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는게 낫다

by fallbaram posted Dec 13, 2013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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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올때 (창조시) 지구는
첫째 혼돈
둘째 공허
셋째 흑암이라고 얘기 했다.

창조는
첫째 그 혼돈의 질서를 만들고
둘째 공허한 것을 온갖것으로 채우고
셋째 그 어두움에 빛을 정하는 것이었다.
 
욥이 시험을 받는 도중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서로간에 한마디로 혼돈스럽고 공허했다.
당대의 의인 욥이 받는 고난이 무엇인지?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그의 의문과 원망이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하나님이 지적하면서 빛처럼 나타나시고 하나님은 창조의 엄청난
일들을 열거하시고는 이렇게 되물어신다.
 
니가 그때 거기 있었느냐고?
 
요한복음 1 장에는
영적으로 혼돈하고 공허한땅 모세의 율법으로 인하여 어두워진 유대땅에
창조보다 강력하고 창조보다 차원 높은 참빛이
생명 은혜 진리라는 충만으로  임하였다.
 
그리고 그 빛은 창조보다 엄청난 사업인 구원 (십자가-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이루셨다.
그리고 찬미가는 이렇게 묻고있다.
 
주님 십자가 못박히실때 누가 그의 곁에 간일 있느냐?
 (이 찬미는 한번쯤 흥을거려 보세요)
 
· 
요한복음 9장에는
날때부터 소경 (흑암)인 자에게 빛을 주고
본다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
 
 
우리는 지금 혼돈 스러운가?
그렇다고 고백하자
 
우리는 지금 공허한가?
그렇다고 고백하자
 
우리는 지금 캄캄한가?
적어도 영적으로는 그렇다고 고백하자
 
그리고 대장부처럼 허리에 진리의 띠를 띠고 구속의 주인인 어린양앞에 서자

 
창세기에 여호와 하나님 아담 그의 아내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하신 이 가죽옷이 원어로 보면 가죽 띠라고 되어있다는 어느 성경학자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그 띠도 나의것이 아님을 아는 자들아
오늘도 그분을 찬송하자!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여기의 이 여자는 천주교가 아니고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다.
순결하다는것은 모든 악에서 떠나 살았다는 그런 얄량한 욥의 행위적 고백이 아니고
나는 창조의 현장에 그리고 구속의 마당에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않았다고 고백하는것이다.
무엇인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그 여자의 꾀임에 속지않았슴이 순결이다.
나는 캄캄한 존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함이 어둠의 순결이다.
흠이 없다는 것을 율법 차원에서 보면 죄를 짓지 아니한 것이고
은혜의 차원에서 보면 그 은혜에 내 육신의 의로움으로 흠집을 내지 아니한
순도 100% 의 믿음을 말 할 수도 있다. 결론은 각자가 낼 일이다.
 


하나님의 완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죽은것을 살리는 것이다.
죄인의 완전은 무가 되는것이고 죽어있는 상태로 가는것이다.
언젠가 장 수돈 (Johnston) 박사가 완전론이 이 교회에 문디이 병처럼 우후죽순같이
벝져갈 때 죄인의 완전함은 죽은 상태라 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 순간이
이제 생각이 난다.
 
그렇다면
아담에게 필경 죽으리라는 저주는 저주인가 복음인가
아니면 복음의 전조 인가??
필경 죽어야 다시 살 수있는 자들아 대답하라.

나사로와 함께 예수 앞에서 죽기를 원하는 자들아!
이 아침에 찬송하자!

죽은자들아!
찬송하자!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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