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에 카스다에도 한번 올렸던 글 입니다.)
며칠 전 한국의 한 뉴스를 들으면서 문득 어렸을 적의 한 친구 생각이 났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군산에서 초등(국민)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한국 전쟁이 끝 난지 몇 년이 되지 않아서 전쟁고아들이 많이 있었고 특히 서울이 아닌 농촌이나 어촌 마을에서는 아직 경제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도 부족하고 교사도 많이 부족해서 내가 다닌 군산 초등학교도 한 학년에 약 10반씩이 있었고 한 반에 거의 6~70명씩이나 되었던 소위 콩나물 교실이었는데 우리 반에도 항상 1~20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나머지도 극소수의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 중에 점심 도시락을 싸올 수 있는 아이는 대략 절반 정도에 불과 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당시에는 교회에서도 구호 물품이 있어서 우유가루를 배급 받은 기억이 있는데 학교에서는 주로 옥수수 빵이나 죽을 점심을 못 가지고 오는 극빈자 학생들에게 주기도 했었다. 지금 먹으면 어떨지 몰라도 당시에는 고소하고 약간은 달콤한 이 옥수수 빵이 참 맛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 옥수수 빵이 나오는 날을 기다리곤 했었다.
4학년 때 정도였던가 내 바로 옆에 앉은 짝이 고아였는데 당시 많은 고아들이 그랬듯이 제때에 학교를 못 다녀서 그도 우리 또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았다. 덩치도 우리보다는 머리 하나 더 있고 또 험하게 자라서 그런지 그야말로 요새 아이들 말로 하면 학교 쌈짱이었다. 웬만한 상급반 아이들도 거의 이 친구한테는 꼼짝을 못했었다.
그 날도 마침 점심시간에 옥수수 빵 배급이 구수하고 먹음직한 냄새와 함께 한 쟁반 가득 나왔고 담임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하나씩 나가서 급식 대상자들이 배급을 받는데 마침 내 짝인 이 친구 차례가 되자 선생님만큼이나 덩치가 큰 이 친구 성큼 성큼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이 건네주는 한 덩이 작은 옥수수 빵을 두 손에 받아 들고는 그날은 그답지 않게 완전 90도로 허리를 굽혀 배꼽인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꽝 소리와 함께 그의 이마가 선생님 책상 모서리에 있는 옥수수 빵 쟁반에 부딪치면서 교실 바닥으로 쟁반과 같이 빵들이 우르르 쏟아져 버리고 말았고, 이 엉뚱하고 급작스런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그만 모두가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보통 아이들보다 덩치가 2배나 큰 이 고아 친구, 고아원의 모자라는 작은 급식으로는 항상 다른 아이 보다 더 배가 고팠을 것이 뻔한데, 비록 작지만 구수한 냄새의 그 옥수수 빵을 받아들고 얼마나 먹고 싶고 고맙게 생각 됐으면 학교에서 가장 거친 전교 짱이 90도 배꼽인사를 했겠는가! 내 기억으로는 그 날 크게 웃다 걸린 몇 몇 그 짱 친구에게 곡소리 나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 얻은 성과물치고는 너무 작은 그 옥수수 빵 하나가 주는 행복은 당시의 수많은 부모 없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밥 굶기를 밥 먹기보다 더 많이 하여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맛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횡재이기도 하면서 작은 행복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짱 친구가 그 옥수수 빵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내 점심 도시락이었다. 당시에 그래도 나는 부모 잘 만난 덕분에 도시락을 잘 싸가지고 다니는 편이었다. 흰 쌀밥에 계란 후라이 깔고 멸치복음에 콩자반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당시에는 최상급의 럭서리 도시락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내 똑같은 도시락보다는 그 구수한 냄새의 옥수수 빵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었고 그럴 때 마다 이 짱 친구의 그 옥수수 빵과 바꾸어 먹곤 했는데, 내 이 도시락의 힘은 커서 그 거칠고 안하무인 무법자 쌈짱도 내 앞에서는 완전 순둥이로 변했고 그 스스로가 나의 보디가드임을 온 학교에 알리고 다녔다. 그래서 한 때 나는 본의 아니게 학교 쌈짱을 보디가드로 거느리는 특권을 누리면서 국민학교를 다녔었다. 6학년 때 반이 갈리면서 그 친구는 다른 반이 되어서 도시락을 바꾸어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도 그 친구는 끝까지 나의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저녁 뉴스에 한국의 한 도의회에서 전 학생 무료 급식을 실시하고자하는 예산 통과가 압도적으로 부결 되었다 한다. 이제는 전쟁이 끝 난지도 50여년이 지났고 우리 한국도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점심을 못 싸가지고 오고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어린이들이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교실에서 누구는 값비싼 최고급 음식을 먹고 누구는 눈치 보면서 급식쟁반 앞에 큰 절을 하여야 하는 그 눈물겨운 안쓰러운 광경을 이제는 그만 멈추도록 나눌 마음이 없단 말인가? 아니면 뉴스 해설자의 말대로 정치적인 상대가 싫어서 아이들 밥그릇을 담보하는 것인가?
부모 잘못 만나고 나라 잘못 만난 죄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그것도 먹을 것 가지고 너무 인색하거나 정치적 색깔을 따지는 옹졸함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좀 더 있는 우리들이 없는 아이들과 점심 도시락 하나는 똑같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가지 또 미안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짱 친구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굵은 뼈마디의 큰 덩치에 우락부락 하지만 왠지 서글퍼 보이는 그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그날 뉴스를 들은 후 식사 시간이면 너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친구야, 보고 싶다! 오늘 점심 많이 먹었냐? 만나면 내가 진하게 한 번 쏠께! 나비
전.. 무상급식 반대입니다.
단지 급식문제로 부모의 역할을 논할수 없지만..
무상급식으로 부자학생과 가난한 학생들의 차별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도시락을 싸갖고 가지 않고.. 단체급식을 합니다.
매월 급식비를 냅니다.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들을 위한 도움이 있는걸로 압니다.
현명한 선생님의 지도가 있다면 급식비 지원받는 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되거나 챙피함을 당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무상급식이 복지의 전부는 아닙니다.
복지예산이 너무 많아 모두 무상급식한다면 대환영입니다.
전 전 학생 모두 무상급식 반대합니다.선별 무상급식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