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뭐길래

by 로산 posted Jan 07, 201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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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뭐길래 소로 태어나 험한 꼴을…
모두 인간의 잘못… 하늘 가거든 행복하길"


[세계일보]"그대들이여!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소로 태어나 이 험한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인간의 잘못으로 그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음이야. 우리는 큰 죄를 지었네."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했던 강릉시 지역경제과 장인수(50·7급)씨가

 최근 내부 통신망에 방역공무원 및 축산농의 슬픔과 고통을 실감나게 표현한 애끓는 시를 올려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다음은 장씨가 쓴 시의 전문이다.


구제역 파노라마 1



입맛 잃은 소에게 가끔 소주를 먹여 살려도 보곤 했는데 이번엔 아닐 성싶다.

구제역이라네. 겨울 짧은 해는 해넘이를 재촉하고 땅 꺼질 듯 한숨소리는 피눈물 되어 간장을 찢는구려. 포클레인이여

그대는 무엇이 또 그리 바쁘신가? 쉼도 없이 울어대는 굉음, 무심도 하지.

흰옷 입은 저승사자 소리 없이 외양간을 들어설 때 소와 주인은 넋을 잃고 말이 없다.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껌벅이는 눈망울엔 이슬이 맺히고 이슬 방울 속 주인은 애써 그를 외면한다.



구제역 파노라마 2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끌어 묻혔다.

세상 인심이 병들었다지만 몇 년을 한 우리 안에서 동거했을진대

 소주 몇 사발을 마신다고 죽은 가족의 슬픔이 잊혀지겠소? 애석도다.



부디 용서해 주시게.

 하늘에 가거든 구제역 없는 청정한 들판에서 편히 풀 뜯으며,

 평화로운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라네.

우리를 원망하시게. 정말 미안하네.



강릉=박연직 기자 repo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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