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반성하게 만든 노숙인의 메모 ( 출책 : 1 월 7 일 (금) -한국 - )

by 잠 수 posted Jan 06, 2011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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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매섭던 추위가 이제 좀 잠잠해 진듯 합니다.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지면 괜시리 몸도 마음도 움추러듭니다.
괜히 날씨도 찌뿌둥 한 것 같고, 덩달아 기분도 쳐지는 것 같고 이래저래 다운이 되는데요.

경기가 풀린다, 일자리가 는다, 대기업 매출이 사상 최대다. 신문을 보면 항상 좋은 소식 뿐인데요.
하지만 어인 일인지 제 생활은 팍팍해져만 가네요. 얼마전에는 큰 맘 먹고 소고기국 끓여 먹으려다가
호주산 소고기 양지머리보다 더 비싼 파 한단 가격을 보고 포기했는데요.

파는 물론이고 과자 한봉지가 1200씩이나 하는 살인적인 생활물가는 일정한 소득으로 살아야만 하는
저를 늘 쪼들리게 합니다. 게다가 연일 지면을 장식하는 공기업의 상여금 잔치, 신의 직장 어쩌구하는
기사를 읽으면 저게 과연 어느나라 이야기인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이런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최근엔 좀 우울합니다. 하지만 며칠 전 이런 제 생각을 반성하게 만든 일이 있었는데요.

저는 저녁형 인간이 아닌지라 오후 6시만 넘으면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런 연유로 야근을 거의 안하는데요.
대신 급한 원고를 쓸 일이 있다. 이러면 차라리 새벽에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합니다.
그날도 일찍 출근길을 나선 새벽녁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지하철을 타기 전에 입구 근처에 있는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는데요. 그런데 공터 벤치에 보니 누군가가 흰 종이에 쓴 메모가 있지 않겠어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봤더니 이런 내용이더군요.


"하루, 이틀.. 아니 적어도 3日, 아니 한 달 정도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주일만 설계하는 삶, 그것은 잘못된 습관이 아닌가? 부디 한달, 3月. 이정도는 설계하는
사람으로 남길 부탁드리면서 이만..."


차가운 돌로 만든 벤치 위에 놓인 한 장의 메모. 아마 노숙자분이시거나, 아니면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막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사시는 분이시겠죠.
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돌벤치 위에 메트 한장 걸치고 눈을 붙이셨던 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나를 반성하게 되는' 따위의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추위를 피할 방이 있고, 그리 좋지는 않아도 차도 있고, 이렇게 블로그질도 할 스마트폰도
있는 사람으로서. 이분에 비하면 저의 고민은 '투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매달 저축도 하고 보험도 넣으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지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 얼마나 암담한가요?
그러고 보면 모든 번뇌는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 연봉 높은 친구보면 짜증나지만... 반대로 백수인 친구를 보면 직장 다니는 것만도 행복이지요.
내 여자친구가 비록 에프엑스 설리보다, 소녀시대 윤아보다 못생겼지만 그래도 나만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저는 이 메모를 보며 그래도 내 생활도 이정도면... 하면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미래의 더나은 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희망'이 있잖아요?
남들 다 가진 것들 나도 가지고 있으면서 '더 좋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고민이 있을 뿐,
그래도 밥 해먹을 쌀이 없고, 몸을 누일 집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가끔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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