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보다 더 멀고 더 형편없는 가난-나는 부요하여 부족한것이 없다 하여도

by fallbaram posted Jan 02,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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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반복해서  (무언가 보일때 까지) 읽다보면 그 쓰여진 배경이 창세기의
창조주일과 대조되고 옛언약과 새언약이 대조되는 패턴으로 기록되어 있슴을 보게된다. 
1장에서 "빛이 있으라" 하던 그 첫날의 창조처럼 "참빛이 왔다"고 하면서 그 빛은
말씀이었고 생명이고 또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시작한다.
빛에 대하여 비교적 창세기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것이다.

반복적인 성경.
확대되고 팽창하는 성경.
점점 자세하게 점점 밝게 비추는 성경
육의 단계에서 영의 단계로 넘어가는 성경

같은 빛이라도 그 의미가 보이는 것 (창세기의 빛)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빛 (영적)으로 
발전하고 다른 차원의 단계로 도약한다.
참빛과 참 어두움이 대조를 이룬다.
어두움이란 눈으로 보이는 어둠이 아니다.
빛이 왔으되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백성에게로 왕이 왔으되
왕을 알아보지 못함이 참 어두움이다.
그 첫째날이 밤과 낮이 갈라지는 창조의 첫날과 오버랩이 된다.

둘째날 (요 1:29 이튿날)은
창조의 둘째날이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었듯이
아랫 물의 침례 (침례 요한의 구약적 침례) 와 윗물의 침례 (성령의 침례)가
구별되는 날이다.

셋째 날 (요 1장 35절 또 이튿날)에는
아랫물이 바다와 육지로 나뉘듯이 율법의 저주와 심판이 있는 바다같은 광야
(침례요한-율법과 선지자)  와
일하지 않아도 젖과 꿀이 흐르는 메시야의 가나안 (진짜 땅)이 소개된다.

넷째날 (요 1장 43절 이튿날)로 부터 다시 사흘째가 되는 제 칠일 전까지 예수는
열둘이라는 숫자를 부르시고 채우신다.
그리고 가나의 잔치집에서
여섯항아리 (육일)를 채우고 그것의 비어있음 (쓴맛)을 모두 달디 단 것 (복음 그리고 안식)으로
바꾸시면서 창조의 주인도 나야! 그리고 구속의 주인도 나야! 라고 하시는 것이다.

창조의 그 육일을 채울 사람도 나 인자야!
그리고 구속의 그 비어있음을 채울 자도 나야!
율법은 비어있음이야 내가 곧 채워야할 그 속이야!
라는 간단한 기별이다.

창세기의 패턴이 나누인 것을 채우는 것이라면 요한의 이 새로운 창조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처음것에서 다음것으로
아랫물에서 위의 물로
심판에서 은혜로
초등학문에서 고등학문으로
몽학선생에서 복음으로
옛선생 (침례요한)에서 새 선생 (랍비)에게로
옯겨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단계에서는
낮을 위하여 밤을 버리지 않고
다음것이 왔다고 옛것을 버리지 않고
은혜가 왔다고 심판을 버리지 않는다.

동산 중앙의 두 나무 아래에 서서
생명과 대신에 열매가 아닌 선악과를
먹음직하고 또 보암직하다고 선택한 하와 (앞으로 있을 교회)의  선택처럼
차원이 다른 영적인 차원에서
우리도 선택해야할 두개의 나무아래 서게된다.

무언가 해야할것같은 마음
인간적 윤리 (누더기)에 마음이 더 쏠리고
그런 성경의 표현들이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하와를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할것 같은 기대
죄인이 하나님의 품성을 닮을것 같은 기대가
우리를 선악과 나무아래
오늘도 서성이게 한다.

아직도 이 단계에서는
원숭이를 없애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청사진?

그것을
우리가 잘 알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죄인인데 은혜안에서
죄인이 아니란 사실이
그렇게 의심스러운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그때에 완전히 지킬 율법이요
안식일이라고 우기면서
예수를 율법을 완전히 지키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그 교묘한 생각!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거듭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율법의 마력!!!

오늘도 예수는 문밖에 서 계시는 이유!

귀가 따갑도록 평생을 들었던 그 품성변화는
성경이 말하는 목적이 아니다.
성경이 원하는 우리의 품성변화는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졸졸 따라다니는
바로 그것이다.

니가 나를
따라오면
따라오면
따라오면...........

어린양이 누구인지 알자
어린양이 무엇인지 알자
그래야 졸졸 할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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