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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를 선언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24

‘속도 없지…’. 오랜 가을장마 끝에 되살아난 청명한 날씨가 반가울 법도 한데,
오히려 ‘하늘도 무심하지’ 읊조리며 회사 문을 들어설 때였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이렇게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지난 여름 날씨가 하도 고약해 여름이 끝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 완연한 가을이네요…
.” ‘예, 그렇죠?’
 
개운치 않은 심사라 건성으로 답하고는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아무리 고약한 계절이라도 지나가기 마련이지.’
 

솔직히 말해 이젠 편지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설마 아버지와는 다르겠지 했는데, 님은 아버지가 휘두르던 권력의 폭력을 그 정점에서 이어받아,
거기에 추력을 더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유신의 2단 로켓을 분사하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검찰총장을 사찰하고,
의혹에 불과한 것들을 언론에 흘려 사퇴를 압박하고, 비서실과 장관을 통해 나가라고 발길질하고.
 대한민국을 제집 행랑채쯤으로 여기고, 일국의 검찰총장을 행랑채 머슴 정도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장관은 사냥개나 다름없으니, 국민들은 어떤 신세일까요.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인가 봅니다. ‘출발이 부정했고, 과정이 추접했으니,
 마지막은 얼마나 더러울까….’ 과거 폭정을 저질렀던 더러운 정권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권력이란 게 도덕적일 순 없습니다.
그러나 입만 열면 원칙과 윤리와 상식 따위를 쏟아내면서 실제로는 반칙, 변칙, 부도덕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런 끔찍한 생각을 어찌 막겠습니까.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내쫓으려 하다가,
정작 사표를 내자 돌연 사표 수리를 안 하겠다며 뻗치고 있는 대목에선 아예 기가 막힐 뿐입니다.
하수인 노릇을 한 언론을 제외하고 친정부 매체들조차 비판적이고, 만만하게만 여겼던 시중 여론도 냉소적으로 돌아서고,
전국의 검사들이 동요를 넘어 집단으로 반발할 지경에 이르자,
그들이 제기한 의혹을 붙들고 늘어지자는 것이겠죠.
 

대통령부터 진상 조사가 먼저라고 토를 다셨죠. 참으로 착잡합니다.
의혹을 제기한 자들이 밝혀야지, 무관하다고 하는 당사자에게 스스로 밝히라고 다그치는 게 어찌 대통령이 할 짓일까요.
게다가 채동욱 총장이 법원에 고소를 했으니 사법적 절차에 따라 진상 규명은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그를 어떻게든 내쫓으려던 청와대나 법무부가 나서면 될 일이 없습니다.
 
사찰부터 공작 그리고 물리적 압력까지 행사했던 집단이 사실 여부에 대한 판관까지 하겠다고요?
 이런 대명천지에 그런 하품 나는 개그를 정색하고 하는 모습을 보자니 제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진상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는 식으로 채 총장을 몰아붙이기 위한,
 이를 통해 자신의 추접한 행위를 감추기 위한 졸렬한 수작에 불과하다는 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생각해 보십시요.
사표를 낸 총장이 어떻게 다시 돌아와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찍어내겠다는 인사권자의 의지가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인데,
그가 조직의 수장으로 있다면 검찰 조직은 망가질 일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공익의 최고 대변자입니다.
공익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검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검찰을 무력화시켜 국민에게 좋을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정권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려먹던 정권은 말로가 다 불행했습니다.
그걸 잘 아는 분이니, 검찰 기능마저 국정원,
정확히 말해서 정보기관의 사찰과 공작에 넘길 생각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한때나마 기대를 가졌던 게 부끄럽기만 합니다.
지난 6개월은 불행하게도 미래로의 압축적 행진이 아니라, 과거로 압축적 퇴행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쌓아놓은 유신의 옹벽을 허무는 데 20여년 걸렸는데,
그것을 불과 6~7개월 만에 복원하고자 한 시기였습니다.
아버지는 탱크를 앞세워 정부기관과 입법부, 사법부, 방송사 등을 장악했다면,
님은 기존의 국정원을 이용했습니다.
 
일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보기관이 댓글 달기 따위의 허드렛일까지 맡아가며
정권 창출과 정권 보위에 나서도록 했죠. 국정원은 경찰의 손목을 비틀어 수사 결과를 조작하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갖고 정치적 분탕질을 치고, 사찰과 정치공작으로 공직사회를 좀비로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채 총장 강제사퇴 사건을 두고 검찰의 독립성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의 윤리 문제라고 호도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역대 정권 가운데 윤리적으로 가장 엉망인 사람들을 내각과 청와대에 포진시키려 했던 정권이 누구였는지.
공직자의 윤리 문제를 따지려 했다면, 정홍원 국무총리의 위장전입,
황교안 장관의 전관예우 및 병역기피 의혹 등에 대한 조사가 먼저입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해선 어떠했습니까. 그런 인사의 화룡점정은
김기춘씨의 대통령 비서실장 기용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를 기용하면서 윤리 운운할 수 있습니까.
그에겐 온갖 망령이 붙어다닙니다. 유신, 지역감정, 공안통치, 공작정치 등.
그를 기용할 때 이런 일을 염두에 뒀어야 하는데, 참으로 미련했습니다.
 

이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이 막장 드라마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티브이 드라마라면 안 보면 됩니다만,
지금 님이 제작, 각본, 연출, 주연을 도맡는 이 드라마는 국민 모두를 엑스트라로 동원한 까닭에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위안을 삼는 건 이 드라마가 너무나 빨리 막장의 요소들을 모두 드러냈다는 겁니다.
 
시청자들이 안 볼 수야 없지만, 속지는 않을 것입니다. 님은 5년 내내,
혹은 그 뒤까지 드라마를 계속 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에 의해 드라마가 종영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화무십일홍이라고, ‘한복 입은 예쁜 대통령’의 효과에 기댈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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