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착각 기독교인의 착각 안식교인의 착각

by 지경야인 posted Dec 28, 2013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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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가?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만 정작 무엇을 근거로 말을 하는가?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

악성은 베토벤

뭐 이런 의미의 아버지인가?

아니면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성경의 역사의 시작점이라서 인가?

예수님의 조상이라서 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믿음의 시작점인가?

100세에 아들을 얻어서인가?

이삭을 모리아산에 재물로 바쳐서 인가

하나님이 하란에서 75세에 불러냈을 때 잘 따랐기 때문인가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을 때에 그 시대에 가장 훌륭해서 믿음이 더 좋아서인가

왜 아브라함의 자손은 400년을 종살이하여야 하였는가?

단순히 재물을 드릴 때에 새를 쪼개지 않아서인가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의 경고를 받아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일을 했는데

100세에 아들을 얻은 것이 믿음인가

아브라함은 130세에 데라에게서 태어났고

나훌은 아브라함의 동생으로 그 후에 태어났고

사라는 배다른 동생으로 140세에 태어났으며

노아는 샘 함 야벳을500세에 낳았고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후처에게서 6명의 아들을 더 얻었으니

늦은 나이에 이삭을 낳은 것은 노아와 비교가 된다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성실하였는가?

 

사라는 이복동생으로

유전적 근친혼으로 인하여 자식을 얻지 못하고

종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버리고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려는 무정함을 보이고

결국은 하나님이 개입하여 양으로 대체 되었으며

이것이 믿음이라면 입다의 딸은

만인이 보는 가운데 번재물이 되었으니

무남독녀를 드리고 영원히 후손하나 없이 된 입다야 말로 더욱 믿음의 조상이겠죠.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인 후손이라 한다면 굳이 아브라함만의 후손일수도 없으며또한 정작 성령으로 잉태한 주께서 어찌 육신적 유전적 아브라함의 후손이겠는가?

 

그리스도는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시니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도 없거니와 창조자가

 

아브라함이 당시의 다른 이보다 믿음이 뛰어나거나

도덕적으로 훌륭하거나

 

오히려 샘이 성경적 근거대로 라면 같은 시대에 생존해 있었고

같은 시대의 동방사람 의인 욥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은 존귀한 자였으니

이삭과 야곱이 멜기세덱과 그 후손에게 십일조와 헌물을 드렸다면 당연히

아브라함이 모든 부분에서 여타의 인물보다 훌륭했다는 근거가 희박하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하는 홍길동처럼

종의 아들이라고 본처의 후손을 희롱했다는 이유로 광야로 내 쫓김을 당하는 아들

이스마엘

아내를 자신의 안전을 위해 누이라 속이며 선물을 챙기는 파렴치함

분명히 바다 모래처럼 많은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고 버린 불신

 

그럼에도 아브라함의 후손 중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가계에서 400년이 흐른 후에

한 나라를 세우는 기적을 베푼 것은 결코 하나님은 훌륭한 그 어떤 이를 택하는 과정이 훌륭한 인격이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비겁하고

약하며 보잘것없는

전혀 내 세울 것이 없는

작은 자였다는 것이죠.

(고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 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더구나 400년동안 종살이로 더욱 약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종의 신분에서 이끌어 내시어 식물이 없는 광야에서 주리게 하시면서 더욱 낮추셨으며

만나로 인하여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 것임을 가르치시고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임을 밝히며

너희가 종 되었었으니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안식일을 주셨으며 율법을 반포하여 나라의 본을 세우셨으니

모세에 의하여 애급에서 구함을 받았으니 당연히 모든 영광은 모세의 후손이 받아야함에도

아론의 반차를 만드시고 오히려 모세의 후손은 모든 영광에서 배제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자리는 공로의 자리가 아니라

부르심의 자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아론의 두 자녀를 즉석 재판으로 죽이시고

결코 만홀히 여김을 허락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특권 의식을 없이 합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이 편지서에서 언급하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구원관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로 옮기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니

결국은 아브라함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구원이 아브라함족속으로 인한 구원이 아니라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아브라함은 특별한 한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그리스도처럼

제자들처럼

하찮은 존재였으며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밝히고자 하였으나

작은 자를 통하여 나라를 세우시는 데

종들의 나라를 세우시고

억압 받는자들을 구하시고

버림받은 자들을 구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하늘나라의 표상을 만들고자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만과 교만에 빠지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결국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 레위지파만 남고 다 흩어지고 말았으면서도

자신들만 구원받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교만에 빠지고 말았다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시고 새로운 ㄱㅖ명을 주시면서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하게 밝히셨으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야

성소의 제사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길을 제시하시면서

다시 한 번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던 길을 재조명하여

자신이 본을 보이사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그의 제자들을 문벌 없고 학식 없고 약한 자들을 택하사 하늘나라의 기틀을 잡으셨으니

아브라함에게 갈 길을 모르고 나그네의 삶을 살고 겸손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가난한자를 선대하도록 한 뜻이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선민의식으로 착각하면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사사들에서

인간이 인간을 직접통치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를 짓더니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후엔 남북으로 갈라지고 후엔 북방이스라엘은 잃어버림바되고

남방 유다마저도 바벨론 포로생활로 종의 신분을 망각한 백성을 나추셨습니다.

포로 생활 후에 또다시 선민의식으로 종의 삶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맙니다.

현세대 또한 그리스도의 삶을 버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랬던 것처럼

남은 무리니

구원을 받은 백성이니

택정함을 받은 백성이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니

하나님의 자신들의 작은 울타리로 한정지으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지못한 수 많은 종족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긴 잘못처럼

오늘날도 예수의 이름과는 상관없는 형편과 삶을 타고나는 이슬람 문화권 힌두교문화권

유물론의 공산권 아프리카오지나 문명의 해택과 상관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부모 잘못만나 가난과 억압과 비참한 생활로 삶을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노예로 종으로 가난으로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라면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 할수 있을까?

기회라도 준적도 없는 이들에게

하늘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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