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교 교과 지도를 맡았다.
원래 담당자가 갑자기 출타하는 바람에...
부흥과 개혁이라는 주제의 마지막 제목이
늦은비다.
늦은비
참으로 들어본지 오래다.
30여년 전 신현철 목사님의 종말론 시간에
종말론에 관한 몇가지 주제 중에
늦은비라는 주제로 숙제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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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선지서에서
문자적인 기근을 당해 굶주리던 이스라엘에게
오해의 여지 없이 생생하게 받아들여졌던 이른비와 늦은비의 약속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type 으로서
말세에 올 글로벌 대 부흥과 개종 사건의 예언으로 해석되어 왔다.
사도행전 2장이 이른비고
계시록 18장이 늦은비다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요엘 2:28 이후에 나오는 성령부어짐에 관한 약속을
말세의 늦은비에 적용한다.
흥미있는 사실은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자신들의 성령 경험을 요엘 2장의 성취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늦은비' 를 이른비의 사도들이 자처했다는 말이다.
신약의 구약 적용이 늘 그래 왔듯이
각 시대마다 자신들의 경험을 구약 '예언'의 '성취' 로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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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의 전기를 읽다가
우리 교회의 초기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늦은비' 가 강조되기 시작하던 것을 알았다.
'언제 시간이 있으면 제대로 연구해봐야겠다' 라고 표시해 놓은 기억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 엘렌 화잇이 쓴 글들로 인해
늦은비는 마치 말세에 올 기념비적인 역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오늘 교과의 내용이 그렇다.
계시록 18장 광명한 천사의 외침처럼
말세에 대량으로 개종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엄정한 약속이다...
(계시록 18장 광명한 천사를 강조하는 것은
개혁파가 전문이었다.
바벨론에서 나와라...)
밀가루 원조로 교인 수가 배로 늘었을 때
'성령이 내리고 있다' 라고 했다던가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에
미국의 원조와 함께 재림기별이 소개될 때 대량으로 개종하는 일을 두고
늦은비가 내린다고도 하고
하루에 천명이 개종되는 화잇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마음 한구석은 찜찜하다.
글로벌 대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 우리보다 더 '히트' 를 치며 수십배의 성공을 거두는
오순절 교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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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과를 보니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모르겠다.
요엘2장이 '만인에게 성령이 임해서 이상을 보고 꿈을 꾸는' 그런 사건이
재림운동의 최 절정을 이루는 글로벌 사건이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교단이
정작 선지자 직분을 한 구체적인 사람에게만 헌사하고
그 이후에는 선지자 없다고 말하는
이 엄연한 아이러니 속에
늦은비 성령이 어쩌고 하기가 낯간지럽다.
사도행전 2장이 이른비로서
늦은비는 이것보다 더 찬란하고 쇼킹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단에서
과연 사도행전 2장과 같은 불의 임재, 방언 같은 것들은
철저하게 경계되어 오지 않았던가?
우리는 무슨 민낯으로
말세에 우리는 그것보다 더 큰 불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것이다라고 말하는가?
우리에게 성경은
왕왕 그랬듯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거의 역사였거나
아니면 미래에 올 신비한 사건이었다.
그 둘 사이에 숨어서
우리는 현실의 중요한 숙제들은
몰라라 하든지
중요한 것들이 아니라 하면서
껍질 속에 숨어 살고 있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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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천명씩 개종하는
말세의 예언이 목하 이루어지고 있다고 대총회는 말하지만
사실
미국에 있는 한인 안식일교회들이나
한국의 안식일교인들의 실제 경험은
그렇지 않다.
현상유지
체제 유지
시스템 유지
이것이 현실이다.
싸워서 갈라지지 않고 현상유지 하면
잘 나가는 교회다.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총체적인 '글로벌 리바이벌'이 있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그런 와중에
앞으로 늦은비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여
이 기별이 찬란한 빛을 발하여
세상 모두가 안식일교회 신앙으로 개종하든지 멸망하든지 선택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허구 헌날
타석에서 삼진 아웃만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월드 시리즈 7차전 경기
9회말 2 사후 풀 카운트에서
결정적 만루 홈런을 날릴 때가 올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보통 어려운게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어쨌거나
'늦은비' 나 조사심판, 1844년, 흔들림, 체질, 일요일휴업령 같은
초기 재림교회의 주제들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관심없는
내 교회 교인들에게
이번 교과를 어떻게 접근해서 가르쳐야 하나?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늦은비' 나 조사심판, 1844년, 흔들림, 체질, 일요일휴업령 같은
초기 재림교회의 주제들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관심없는
내 교회 교인들에게
이번 교과를 어떻게 접근해서 가르쳐야 하나?
사람들의 생각은 별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끌어내고 결과를 이루는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고심했지요
인텔리겐차가 많지 않은 궁벽한 시골에서 그야말로 이웃의 정과 사랑으로 교회에 입문하신 분들이 많은 교회는
이런 주제가 실로 머리아픕니다
다음 기는 성소 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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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순서대로 제목과 주제와 단어풀이 부터 합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많아서 경험을 물어보고 대답을 끌어냅니다
요즘은 김장배추가 잘 자라고 있지요
김장배추 씨앗 뿌리고 나서 비가 오면 어떤가요 -- 알맞은 비가 오면 씨앗이 땅에 뿌리가 잘 박혀서 자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교회 처음에 와서 이런 경험 있나요 -- 그럼요 처음 사랑으로 교회에 왔다가 예수님을 배웁니다
그 다음에는요 -- 예전 생활을 버리고 새롭게 살려고 결심합니다
그 결심의 증거는요 -- 침례입니다
침례받고 나서 생활의 변화를 경험합니까 -- 네 . 그러다가 조금 시들해지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씨앗이 뿌려져 자라는 것으로 이른 비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은 우리는 모두 이른비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말하는 늦은비는 무엇일까요
요즘 내리는 비는 농사짓는 지금 좋은 비입니까-- 알맞게 내리는 비라면 채소와 곡식 모두에게 좋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나서 내리는 비와 결실을 맺게 하는 요즘 비의 관계는 어떤 겁니까-- 모두 필요한 겁니다 둘 다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생활로 말하면 지금 나에게 늦은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어떤 분은 침묵. 어떤 분은 수긍)
그럼 늦은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말해보세요 --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했다, 전도지를 주었다 , 그 분을 위해 기도한다 . 등등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처럼 우리는 소수이고 인구는 무척 많습니다
온 세계에 주를 전파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이고 어렵습니다
성령을 받아 어느날 갑자기 온세상이 복음의 물결로 모두가 달려나가야 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주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생업이 주의 사업에 전적으로 매진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로 매 순간을 살면서 주어진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늦은 비 성령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마음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늦은 비를 받을 것인가
언제 올 것인가
종말 바로 전에 임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주눅들게 하고 회피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 경험하기도 했고 이른비만 하염없이 맞고 있기도 합니다
부흥과 개혁은 이른비 늦은비 할 것없이 나 자신의 변화를 요구하고 그 변화에 따라 살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의 그림처럼 하늘도성이 우리를 손짓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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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주고 받고를 이렇게 옮겨 보았는데
교과공부는 그 교회의 상황에 따라 가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기는 성소 주제라고 성소에 관한 참고서가 합회에서 왔더군요
앤드루스 신학대학원생이 번역했다고
먹기는 하지만 소화를 시켜서 입으로 내 보낼 때는 걱정이 됩니다
쉬운 입말 언어를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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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한 것이 타당할까요
공부가 끝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싶네요
하늘에서 심판하실 때 가르치는 선생의 책임이 중하다 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