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육학원 채용을 절대적으로, 강력하게 반대한 목사

by 달수 posted Dec 26, 2013 Likes 0 Replie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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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읽기 편하시라고 단락을 나눈 것입니다.

여기에 못 들어오는 사이에 다듬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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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의 숙소에서 지내는 관계로 인터넷에 못 들어오고, 그래서
저와 관련된 글들에 대해서 일일이 채점을 해드려야 하지만, 여유
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억지로 하는 일은 자제하고, 자기
가 하고픈 일을 하고, 지어 올리고 싶은 글이나 지어 올려야 하지
요. 논쟁의 이야기에는 아까운 정력이나 소비하게 되어 전에 올리
고자 했던 글이나 올립니다. 맨 아래에, 답안을 작성해야 할 글이
있으니 해당되시는 분은 답안을 작성하여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들은 깎듯이 대접할 하나님의 종-목사일 테지만, 나는 목사
취급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4명 된다. 목사 취급은 고사하고, 오
히려 XX하고픈 사람들이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럼 이 글도 내 중심적으로 쓴 글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고, 그래서 이 이야기의 진실도를 알고
싶다면 이 글에 나오는 당사자들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볼 일이다.

--

첫 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듣는 말이다. 나에 대한 그의
첫인상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도 그의 인상이 안경을 코에 걸
치고 다니는 모습부터 시작하여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저 사람도
신자인가?"라고 나를 향해 삿대질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야말로
"저 사람도 목사인가?"라는 의문을 들게 하는 인물이었다. 교인이
세상 사람 하고 달라야 함은 당연하겠지만, 목사는 그래도 더더욱
달라야 한다. 목사는 풍채도 좋아야 하고, 의젓한 면도 있어야 하
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일반신자들에게 신앙
적으로 도움이 되는 직분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왜소
한 모습과 체격과 별로 시원치 않은 인상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그렇게 목사로서의 풍채가 영 아니라면, 인간성에서라도 목사다워
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오래 전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지내다가 돌아와보니, 목사
가 바뀌어 있었다. 일반신자들이야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이지만,
그 목사와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가 된다. 그 상황에서 문제의 사
건이 일어났다.

--

그렇게 서로를 잘 모르던 상황에서 둘째 안식일이던가, 셋째 안식
일이던가, 예배를 마치고, 나는 사택에 들어가려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목사이지
만, 나에게는 목사가 아니다. 이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라 함.)에게 말을 걸었다.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장이 안식일을 불완전하게 지키는데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표정이 굳어지
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왜 그랬을까? 아,
이 사람은 율법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 타인의 부족한 신앙에 대
해 비판하고 정죄하기나 좋아하는 사람이로구나...

--

얼마 전에 올린 글에서, 정죄도 정죄 나름이며 정죄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정죄를 무작정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다른 정죄임)이 이 교회의 정서이다. 그렇지만 예수님도 정죄를
하실 때에는 무섭게 정죄하신 분이다.(신약만 아니고 구약에서도)

-- 

여기서 그 청년회장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그는 나보다 나이
가 두 살 정도 아래인 사람이었는데 동사무소 직원이었다. 당시는
아직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토요일 오전에도 출근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반쪽
안식일이라 부른다. 그는 그렇게 불완전한 안식일을 지키지만, 교
회 일에는 그럭저럭 열심인 청년이었다. 가령, 교회주보들도 동사
무소 컴퓨터와 프린터로 만들어 갖다바치고(국가 재산을 축낸다는
부정적인 말을 지어낼 필요는 없다.) 안식일 대예배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오후에 와선 청년들과 어울려 잘 지내곤 하였다.(청년들
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발전도 거의 없는 청년회였다.)

--

그러나 그 동안 교인 자녀들이 토요일에 학교 결석을 하며 충실히
안식일을 지키는 모습을 보아온 나로서는, 그 청년의 신앙 수준이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즉 나는 그러한 상황을 두고 그냥 넘어
가지 못하고 기어이 말을 꺼내야 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발언을 꼭 남을 정죄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시야로 바라보아서 될 일인가? 그런 것을 교회 개혁적인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고, 신앙적으로 어떤 투철한 면
이 있구나 하는 식으로도 생각해주어야 할 일이 아닌가?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장, 안식일을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가 마음을 불편해하며 얼굴 표정이 굳어지게 되는 반
응을 보인 것이 요즘 교회 분위기상으로는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
다. 여러분들 중에, 젊은 여자가 귀걸이를 하고 교회에 나온 것을
보고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
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을 해버리는 사람이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불행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귀걸이 찬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줄 모르고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 밑에서 자라나오는 여청년들도 너도 나도 귀걸이를 하게 되고,
그러면 교회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것이며, 심하면 난장판이 될 것
이다. 그렇게 해서 귀걸이 차고 온 여 교인에게 귀걸이 차고 오지
말라고 대놓고 말해본 게 지금까지 3번 정도는 된다. 물론 앞으로
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나는 관용주의적 태도를 아주 싫어하며,
그렇게 해서 김정일 정권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보이고 그 정권이
연장되도록 아무 대가 없이 국민의 피같은 달러를 갖다 바친 DJ를
민족의 반역자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런 관용적 태도를 '햇볕정책'
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은 햇볕정책은 실패했다고 여
기는데 물론 나도 그러하다. 오래 전 카스다 게시판(그리고 이 게
시판에도)에 오메가 배도의 글과 주장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 (물론 그 상대편 사람들도 포함) 때문에 오히려 관용
과 정반대인 살벌한 분위기가 자주 형성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
한 관용주의와 포용적 태도에 대해 상당히 한이 맺힌 사람이다.

--

교인들이 얼마나 말(지적)을 할 줄 몰랐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집사의 기도를 시정시켜 주지
못했을까?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고쳐준 것이다.

--

그래서 내 의도는 청년들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갖도록
교회 어른들이 조언과 배려를 해주어야 하고, 안식일을 잘 지키는
청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회장의 자리에 안식일을 정상
적으로 지키지 않는 청년을 앉히는 일은 곤란하지 않느냐고 하며,
그래서 그에 대한 교회 어른들의 의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장, 안식일을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이
말에,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는 굳어진 얼굴 표정을 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나지막하고
냉정한 어투로 나에게 역질문하였다. "김XX 씨는 군대에서 안식일
을 지켰습니까?"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신앙을 제대로 했느냐.. 순
간적 감각의 역질문으로 같이 시비를 붙어 보자는 반응을 보인 것
이다. 내가 그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장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교회개혁적 차원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보려고 한 것
인데 되려 미움 받을 짓이나 하게 된 것이 아닌가?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진행된 것이다.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장, 안식일을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XX 씨는 군대에서 안식일을 지켰습니까?"
"나는 일병 때부터는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안식일 지켜서 구원 받습니까?"
"그럼, 안식일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겁니까?"

--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는가?"라는 질문은 평상시에 우리
가 구원론에 대해서 건전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할 적에는 나올 만
한 질문이겠지만, 그 상황에서는 꺼내서는 안 될 질문이다. 그 질
문은 같이 싸우고 논쟁해보고 그렇게 해서 너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는 의도로 꺼낸 말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군대에서 안식일 지켰는가?"라는 질문은 얼마나 간사한 질문인가?
나를 공격할 만한 말을 당장 만들어내지 못하여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는가?"라고 한 질문 역시, 간사한 질문이 아닌가?

--

위의 서술에 무슨 허위나 과장의 이야기가 있겠는가? 하여간...
그 후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고 글이 길어질 것이므로 생략하지
만, 상당한 신경전의 대화가 벌어진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양
보하고 응해주어야 할 쪽은 그 쪽이었지만, 그는 목사로서의 자존
심을 걸고 나에게 지지 않으려고 불편한 논쟁을 이어갔던 것이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자, 그는 노골적으로 "품성이..."라고
말끝을 흐리며 사택으로 들어가버렸다.

--

"품성이..."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나의 품성이 못됐다는 것이다.
타인의 잘못된 신앙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성격 하며, 시비 걸기를
좋아하는 성격 하며, 자존심 상한다는 감정을 참지 못하여 논쟁을
그치려 하지 않는 성격 등등...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러한가? 그야
말로 목사로서 모범이 되는 대화를 만들어서 나의 시비에 대해 좋
게 응했는가? "당신이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을 지켰는가,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는가"라는 식의 반응이야말로 정당한 반응
이며,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의 품성이야말로 이상적인 품성인가?
그야말로 애초에 시비를 건 내가 맘에 안 든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대화/논쟁을 이어간 것이 목사로서 정당한 반응과 품성인가?

--

"품성이...(못된 사람이로구만.)"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사택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나는 정말 그 뒤통수에
다가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런데 10년도 더 된 세월이 흘러 지
금은 그 감정이 누그러졌을까? 여러분들은 이해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심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후에
이어진 사건 때문이다.

--

그후 얼마 동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몇 달이 지나갔다. 그런
데 그 몇 달 후, 공교로운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지역의 삼
육 영어학원 직원이 이사 문제로 일을 그만 두게 되고, 그래서 직
원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내게도 전해져서 학원에
취직할 마음이 없냐는 이야기가 들어온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처
음에는 그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겐 하던 일이
있었던 데다가, 학원 월급이 나로서는 양이 차지 않는 수준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학원 직원 자리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밀어붙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러분도 다 알만한 삼육
대학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였다. (인플레의 영향으로도 그렇고, 기관 내 월
급이 너무 적다는 평판 때문에 요즘은 넉넉하게 나온다고 한다.)

--

그 당시 학원장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였는데(학원장은 목사가 겸직), 나나
그나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였다. 후에 같이 지내다 보니 이 사람
도 인격적으로 영 시원치 않은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들은 말로는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로 갔다던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으로 갔다던가 한다.

--

자, 여러분이 학원장이라 생각하고 직원을 구한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을 찾게 될 것인가? 근면성실해야 하고, 예의도 발라야 하고,
가능하면 매우 신앙적이어야 하고... 등등. 거기다가 외국에서 온
교사들을 상대해주어야 하니, 영어도 잘하면 좀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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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이라는 노래를 알 것이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아무리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
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그런 여자 실컷 찾아봐라.)

--

학원은 교회에서 세운 기관이니, 최우선적으로 교회청년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그럴 만한 청년이 드문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 혼
자 그 물망에 거의 유일하게 올라간 것이다. 내 이름이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나를 잘 모르는 상황이므로, 내가 어떤 사람
인지, 직원 자리에 어울릴 사람인지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좋은 정보를 얻게 될 만한 곳이 바로 담
임 목사일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은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인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에게 나의 됨됨이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나에 대해 절대로 학원
에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품성 면에서 못된
사람이고, 삐딱한 신앙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는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에게 왜
그런 평판의 정보를 주어야 했는가? 바로 몇 달 전 내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청년회
장의 부족한 신앙에 대해 정죄한 태도를 문제 삼아 그렇게 고자질
한 것이다. 그가 나를 반대한 수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강력하게, 완고하게, 격렬하게 그 청년은 절대적으로 학원
직원으로 채용되어서는 안될 인물이라고, 공사현장의 강철H빔보다
완고하게 반대를 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나를 반대했는지에 대해
서는 그 당사자를 개인적으로 안다면 직접 물어보고 확인해 보라.
그런데 이와는 전혀 딴판으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는 나야말로 거기에 들어가
야 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으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극히 당연한 일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한 인물에 대해서, 아무개는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아무개는 절대적으로 추천해주고 밀어붙이려 하다니...
이러한 서술은 후에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이 나에게 직접 들려준 이야기에 의한
것이며, 사실상 가만히 있어도 귀에 들어올 이야기들이다.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가 자신의 은사라고 나에게 밝히기도 하였다.
그런 은사님의 말을 그대로 듣고 나를 채용하자니, 담임목사인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주장하여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는 내가 그 자리의 최고 적임자라고 하며 전화상으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장에게 대단한 압력을 행사한 모양이다. 압력 행사라는 말이 이럴
때에는 긍정적인 말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간에 오
고 간 전화상의 대화는 정황상 이렇게 전개되었다.

--

나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에, 그 어떤 허위나 과장이나
꾸밈의 글을 지어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만 아래의 전화 통화의
내용은 내가 꾸며낸 이야기인데, 후에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원장이 나에게 직접 해준
말을 가지고 지어낸 것이며, 이 내용은 사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

--

------------ 전화상으로 있었을 대화의 내용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 : 어이,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 안녕하신가? 자네, 학원에 직원 자리가
          비어 사람을 구한다면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 : 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말씀대로 제가 지금
          남직원 한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 : 그럼, 잘 됐네. 내가 김 아무개라는 청년을 잘 아는데,
          그 청년이 학원일과 교회일을 잘할 사람이니, 학원으로
          들여보내게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 : 아, 예, 그 청년 이야기가 마침 들어왔습니다만, 그 청
          년이 어떤 청년인지 제가 잘 몰라 알아보는데, 담임목사
          인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하던데요.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 : 그게 무슨 소리인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가 뭔가 잘못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 테고, 그래도 그 청년이 제일 적격이야.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 : 그렇지만,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의 반대가 너무 심합니다. 그 청년이
          도대체 어떤 청년입니까? 정말로 신앙적으로 괜찮은 인
          물입니까?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 : 글쎄,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가 그 청년에 대해서 뭘 안단 말인가? 내
          가 그 청년에 대해서 더 잘 알아. 군소리 말고 그 청년
          을 채용시켜.
(여기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이 취하게 될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지원자에
게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게 하여 학원 일에 적당한 사람인지 알아
보고 확인하고 평가한 다음에, 채용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 : 교수님,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이건 제가 직접 관장하
          는 일이고, 한 번 직원으로 채용하면 오래도록 같이 지
          내면서 많은 업무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교수님이 그렇게 소원하신다고
          한다면, 제게도 좋은 생각이 있는데, 그 청년에게 아르
          바이트 생활을 하게 하여, 그 후에 제가 알아서 정직원
          으로 채용해야 할지 판단하겠습니다.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 : 어,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라도 해가지고
          채용되도록 추진해. (딸깍)
---------------------------------------------------------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이 나의 채용에 대해 대단한 고민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나
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매우 심하고 극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여기서, 나로서는 또 하나의 억울한 점이 있다. 나에겐 오래 전에
도 학원에서 일하게 될 기회가 있어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학원일이 어떤 일인지 알 만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기간에 또 더 적은 월급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니, 더욱 억울한
일이 아닌가? 차라리 하던 일이나 하고, 학원에 취직하는 걸 포기
하고 말지. 나에게 자존심이 더 강했다면 그렇게 학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는 나에게 거의 빌다시피하며 학원
에 들어가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것이다. 너야말로 그 곳의 최고
적임자이니, 어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원장을 찾아가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인사하고
취직해서 영혼구원 사업 열심히 해봐라... 그렇게 해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교수가
아니라면 들어가지 않았을 그 학원에, 아르바이트 기간을 거쳐서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

그렇지만 아르바이트 2개월, 정직원 10개월 해서 꼭 1년만에 나는
그 학원을 그만 두었다. 학원 사업은 영리 목적임과 동시에, 영혼
구원 사업이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직원과 교사들과 원장의 신
앙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학원생들 중에 신자가 되겠다고 결
심하는 구도자들이 그렇게 쉽게 생겨나겠는가? 수천 수만 장의 전
도지를 길에서 뿌린다 해도 겨우 한두 사람의 교인이 생길까 말까
인 것처럼, 학원에서의 영혼 구원 사업도 어려운 것이다. 열매 맺
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면 나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일을 해도 될 것이며, 또 그 동안에 학원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청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만 둔 것이다. 그리고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장의 일하는 스타일도 맘에 안 들었고, 그래서 같이 있기 싫었다.
다른 원장이 부임해 와봐야, 얼마나 내 마음에 들어 잘 적응될까?

--

그런데 그렇게 그만 두도록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학원 채용을 강력하게 반대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 나
의 됨됨이에 그렇게도 심각한 어떤 문제와 결함이 있어서, 목사의
반대를 당해야 했나? 그 감정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학원에
서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취직을
반대했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가 생각났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마치 사탄의 앞잡이의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단 말인가? 그
는 정말 내가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대했다. 교회일을
하려는데, 교회 목사가 강력하게 반대를 하다니! 그렇게 학원일과
교회일을 하는 데에 시간이 지나면서 의욕을 잃게 된 것이다.

--

학원을 그만 둘 때에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원장은 나에게 그렇게 고백했다. 나를 채용
하는 데에, 아무개는 지독스럽게 반대하고, 또 아무개는 너무나 적
극적으로 추천을 해주고, 그래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는데 같이 지내
서 알고 보니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청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다. 그래, 내가 학원에서 일하게 되면 맨날 말썽이나 피우고, 교
회를 어지럽게나 하고, 그래서 학원을 말아먹게나 생겨먹은 인물로
알았단 말인가. 이 말은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보다는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아무개에게 하는 소리이
다.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할 직장에, "아무개 청년회장은 왜 안식일
을 제대로 안 지키는가"라고 비판했다고 하여, 무슨 심각한 문제점
이 있다고, 그 직장에 그렇게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
대를 당해야 했는가? 게다가, 나는 (중도에 그만 두긴 했지만...)
그래도 전공이 영어영문학이 아닌가? 그래서 외국인 교사들과 의사
소통하는 일에 애로사항이 없을 것이며, 그들에 대한 뒤치닥거리에
도 잘 응해줄 것이 아닌가? 게다가 아르바이트 경력도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학원 일에 잘 적응할 사람이 아니었던가? 목사들끼리는
서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말이 잘 통한다고 하지만,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원장은 그
때 그러한 상황에서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할 적에 왜 같은 목사에
게만 의지하여 뒷조사를 하려 하고, 다른 장로님, 집사님이나 일반
신자들에게 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는가? 나를 반대했던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와 나는 서로를 안지 1년도 안 된 상황이었지 않은가?

--

그 7,8년 후, 나는 재림마을 행정망에 글을 올렸다. "연합회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씨 메일 주소를 알고 싶습니다." 김균님은 행정망에 자주 들어가실
텐데 그렇다면 이 글을 보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행정망에 들어오는 사람은 다들 교인이고, 그렇다면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목사라고 불러주어야 할 텐데, 왜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씨라고 불렀을까? 하여간,
답글은 곧 올라왔다. 아래는 그때 보낸 메일의 내용(일부)이다.

---------------------------------------------------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씨, 당신도 목사요?
당신은 얼마나 잘난 (성인군자의) 품성을 가졌소?
(내가 아무개 청년회장을 정죄하는 못된 품성을 가졌다고 했는데)
당신은 내가 학원에 취직하려고 할 때에 얼마나 나를 정죄했소?
당신은 XX교회 신축현장에서 건축자재를 같이 싣다가 왜 슬그머니
도망 갔소?
당신과의 경험은 아주 쓰라리고 쓰라린 경험이었소.
아주 간사한 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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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간다고 하여 연합회까지 진출한 목사에게 나는 그렇게 했다.
위 글에서 괄호를 친 "성인군자의"라는 말은 메일 속에 없다. 집어
넣었어야 할 말인데, 그 당시에 생각이 안 나서 넣지 못한 말이다.
물론 답장이 왔는데, 당시에 학원에 취직하려 할 때에 반대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식의 반응을 나는
기대했는데, 그런 말은 없이 그냥 얼버무리는 식의 글을 보내온 것
으로 기억한다. 사실상, 목사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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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장로교 안에서 이런 일
이 일어날까? 절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절간의 스님이 신자에
대하여 그런 반대의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인가? 그러므로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절간의 스님만큼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의 방식--이 게시판의 회원들은 여호와의증인의
절반도 못한 사람들인 것처럼...) 교인들끼리 그렇게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해서, 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나오도록 하는 사건이 일
어 나야 하는가? 이러한 극단적인 감정과 심정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신다. 그러므로 내가 올리는 이 글은 사람과 하나님 앞에도 올리
는 글이다. 위 글의 인물들은 독자들도 잘 아는 인물들일 것이다.
자꾸 반복하는 말이지만, 나의 서술에 그 어떤 허위나 꾸밈이나 과
장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사자들에게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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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도 연합회에 찾아가서 그 멱살을 잡고 뺨을 치고 싶은 심정
을 갖고 있다. 인간이 불완전해도 어떻게 그렇게 불완전할 수 있을
까? 게다가 목사라면 일말의 융통성이라도 가져서 그렇게 완고하게
나와서는 안 되었던 것이 아닌가? 성경의 역사는 폼으로 배웠는가?
오히려 성경 역사를 배워 그렇게도 완고하고 모자란 인격을 갖추게
되었나? 개신교의 목사제도의 단점이 그렇게 심각하면 심각한 것이
다. 목사들이야말로 신자를 함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교
인들보다 잘 났다는 행세를 하려 들지 말 것이며 차라리 눈치 빠르
지 못한 바보처럼 지내라. 그러면 오히려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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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게시판의 논객들에게도 고한다. 한 교회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한다면, 이렇게 "준(sub)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게
된다.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자존심을 더 내세워
반발하고 발악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용납되어서는 곤란할 일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or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교훈하는
사람이 잘못을 지적 당하면, 왜 인정하려 들지 못하는가? 그대들과
같은 사람이 하늘에 간다면, 난 차라리 지옥에 빠져 멸망 받을란다.
하늘에서도 반발, 발악, 논쟁, 반목, 시비를 일으킬 것이 아닌가?

 

---------------------------- 후기 ---------------------------

길게 지어올린 글을 여러분은 잘 읽었으며,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
만, 여기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질문하고 싶다. (이야기의 진
행상, 낮은 말로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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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접장님이신 김원일님은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
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한다고 할 때에 극렬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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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지아님. 님도 마찬가지로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
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한다고 할 때에 극렬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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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을 제
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
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
하려고 할 때에 그를 미워하며 극렬하고 강력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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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baram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
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
한다고 할 때에 그 청년을 미워해 극렬하고 강력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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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춘님. 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
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
한다고 할 때에 그 청년을 미워해 극렬하고 강력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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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관님. 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
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
에 취직한다고 할 때에 강력하고 극렬하고 지독스럽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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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님. 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
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
에 취직한다고 할 때에 극렬하고 강력하고 완강하게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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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오 목사님도 어느 청년이 다른 청년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하여 "그대야말로 군대에서 안식일
을 제대로 지켰는가?"라고 역질문하며 같이 시비를 걸 것인가?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은 사건이 진행된다고 가정하여, 그 청년이 학원
에 취직한다고 할 때에, 비뚜른 신앙관과 못된 품성을 지닌 청년이라
고 정죄하며 극렬하고 강력하고 완강하게 그 채용을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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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들도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아무개처럼 나를 반대할 것이면 여러분들도 [관리진에서 삭제한 부분]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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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뒤집어서 내가 그런 청년을 대하게 된다면, 나도 그런 청년을
미워해서 그 청년이 학원에 취직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질문이 들어오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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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올리게 될 글은 "나에게 뺨 얻어맞은 목사"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반말 좋아하다가 나에게 뺨 얻어맞은 건방진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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