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를 맞으며
이관희
캘리포니아에 와서 사는 동양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며 차가운 비가 내린다.
벌어먹기 힘든 세상에 오랜만에 비 좀 온다고 해서
마음까지 달리 쓸 수야 있으랴만,
워낙에 가믄 땅에 와서 살다 보니
배고픈 사정 못잖게
가슴 허한 것도 아픔인 줄 알게 되어
햄버거 굽던 손을 잠시 멈추고
비 내리는 낯선 땅을 내어다 본다.
지금쯤 이민 올 때 심어 놓은 뒤마당의 감나무에
감이 여나므 개는 매달렸을 텐데,
참, 가을볕에 취해서 날마다
저고리 갈아입듯 하던 감빛이 어떤 것이었더라?
이민 살다가 시장기 드는 사정은
굽다 부서진 햄버거로라도 채우면 되지만
가끔씩 가슴이 허해지는 증상은 무엇으로 고치나?
거기 누구 처방 가진 사람 없소?
홍시/정지용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웨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 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 딱
훠이 훠이!
<쌀 한 톨의 무게>
홍순관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툴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주) 어떤이는 송편을 빚고
어떤이는 햄버거를 굽고
어떤이는 고향의 감을 그리워 하지만
우리는 모두 쌀 한 톨의 무게... 우주의 무게
모두 평안하고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를!
비: 캘리포니아는 비오는 날이 드물어 모처럼 감상에 젖나본데
여기는 가을부터 봄까지 늘 비가 오니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의 구멍:
칼레드 호세이니의 And the Mountains Echoed 에서 한 구절
"엄마는 내게 삽을 주며 말했어요. '이걸로 내 가슴의 구멍을 좀 메꿔 다오'"
추석:
어제 들은 건데 이번 추석의 달은 미국에서도 Harvest Moon이라고 한답니다.
보름달이 추분과 겹치면 지구와 가장 가까워져서 유독 크고 밝아 보여
서리를 앞두고 추수를 서둘러야 하는 농부들이 밤 늦게 까지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게다가 원래 월출은 매일 50분씩 늦어지는데 Harvest Moon 다음 날은 30분 후에 뜨기 때문에
밝은 밤이 길어져서 농부들에게는 고마운 달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