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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그른 것과 싫은 것 / 호인수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전에 살던 성당 옆 골목에 작고 허름한 밥집이 하나 있는데 옥호가 만나식당이었다. 반찬이 깔끔하고 맛있는데다 인심도 후하고 값도 싸서 교우들과 함께 자주 이용하다 보니 주인아주머니는 자연히 내가 성당의 사제인 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밥값을 치를 때면 자기는 교회에 다니는 신도라 목사님께는 돈을 받지 않는다며 꼭 내 몫은 제하고 계산을 하는 거였다. 처음 한두 번은 단골을 잡기 위한 상술이려니 했는데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한마디의 공치사나 흔한 생색도 없었다. 아무래도 공밥이 부담되어 나는 교회의 목사가 아니니 돈을 받으셔야 한다고 정색을 했지만 “똑같은 주의 종이신데요, 뭐”라며 손사래를 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에게 교회의 성직자는 성직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 신도들과는 달리 특별대우를 해드려야 마땅한 ‘주의 종’이다. 주인에게 충직한 종인지 불충한 종인지는 굳이 따지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낼 뿐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분의 배려에 고마움을 넘어 점점 더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을까?


한번은 낯선 교우 한 분이 나를 찾아와서 자기네 성당 사제를 없는 데서 막 욕하고 흉봤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신자가 사제를 욕하면 죄가 되겠지요?” 내용인즉, 사제가 주일 강론시간에 툭하면 정치 이야기를 하고 지난번 선거 때는 노골적으로 야당 후보의 편을 들더라는 것이다. 그게 너무 화가 났단다. 내게 온 것을 보면 비록 욕은 했지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왜 사제에 대한 비난을 죄라고까지 생각했을까? 사제는 예수님의 권위가 부여된 존재라는 믿음에서? 나도 사제라는 걸 의식해서 한번 해본 소리였나? 듣는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니 보나 마나 그는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동조를 구했을 게다. 나는 잠시 여유를 두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보십시오. 그 신부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싫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싫어하는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게 못마땅했습니까? 만약 그 신부가 당신처럼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강론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으셨겠지요?”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그는 사제의 강론의 그릇됨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사제가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가렸던 것이다.


개신교의 목사나 천주교의 사제는 ‘주의 종’이기 때문에 어떠한 비판도 불가하다는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잘못이나 실수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 300년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2000년에 주교회의 명의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온갖 세상사에 대한 복음적 판단은 교회, 그중에서도 특히 사제의 직무에 속하지만 그 판단이 과연 옳은가 그른가를 따져보는 것 또한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럼에도 교회나 성직자에 대한 비판을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거나 교회를 거역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억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으면 질책을 당해 마땅하겠지만 단지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안팎의 정당한 비판들이 종종 순명의 이름으로 봉쇄되는 것을 본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로 인하여 당할지도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서일 터다. 단언컨대 그런 교회의 미래는 어둡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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