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은 달관하지 않는다.

by 김원일 posted Sep 13, 2013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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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웅크린 펜 / 오길영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고통이 반가울 수는 없지만 개인이나 사회나 고통을 겪지 않고 성숙해지는 경우는 없다. 문학이 성숙한 정신의 표현이라면 고통은 문학의 좋은 자양분이 된다. 고통을 겪지 않고 탁월한 예술을 낳은 개인, 국가, 시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영문학의 경우만 봐도, 그 융성기는 역사적 격변기였다. 셰익스피어를 낳은 튜더왕조기는 자본주의의 정착기였고, 시운동의 한 정점인 낭만주의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역사적 격변기에 나타났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은 세계전쟁과 대공황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평온한 시대는 평범한 문학을 낳는다는 것. 문학과 현실의 변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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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가 아일랜드(문학)이다. ‘세계제국’이었던 영국 옆에 위치한 아일랜드는 한국과 유사점이 많다. 이웃국가의 식민지배를 경험했고, 분단의 슬픔을 겪는다. 1949년 아일랜드 남부 26개 주가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독립했지만, 북부 6개 주는 영국 통치령으로 남았다. 그 뒤 오랜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거쳐 1998년에 극적인 평화협정에 이른다. 북아일랜드 분쟁이다. 영국식민주의가 아일랜드에 준 뜻밖의 선물이 영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일랜드는 유럽의 변방에 속했지만 유럽과 세계문학의 지형을 재편한 작가들을 배출했다.


노벨문학상이 한 국가 문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는 결코 될 수 없지만, 어쨌든 아일랜드는 예이츠, 쇼, 베케트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노벨상 작가를 배출했다. 예이츠 이후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가장 위대한 아일랜드시인”이며,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를 갖추어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 고양시키는 작품을 썼다”(노벨위원회)는 평가를 받았던 시인 셰이머스 히니가 얼마 전 작고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에 그의 시전집이 번역·출간되었지만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위대한 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꼽는 한 기준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갱신과 변모의 정신이다. 시인에게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원로’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나이 들수록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 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에드워드 사이드)을 감행하는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시인으로서는 죽은 것이다. 시인은 오직 자기 자신과만 경쟁한다. 식민주의 시대를 살았던 예이츠와 독립 후 북아일랜드 분쟁을 목격했던 히니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점은 자기갱신의 노력이다. 그 분투가 위대한 시인을 만든다.


예이츠와 히니는 자연주의 시에서 출발하여 아일랜드의 착잡한 현실을 고뇌하는 정치시를 거쳐 예술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는 진실, 손쉬운 달관은 없다는 통찰을 말년의 시적 성취로 보여준다. “어떤 협약도/ 내 예견컨대 고약으로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 너의 밞아 다져진/ 그리고 임신선 새겨진 몸을, 그 커다란 고통/ 너를 다시, 열려진 땅처럼, 날것으로 방치하는 그것을”(<아일랜드 통합령>)을 히니의 시는 드러낸다. 역사에 편재해온 폭력을, 그리고 폭력 앞의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나는 교활한 관음자, 훔쳐본다.”(<형벌>) 그리고 문학과 노동의 관계를 천착한다. “내 손가락과 엄지 사이/ 웅크린 펜 하나 놓여 있다./ 나는 이걸로 땅을 파겠다.”(<땅파기>) 문학은 섣부른 초월이 아니라 “웅크린 펜”을 연장으로 삼은 현실과 삶의 “땅파기”이다. 위대한 시인은 달관하지 않는다.


‘원로’가 될수록 너무 쉽게 달관하고, 초월을 말하고, 용서를 설파하는 ‘도인’ 시인들에게 히니의 시를 찬찬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노란 색상은 퍼온이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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