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하기 봉사대를 워싱턴 동부에 있는 인디안 reservation 에 다녀 왔다.
알고 보니 장로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10여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그곳에 와서 본토인들을 돕다는
지도자격인 몇 사람이 있었다.
직업이 목수, 기술자, 건축 하청업자들이다.
안식일교인 '선교사' 들이 대개 의료인들인데 비해
이곳에서는 이분들의 기술이 크게 유용했다.
첫날부터 그들과 코드가 잘 맞아서
재미있게 지냈다.
하루는 그 중 한사람인 마크(가명)와 단 둘이 트럭을 타고 가는 중
그의 얘기를 들었다.
'은퇴는 했지만 가만 있는 성격이 아니라
이것 저것 고치기도 하고
교회 일에 바쁘고...
TV 볼 시간도 없고...
TV 는 Fox News 밖에 안보는데
(속으로 '아차' 했지만 그냥 들었다)
Fox News 밖에 볼 것 없다. 언론이라는게 다들 좌파 일색이고
미국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리버럴한 인간들이 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하고
도대체 오바마 케어라는게 말이 되냐?'
내가 맞장구를 쳐 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계속 듣기만 했다.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주제를 바꿔보려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금새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이기적 자본주의, 미국 우월주의의 보수 우파 이데올로기에 푹 젖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반젤리칼 기독교나 Fox News 에서 하는 이야기들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복지는 공산주의다
총기 소유는 헌법의 권리다
내 자유를 제한하지 말아라
이 나라는 오바마와 민주당 때문에 망한다
등등등
논쟁에 휘말려서 모처럼 좋은 관계가 망가질까봐
듣기만 하면서, 주제를 바꿔보려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둥
갖은 노력을 다하다가 결국에 할 수 없어서
겸손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말했다.
'뭐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의사로서
현재의 의료제도에 문제가 많아서 피해를 보는 국민이 많으니
적어도 세계 최대의 풍요국인 이 나라가 국민의 의료보험을 보장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알면
혹시 좀 잠잠해질까 기대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마크는 더욱 열을 올려가며
'사회주의' 를 욕했다.
여기 이 사람
해마다 거의 한달을 이런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이
"왜 정부가 내 돈을 가져다가 불법 이민자들을 구제해야 하느냐" 고 침을 튀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 주말까지
마크는 나에게 전과 같이 대하지 않았다.
도대체 뭔가?
마크같이 선량하고 의로운 사람을 저렇게 '의식화' 한 것은 무엇인가
5분전까지만 해도 죽이 잘 맞아서 히히덕거리던 우리 사이를
얼음장처럼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따지고 보면 별로 다른 것 없는 마크와 나의 삶을 저렇게 칼로 자르듯 '다르다' 라고 규정하는
이 빌어먹을 좌우 레벨 붙이기는 어디서 나왔나?
동료 교인들 중에도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 만 빼면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러시 림보를 듣고, 팍스 뉴스를 보고, 글렌 벡을 영웅시하고
오바마는 적그리스도, 국가 의료보험은 공산주의...
이 게시판에서 보는 대로
한국 교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별반 다른 것 없는 교인들인데도
좌우 가르는 정치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시퍼렇게 날이 선다 ^^
=====
(사족)
좌와 우가 들어가는 표현들이 한자에 많다.
항상 좌가 먼저 나온다
좌우간
좌우분별
좌지우지
좌고우면
좌우존비
좌충우돌
좌수우봉
좌우사량
좌청룡 우백호...
우가 먼저 나오는 것은 단 하나
혼돈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ㅋㅋㅋ
우왕좌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