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후손과 뱀의 전쟁은 성경전체를 흐르는 예언이고 역사이고 기별이다.
가인과 아벨의 각기 다른 제사에서 그 전쟁이 출발하여 한쪽은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쪽으로 계속 흐르고 다른 한쪽은 성을 쌓는 (창 4:17 가인이 쌓은 에녹성) 쪽으로 흐르면서 왕권이 중심이 되는 세력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성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세상 유일의 신정국가로 맥을 이어가고 세상의 중심세력은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역사를 넓혀가는데...
출애급에서 그들이 말한 "사흘길쯤 떠나 희생을 드리려한다" 는 성소중심의 건국목적을 상실하고 이 세상의 제도 즉 왕권제도를 도입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왕권 때문에 갈라지고 성소조차 지킬 수 없는 약소국이 되고 말았다.바벨론으로의 포로생활은 성소제도의 나라를 왕권이 집어삼키면서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처럼 암담해지는 이스라엘의 종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다니엘서는 옛 이스라엘(성소의 나라)과 당시 최고의 왕권을 가진 나라 사이에서 얼키고 설키는 역사이고 예언이다. 거기엔 그 전의 어떤 강한 나라도 나오지 않고 열발가락 또한 옛 이스라엘의 종말로 끝이난다. 이스라엘의 성소를 직간접으로 홰손하거나 핍박하는 세력(왕)을 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뿔을 잡고있는 뱀의 세력과 성소를 통해 일하시는 여자의 후손과의 예언이 중심이다. 그 뿔의 절정이 다니엘 8장에 등장하고 그 성소의 절정이 다니엘 9장에 등장하면서 소위 성경 (특히 구약의 패전)전체에 흐르는 카이아즘 (Xiasm) 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8장 9장
알렉산더 어린양( 기름부음을 받은자)
강성할때에 꺽인 뿔 이레의 절반에(한참일 때에) 끊어짐
33세에 죽음 33세에 죽음
암몬신전에서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부름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 부름
정복자 정복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네 (왕권)방향이 그에게서 나옴 네 방향 (4 복음)
열발가락의 의미-섞일 수 없는 이 두 세력의 존립 그리고 이 두세력 (성소와 뿔의 나라)이 앞으로도 종교역사 (세상역사가 아닌)속에서
계속 이어질것이라는 예언.
그리고 돌나라-뜨인 돌 (STONE CUT OUT OF MOUNTAIN) 절대로 공중에서 날아온 돌이 아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아니고 초림에 관한 예언임.이레의 절반에 끊어짐(cut out)을 당한 어린양의 나라(십자가)가 태산이 될것이라는 은혜의 왕국에 대한 예언.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대단하게 성장한 그리스도의 교회들.
2300 주야에 대한 나의 생각.
이상의 틀을 가지고 보면 다니엘서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부터 십자가(새로운 성전) 사건후 70년
그 이후의 일들을 예언하지 않고 있슴. 그러므로 2300주야의 예언이 그 이후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생각됨.
다시 말해서 1844년 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임.
만약에 우리가 숫자 중심으로 보지않고 사건중심으로 본다면 성소가 정결하여 지는 사건은 십자가의 사건임.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는 옛성전을 뒤엎고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슴.
십자가는 "의 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이미 책망한 사건임.
2300 주야에 대한 예언을 줄때에 구약의 인자(에스겔)에게 사용한 이름 "인자야" 라고 하는
호칭을 다니엘에게 불러주었슴.
그리고 성경에는 실제적으로 하루 (1일) 가 일년으로 해석된 부분은 많으나 주야가
일년으로 바뀌는 사례는 잘 보이지 않음.
또 하루가 아니고 주야를 언급한 경우는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표상을 위해 쓴 것들임.
그리고 그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시작으로 다시 요한계시록에서 그 이후의 예언을 다루고 있는것도 생각할 주제.
다니엘의 그 예언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그림자와 실제의 만남처럼 연결되어 전체로 재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함.
다니엘서에서 우리는 초림을 보고 계시록에서는 재림을 보아야 함. 다니엘서의 끝은
옛이스라엘(열두지파)이 성소 (왕권이 아닌)로 돌아오는 역사이고 계시록의 끝은
새 이스라엘(새로운 열 두지파)이 성소의 주인인 어린양에게로 돌아오는 역사임.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지만 성경적 (우리 모두가 툭하고 들이미는)이라는 이 절대절명의 주제앞에서 나도 혼절한 다니엘의 심정처럼 착찹하고 사건적으로는 분명해 보이는 그 해석이 숫자적(2300 주야)으로도 뒷받침이 되지 않아서 고민이 됨. 그러나 숫자에 메어서 사건을 버리게 되면 또 다시 밀러의 꿈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를 범할것임.
혹시 마음에나 손에 언제나 돌을 쥐고 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 계시면 그런돌 말고 저 뜨인돌(cut out of Mountain) 하나 던져 주시요. 아니면 왜 아닌지 맞다면 왜맞는지를 확인해주시고 도움되는 말들도 아낌없이 보내 주셔서 우리의 pilgrim이 더 윤택하여지도록 해 봅시다. 나는 평소에 이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일부는 될지라도)가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그 소리(voice) 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 소리 (복음의 기쁜 소식) 전하며 살기를 희망합니다.우리 교단에서 성경을 칠십번 읽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대 선각자인 HMS Richards 목사는 복음이란 한마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관해서만 대단한 연구들 하신분들이 많은데 사실 사복음에 정통한 분들이 우리 교단에는 별로 없어보이는 것이 나의 아쉬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