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by 고바우 posted Jan 05, 2011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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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입니다.
그러나 또 현재의 일입니다.

 

과거 사경회나 전도회 때 많이 듣던 이야깁니다.

 

1844년 가을 재림운동이 실패하고
이제는 예수님 지성소로 가셨다고 전파되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요 대속죄일이니
자기를 괴롭게 하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남은 때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대속죄일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심판 뿐 조용히 대제사장의 방울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속죄일에 범죄한 자들은
대속죄일이 끝나는 날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재림이라고 들었습니다.

 

요즈음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조사심판중인 은혜의 기간에는 그리고 대속죄일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조사심판이나 대속죄일의 기별에서는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그 기별을 바탕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해서 나온 것이 완전주의와 율법주의 였습니다.

구원받을 자는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한다고
그렇게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이 교단이 처음부터 가졌던 신념이고
믿는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며 이유이며
그러하기에 1888년의 기별을 배척한 동기였습니다.

 

그 결과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고
작은 것 하나라도 죄 짓지 않기 위하여
고춧가루도 안 먹고
고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과 만나거나 사귀면 감정이 들어가니까
꼭꼭 숨어서 은둔자처럼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죄짓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누가 조금만 뭐라하면 버럭하며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산을 보고 물을 볼 때에는 그렇게 잔잔하고 호수같던 마음이
사람만 만나면, 교인만 만나면 다시는 서로 안본다고 합니다.

 

죄는 짓지 않으나
정말 차가운 돌맹이 같은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말로는 개혁하자, 연합하자 라고 하지만
조금만 이해가 다르면
너와 나는 다르다고 싸우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 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시작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그리스도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 심판과 해야할 것만 있었습니다.

 

심판이 복음이기에
죄를 짓지 않아도 내가 짓지 않아야 되고
율법을 지켜도 내가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남과는 다르다는 철옹성 쌓아왔습니다.

누가 깨자고, 이제는 다 버리고 오직 그분께로 나아가자고하면
우리 신앙의 근본이 흔들린다고 배척하며 쫓아냅니다.

 

입으로는 오직 예수라고 말하나
실상은 그곳에 예수 없습니다.

 

정말 아직도 모릅니다!

 

내가 예수 찾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나를, 우리를 찾는 것입니다.

 

엄한 곳을 헤매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분은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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