 전화를 건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학생들의 기자회견을 보고 내부에서 알아봤는데 그런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