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교회

by 백근철 posted Nov 17, 2013 Likes 0 Replies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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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교우 몇 분들과 잠실 야구장엘 간 적이 있다.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의 발로였을거다.

아니면 우리 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앙을 하시는 그 장로님이 의외로(?) 야구를 사랑하시는 사실이 재미있어서 였거나.

진짜 본심은 치어리더의 응원이 궁금했던 나의 속물근성의 발로였을거다.

야구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사실이지만


머리털나고 처음 가본 야구장.

말로만 들어보던 치어리더나 구경해야지하는 하는 생각이었지만, 

우리가 속한(?) 외야에서는(그곳은 의외로 자본의 카테고리를 인정하는 계급사회였더라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외야였기때문에 야구장이라는 장소와 야구를 보러 온 사람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세속적인 장소라는 그곳(말세의 특징이 3S라 했던가?)에서 나는 쉽게 교회를 떠올렸다.


시작부터 내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사람은 치어리더와 수천의 팬들을 홀로 이끄는 단장이라 불리는 남자.

교회로 치자면 수천명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카리스마적인 남자(?) 목사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같은 남자지만 나는 그 남자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나는 뚱딴지 같이 '여성안수' 문제가 생각났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어쩌면 성서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여성안수'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에 대한 관심보다는 다른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8:2라 말할정도로 여자가 절대다수인 교회에서 여성들조차 여자목사를 반대한다는 기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카리스마로 온통 도배한 남자 응원단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팬들을 보며 희미한 힌트를 보았다.

남성들의 로망인 젊고 예쁜 치어리더를 이끌며 수천의 팬들을 지배하는 남자응원단장.

그런 곳에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단장을 여자로 교체하라는 나같은 사람들의 철없는(?) 주장은 남성들의 동물적인 힘을 연상시키는 우렁찬 응원가에 파묻힐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뜨거운 기도를 좋아하는 그 장로님이 야구를 사랑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

그러고보니 선수도 감독도 모두 남자다.

그러면 여성 야구단에 남성 치어리더로 구성된 응원단이 이 땅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이 문제는 논리나 근거의 문제가 아닐수도 있구나....

어쩌면 내가 강하게 주장해온 것들 또한  '진리' 혹은 '의로움'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정서나 취향의 문제는 아니었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목사 하나, 장로 하나, 집사 둘과 집사 가정의 아이들이 갔는데...

다들 시종일관 즐거웠다.

거기서 우스운 상상하나 해봤다.

교리에 대한 토론을 이 사람들을 앉혀놓고 해본다면 어땠을까?

엄청난 논쟁이 있었을거다.

거기엔 사상적으론 근본주의자에 가까운 장로님부터 자유주의자로 오해받는(?) 집사님까지 있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 설교만 듣고 풍산교회는 진보적인 재림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로 알고 있지만 그건 오해다. 우리 교회는 신앙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고 또 다양한 교단의 사람들이 안식일에 모인다. 속칭 '일요일 교회' 여자목사님으로부터 가톨릭 신자에 이르기까지...오전이든 오후든 아니면 밤이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들 오고 싶을 때 온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당히 보수적인 재림교회다. 단지 좌와 우를 헤매고 다니는 담임목사의 철학없는 설교에 관대한 교우들일 뿐...) 


실제로 정체성이란 말이 한참 유행을 탈 때

우리는 조지나잇의 '재림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란 책을 안식일 오후에 같이 읽은 적이 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조지나잇같은 이상한 사람이 어떻게 재림교회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칠 수 있냐고 흥분하는 장로님으로부터

재림교회 신학이 이렇게 유연했었냐고 흥분하는 청년들까지...(흥분들의 차이는 늘 미묘하기 그지없다)

가장 차분한 사람들이 삼분의 일정도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신앙하는데 전혀 문제될 이유도 없고 당신들이 뭘갖고 갑론을박을 하던 나는 교회다니며 내 신앙을 하겠다는...

그들은 안식일 오후에 사택에서 열렸던 그 뜨거웠던(?) 모임에는 한 번 참석하고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저 교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자기네들끼리 잡담을 하거나 혼자 성경책을 읽거나 할 뿐....


그런데...

야구장엘 가보니 신조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고 흥분해가며 논쟁할 일도, 무관심할 일도 없더라는....

저 건너 내야에서 신나게 응원하는 단장과 큰 북소리에 맞춰서 그저 하나가 되더라는

각자가 응원하는 팀은 달라도 야구로 하나가 되더라는....

교회가 못하는 일을 야구장이 하고있더라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갈라져 수많은 교단을 만든 건 좋다.

야구도 팀이 많으면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그들이 서로를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사도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하나되었던 교회가 이젠 서로 다른 무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교단만 달라도 서로 사랑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우리는 자주 '사랑'은 진리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고

모든 교리의 기본임을 망각한다.

사랑은 "경건의 기초"라고 한 화잇부인의 말씀도 잊어버린다.

'진리교회'라고 하면 사랑이 으뜸인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참 기독교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정말 여성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부터, 동성애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동성애자는 고사하고)까지 사랑하는 데 으뜸인가?

자신이 없어진다...


맑은 가을 하늘 빛나던 그 일요일에

근본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이도 어른도 

모두가 신났지만

멋진 응원단장 신발끈도 못 멜것 같은 카리스마 제로인 목사 혼자 씁쓸해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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