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안녕하지 못한 다음 세대들

by 시사인 posted Dec 14, 2013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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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나는 안녕했고, 안녕하며, 안녕할 것입니다 

거자필반 (rhdsidrh****)


 나는 안녕했고, 안녕하며, 안녕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를 쏟아 주었던 모든 사람들을 나는 기억합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나는 온갖 꽃들이 만연한 화려한 우물 안에서 꾸며진 하늘을 보며 자랐고,

어느 정도 머리가 커 스스로 깨우침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우물 밖에서 뻗어 오는 

피 묻은 손들을 잡을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택한 결론은, 아직은 우물 안에서 나갈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안녕하였습니다. 최소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 한다고 잘만 떠들고 다니던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할애하던 관심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기는커녕, 이기심에 사로잡혀 

오로지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갔습니다. 

그러한 이기심들로 잔뜩 부푼 가슴을 가지고 나는 안녕하였습니다.

학교에 들어가 교과서로 미약하게나마 사회에 대한 배움의 첫 계단을 밟았고,

점점 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였습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더 이상 높은 곳에 올라서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시절을 갈망하던 나는 안녕하였습니다.

부당한 시간에 대해 배울 때, 청년 '전태일'에 나를 대입하며 무엇이라도 된 듯 불타오르던 그 의지는 

누군가의 주입이 끝난 후에는 끓는점에 1도가 채 미치지 못해 끓지 못하고 식어 버렸습니다.

나 스스로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는 것이니 나는 비겁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합리화를 하며 나는 안녕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나는 현재도 안녕합니다. 

여기저기 구르고 부딪혀 닳아빠지고 헌 나의 꿈을 손에 쥔 채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 단언하지만, 

눈동자의 푸른색을 잃은 나는 안녕합니다. 시험과 입시에 시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경제는 대학에 가고 난 후 

배워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미뤄 두지만, 정작 나 자신의 재미를 위한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 순위에 두는 나는 안녕합니다. 

입시 경쟁에서 승리한 뒤 현재 텅텅 비어 있는 나의 앎의 그릇을 채울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노력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만을 꿈꾸고 있는 나는 안녕합니다. 

현재 나는, 꽃이 조금 많이 시들어 버렸고 드디어 아래부터 썩기 시작한 우물 안에 갇혀 안녕합니다.


 또한 나는 안녕할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겉모습만을 게걸스럽게 핥을 것이고, 

취업 준비와 등록금 마련, 공부 등에 치인다는 명목으로 그 게걸스럽고도 추악한 짓을 그만두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헌 모습으로나마 남아 있던 내 꿈이 어느샌가 시체가 되어 버린 것도 모른 채 순환선의 보이지 않는 종착지를 향해

갈 것입니다. 이제는 과히 썩어 버린 물의 냄새가 코를 찔러 오지만 우물을 나갈 방법도,

나가야 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우물 안에서 나의 꿈과 같은 모습으로 죽어 갈 것입니다. 

이렇듯 나는 검은 영혼의 모습으로 안녕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버릴 겁니다. 더 이상 안녕했고, 안녕하며, 안녕할 것인 나는 없습니다. 


 당당히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나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비겁한 인천의 열여덟 살 여고생이 씁니다, 

이 글을 볼 모든 분들이 나의 나약함을 용서해 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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