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를 보고.

by 백근철 posted Nov 28, 2013 Likes 0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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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김주영 장로님이 전에 썼던 두 글이 간격을 두고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영동 십자가'란 글은 2012년 정월, 민초에 쓴 글이고 그 즈음 '우리 시대의 엘리야'라는 주제로 말씀을 준비하던터라

저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나는 이렇게 불법적인 일을 해서 먹고 산다),

무단 인용을 했다.

그 말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십자가"는 교회의 첨탑에서 이 땅으로 내려와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요즘 민초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성소신학'의 발전적인 연구에도 그 글이 한 몫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셀마 시위에 참가한 재림청년들'이란 글.

카스다에 있고 리뷰 주필의 글을 요약번역한 글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셀마 시위'에 참가하는 주인공 아들이 나온다.

혹시 못 읽으신 분도 있을 것 같아서 여기 다시 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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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흑인들의 민권운동 행진에
안식일 교회는 없었으나
안식일 교인들은 있었다.

리뷰 주필 빌 낫은
캘리포니아에서 알라바마까지 달려가 행진에 참여했던
안식일교인 젊은이 네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폴 캅 (Paul Cobb), 윌 배틀스(Will Battles),
페르난도 카날레스 (Fernando Canales),  밀턴 헤어 (Milton Hare)

그들은 안식일교인 집안에서 자라났고
안식일교회 학교 교육을 받았거나
PUC 에 재학 중이었던 19세 20세 청년들이었다.

폴과 윌은 흑인이고,
페르난도는  히스패닉, 
밀턴은 백인이다.

이들은 교회 내의 인종 차별을 피부로 느끼며
교회가 인종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던 청년들이었다.

당시 PUC 기숙사는
같은 인종이 아니고서는 같은 방원이 될 수 없었다.

이들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섞여서 방을 썼다.

이들은 알라마마 자유 행진의 소문을 듣고
2천 3백 마일을 달려가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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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알라바마에 있는 우리 대학 오크우드 칼레지에 도착했을 때
흑인 학생들은 이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오크우드 칼레지마저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금하고 있었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징계한다는 경고가 내려져 있었다.

오크우드의 흑인 학생들은
이들에게 기숙사 침대를 내 주고
자신들은 바닥에서 잤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네 학생이 안식일에 헌츠빌에 있는 교회를 찾았을 때
백인 일색이었던 그 교회는 
이들을 문전 박대했다.
백인 집사는 욕설을 퍼부으며 이들을 밀어 냈다.

생전 처음 교회로부터 이런 박대를 받아 본 그들에게는
잊혀지지 못할 충격이었다.

더구나 안식일 오후에는
학생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단도리하기 위해 내려온
대총회 청소년부장과  논쟁이 있었다.
오크우드의 학생들과 캘리포니아 사인방은
교회 내의 인종차별 해소를 위해 대총회가 모종의 결단을 내려 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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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에 동참하여
직접 백인들의 몽둥이 세례를 받기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을 체험했다.

3월 25일 시위대가 2만 5천명으로 불어났을 때는
오크우드 학생들 몇명도  학교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위에 뛰어들기도 했다.

안식일교회 청년들이었던 이들 네명에게
셀마의 경험은
교회에 대한 깊은 환멸을 가져다 주었다.

그 자신 초기 유력한 재림교인 집안의 자손이었던 밀턴은
셀마 이후 교회를 떠났다가
25년만에 다시 돌아와 조그만 교회에 다닌다.
베이 지역의 홈레스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운동권 흑인 폴은 각종 정치 활동에 몸담았다가
지금은 오클랜드 포스트라는 지방신문을 경영하고 있다.
그는 안식일교회에서 배운 원칙을 실천하고 신앙을 인정하지만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다.

히스패틱 페르난도 역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PUC 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학위까지 받은 그는
교회가 사회 정의 에 대해 무관심한 것에 깊은 실망을 하였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리뷰지는 본다고 했다.

윌은 셀마 이후 오크우드 칼리지를 졸업하고
교회 기관에서 일했었다.
그는 여전히 교회에 잘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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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대한 기사는
http://www.adventistreview.org/2005-1521/story1.html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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