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떠날까요?

by fallbaram posted Jan 08, 2014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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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라고도 할것없는 두살 남짓한 시기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재림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마도 걸음마 수준이었을 그 시절에...

딱 한번 공립학교 선생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삼욱학교가 없는 공립학교에 다닌 기억을 제외하고는

유치원부터 나의 졸업장은  줄창 삼육이었다.


모태신앙 또는 부모로부터 무작장 따라다니던 그 울타리에서

신앙의 감 (?)을 잡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이유를 알수 없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우울증의 마지막 증상인 "자살" 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단계에 있을때


여기다 말할 수 없는 (소위 개신교의 그 어떤 영적인 체험 같은)

희한한 Encounter의 경험을 하게된다.

한마디로 십자가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너무나 따뜻하게.....


한없이 울었다.

남자의 몸속에 들어있는 모든 수분들을 짜내듯

그렇게 울었다.

궁창위의 물들이 쏟아져 내렸던

노아홍수의 재현이었다.


그리고 딱하나

남은배

십자가를 가리키는 그

배 하나만 남았다.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그 육신의 정신적 질병 (우울증)을 통해

내가 원치도 않았던

영적인 우울증 (박 희관님의 넋두리 속에서 비치는 그런)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을 경험했다.


성경을 읽다가 만난 하나님이 아니고

내 손을 잡아주신 주님의 도우심 때문에

그 이후 성경의 가르침들이 전과는 다르게

보여졌고

나는 그것을 계속되는 십자가와의 동행이라고

감히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재림교회의 뼈대를 형성하는 교리들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고

아브라함처럼 갈바를 모르나 어디론가 떠나야지

하면서 거지반 날마다 떠나는 연습을 하고 살았다.


누군가가 내 신앙의 간증들을 들으면서

이런말을 했다.

XXX 형!

그렇다면 이 재림교회야 말로  님이 깨달은 그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지가 아닙니까?


나를 향한 마누라의 18번 노래는

"너 있는데서 비추라" 이다.


2년전 어느정도 이곳 저곳을 (온갖 개신교회의 대형교회를 포함)을

방황하다가 마누라에 대한 애정 때문에

마누라의 손을 잡고 다시 재림교회로 출석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교회

너무나 좋으신 젊은 목사님께서 "이 기별 (?)을 준비할때에

가슴이 벅차서 그 감격을 누를길이 없었다"는 서론으로

시작하는 다니엘서 연구 시간 (금요일 저녁) 내내

벌떡벌떡 일어서고 싶고

나도 모르게 질문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손에 멍이들도록 내 손을 제지하고 꼬집는

마누라의 핍박도 받으며

이 아프리카보다도 멀고먼 오지(?)

안식일의 빛으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이제 저물어가는 내 육신을 안고 보듬고

벙어리 삼십년

당달이 봉사 삼십년

손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소아마비 삼십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나를 보고

학교를 잘못나온 사람이라고 혀를  끌끌 찬다.

굵직한 학교를 나오고 주변에 연줄이나  많았더라면

정치인으로 크게 성공할 여지가 엿보인다고 속을 뒤집는다.


혹자는 나를보고

한국에 나가서 성도 300 정도만 끌어 모으고

십자가 이야기로 계속 엮어가면

대형교회 하나가 나오든지

신천지 하나가 더 나올수 도 있으리라는 유혹도 한다.


이 게시판에서

가장 뜨거운 이쓔는 떠난다는 제목이다.


그 다음으로 뜨거운 것은 논쟁이다. 마치 이슈가 동성연애 같지만

논쟁 그 자체가  이슈란 말이다.


삼십년이 넘도록 부부로 살아보니

삼십년 (아니 백년이 넘도록) 장승처럼 변하지 않는 사나이의 그 순수한 사랑도

부부의 인연을 끌고가는 딱 하나의 이유가 되지도 않고 택도 없더라.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묻고

때로는 왜 사랑하느냐고 묻고

떠나 보내려하면 돌아오고

붙잡으면 또 떠날것 같이 사는것이

부부의 사랑이더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의 울음

천둥 먹구름

그리고 무서리도 내려야 하듯이

이 민초에서 국화꽃(?)을 피우려 하면

어느 누구의 색소폰 연주

또 어느 누구의 맛갈스런 카드에 담긴 음악

장백산의 정기

심지어 진돗개(?)의 컹컹거림까지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떠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조회수 (click click)를 보내는것은

잘 가라는 박수가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또 그런 결정을 잘했다는 갈채는 더더욱 아닐것이다.

오히려 아쉬움의 눈물일 것이다.


혹시 가더라도 그 눈물 잊지 마시오.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래는 그 마음들 잊지 마시오.


나도 떠나야 하는가?

이 언어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먹을것도 시원치 않은

배고픔의 땅을 떠나서

혹시 신천지 이상의 끝내주는 사업(?)을 벌린다면


동업할 분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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