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을 응원하며...

by southern cross posted Sep 24, 2013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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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면 오래전에 프랑스인들이 정착한 마을이 있다. 지금은 간간히 불어로 쓰인 간판이 보이긴 하지만, 더 이상 프랑스 마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민망할 정도로 별로 프랑스 풍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바게트 빵집이나, 위그노초콜렛 가게가 있어서 다행이긴하다. 프랑스인들이 이곳을 찾을 때, 바게트 빵집이나 초콜렛 가게만큼이나 중요하게 찾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위그노 박물관이다. 이곳에선  16세기에 종교 박해를 피해 아프리카 최 남단까지 내려와서 정착하고 살았던 이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박하지만, 당시 유럽의 과거와 흔적을 볼 수 있다.. 말그대로 흔적일 뿐이다. 그중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에 관련된 것부터, 낭트 칙령, 프랑스의 위그노 등 여러 흥미로운 역사적 흔적들을 볼 수 있어서 기회가 되며 종종 그곳에 들리곤 한다. 근래에 방문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동인도 회사와, 위그노 프로테스탄트들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한 장면이 다른 동시대의 다른 한 장면의 배경이 되어 이 둘이 겹쳐서 스쳐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프랑스의 종교개혁 운동에 앞장섰던 위그노들이 결과적으로는 박해와 탄압으로 영국, 네덜란드, 독일, 아프리카 등으로 피신을 떠나게 된 사건은 세계사 교과서나 엘렌 화잇의 각시대의 대쟁투 상권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독일로 피신한 사람들의 숫자 만큼 꽤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 남쪽 끝자락에 있는 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도망을 가게 되는데, 이들을 태운 배가 바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VOC)의 선박들이었다. 이들 동인도 회사 소속 갤리선에는 신민지 개척자들 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위해 몸을 실은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돕기 위해 동인도 회사를 이용하셨던 셈이다.

 

 

이곳 위그노 뮤지엄 입구에는 1998년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남긴 문구가 있는데, 두 단어가 유독히 머릿속에 머물러있다.

Liberte et Tolerance (자유와 관용)!

신앙의 자유, 그리고 이들의 인내를 시라크 대통령은 '자유와 관용'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한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은 이 두 글자에 모두 담아 낼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리라!

 

이쯤에서 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근래에 올라온 설교문에 달린 댓글에 쓰인 '기독교 본질' 사이의 관계와 이 둘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트의 정신'기독교의 본질'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공통된 카테고리 안에 있는 개별적인 두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기독교'라는 표현이 아래에 올라와 있는 설교문, "새로운 교회의 탄생을 응원하며...

(by 곽건용 목사),에 댓글을 단 프로테스탄트님이 쓴 '기독교'개념과 동일한 것이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남다른 행보에 비판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독교의 본질은 여타의 프로테스탄트 정신 만큼이나 중요하게 사랑의 실천에 강조점을 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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