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로교 장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제목이 천국환송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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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영혼문제는
우리 전도회의 전가의 보도였다.
안식일이 토요일임
죽은 다음에 영혼 없음
이 두 칼로
머뭇거리는 영혼을 묶고 있는 개신교의 두 족쇄를
통쾌히 끊어 버리고 개종시키는 것이 전도회의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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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이 영혼문제에 대해 고민한 것은
틴에이저 시절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감리교 출신 다른 목사로부터 지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엘렌 화잇은 평안을 되찾았다.
선지자가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리고 일부 밀러주의자들의 성향으로 인해
'조건적 영혼불멸'은 일찌감치 SDA 의 교리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중엽 미국 사회를 풍미한 강신술운동은
사후상태에 관한 SDA 교리를 더욱 공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영혼 불멸은 '사단의 최초의 거짓말' '사단의 최대의 거짓말' 이 된다.
일요일법과 더불어 강신술이야말로 말세의 대쟁투의 촛점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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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개신교인들의 분위기는 좀 다른 것 같다.
위에 말한 '천국환송예배' 처럼
영혼불멸의 문제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죽음 후의 평안에 대한 소망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아는 개신교인들은
사랑하는 어머니/아버지가
죽음 후에 소멸되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데에 오싹해 하고
천국에서 예수님 품에 편히 쉬고 있다는 데에 평안을 느낀다.
18,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을 풍미한 지옥에 대한 공포보다는
천국의 소망과 위안이 더 절실하기 때문에
이들은 사후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물론
죽은 자에게는 그 다음 눈 뜰 때가 천국(SDA) 일 것이기 때문에 상관 없을 터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사후에 없어진 채로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 바로 예수님 품안에 있다는 것이 더 평안하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솔직이 잘 모르겠다.
이런 개신교인들에게
당신들 틀렸다, 속고 있다 라고 가르치는 것
쉬운 일 아니다.
게다가
강신술이 말세의 위기감과 함께 받아들여지던 19세기 중엽과는
사뭇 다른 오늘날
영혼불멸설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여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 아니다.
교리 전도로
당신들 틀렸다, 거짓말에 속고 있었다, 우리 말이 맞다 고
결판을 내던 전통적인 방법은
한계가 있다.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넘어오는' 신자들 있기는 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교인들로 가득한 교회는
논쟁적이고 전투적이다.
정말 허무하고 절통한 마음이었습니다.
우주 어딘가에서 내게 응원을 보내든지,
아주 '이기적인 의미에서 구세주에 대한 믿음'이 깊었던 어머니가
그 예수님 품에서, 이승에서의 한을 모두 잊고,
평안하시다고 믿고 싶은 때가 정말 있었지요.
이젠, 다가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순간 깊은 잠에 들어
이승에서 벌어지는 세상사에 전혀 무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는 '진실'이 위로가 됩니다.
어느 경우에나
'개종'의 근간이 전투적이기 쉬운 현실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시시때때로 예민한 문제를,
역사와 상식을 바탕으로 전해주는 님의
의식을 즐기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