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만 알 아도

by fallbaram posted Jan 24, 2014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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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창세기의 중간에서 거의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대기가 여러가지 사건속에서

상세하게 소개되는 구약의 핵심 인물이다. 구약의 핵심 인물이 의인 에녹도 아니고 욥도 아니고 다니엘도

아니고 넘어뜨리는자 발뒤꿈치를 잡는자라고 알려진 성깔 더러운 사기꾼 성향의 야곱이다. 그는 속이는자이다.

그의 행동이나 성향은 장확하게 사단 (옛뱀)을 빼닮은 사단의 축소판이다. 그런 그가 태어날때 사단이 기뻐해야

마땅할 터이나 오히려 하나님이 그 형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는 선언과 태어나기전에 택했다는

엉뚱한 하나님의 못마땅한(?) 처사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남 (하나님)의 자식 (아담)을 빼앗은 사단.

그 사단이 자신의 형상을 닮아서 태어나는 죄의 자식 (야곱)을 다시 빼앗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의 핵심이다.

우리도 하나님 품으로 빼았겼는가?

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의 제목이기를 바란다.



자세히 창세기를 읽어보면 야곱이 속이는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은 훗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연상케하는 암시를 뿌리며 따라 다니셨다.


장자의 권리를 살때

그 붉은것 (포도주-팥죽) 과 또 떡을 주어 먹고 마시는 두개의 행동이 있었다.


아버지를 속일때 이삭은 염소고기만 먹지 않고 포도주도 거기 있어서

성경은 이삭이 먹고 마셨다고 기록했다.


삼촌 라반을 속일때 교미를 하는 양앞에다가 버드나무나 신풍나무의 껍질 (십자가에서 옷을 벗긴 주님)을

벗겨서 그 흰색으로 얼룩덜룩한 양 (용서한 죄인들?)들이 나오게 만들었다. 너무 비약했나?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것은 야곱을 태에서 선택하고 사랑한 하나님의 의도를 순수 예정론으로 끌고가는 일에서

한번은 멈추어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

하나님의 그 선택속에는 당신의 독생하신 아들의 죽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예정이란 죄인들을 택하는 예정이 먼저가 아니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겠다는것이

먼저 있었던 예정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예정론의 본질이지 죄인을 골라내는 것이 예정론의 본질이 아니라는 나의 생각이다.

그런 철저하게 죄인인 자를 택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연기하도록 하시는 그 배경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에겐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두 여자 (레아와 라헬)를 아내로 주셨다. 칠년이라는 봉사 (섬김)의 댓가로.

하나는 구약의 교회 (광야교회)이고 하나는 신약의 교회이다. 하나는 불임의 상태에서 야곱에게로 왔고 하나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낳는 여인으로 왔다. 하나는 안질이 좋지 않아서 야곱의 사랑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으나

하나는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구약의 교회 (레아)는 율법의 행위때문에 야곱의 눈과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암시인듯하고

라헬은 용서받은 모습의 교회로 사랑받는 아내였다는 암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야곱은 그 두떼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죽음보다 더 강하게 마주쳐야할 형 에서와의 대면이다.

그 해결을 놓고 생각해낸 야곱의 전략은 두 떼중 하나를 먼저 보내고 그 무리속에 귀한것들을 들려서

에서를 달래보려 했다. 십자가 이전에 미리 건너간 구 이스라엘을 의미함이다.

그들에게 들고 가게한 귀한것들이란 율법과 율법의 행위일 것이지만.


야곱의 생각과 행동과 소원은 늘 캄캄한 죄인의 그것이었다.

속이고 가로채고 그리고는 달아나는 잔꾀! 그 시간들은 캄캄한 밤 (죄만 존재하는)의 시간들이었다.

이 세상 임금에게 속한 시간들어었다.

그 시간에 (그러나 야곱의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해결책이 육신으로 그에게 와서

야곱의 잔꾀와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의 계획이 서로간 밤이 새도록 씨름하게 된다.

야곱과 씨름하기에 적당한 몸으로 오신 그 성육하신 예수의 표상.


새벽이 오고 있었다.

어둠을 대표하는 죄인 야곱이 이길 수 없는 일생 최초 그리고 최대의 완강한 그 무엇 (빛-낮)을 깨닫기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이다.축복이란 그가 속이고 넘어뜨리고 달아나면서 얻는 소산이 아니라 누구에게선가

그냥 받는것임을 깨닫는 시간이 새벽이다.

빛이 어둠을 뚫는 시간이다.

요단강 (얍복강)의 건넘이다.

거듭남이다.

야곱이라는 속이는자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자가 되는 시간이다.

이름을 묻는 야곱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지않고 자신의 이름을 야곱에게 주는 장면을

놓지지 말아야 제 2편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야곱은 영적으로

넘어 뜨리는자

붙잡는자

그리고 속이는자가 아니고

설득하는자가 되는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믿음을 가졌는가?

아니면 야곱의 환란을 대비해서 지하실에 깡통음식을 잔뜩 쌓아 놓았는가?

그 도망하는 날이 안식일이 될까봐 걱정하고 있는가?

야곱의 환란은 당신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야곱의 환란은 지금있는 일인가 미래에 있을 일인가?


그 일 이후에 야곱에게 일어난 두가지 뚜렷한 현상이 있다.

그가 속이고 넘어뜨리고 달아난자들과의 대면이 마치 하나님을 만난것처럼

만남이 바뀌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몸같이 하라고 부탁한 또 다른 예수들에게

해야할 우리의 미션이요 자세다.


그리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형 에서에게

식구들과 짐승들의 행보대로 천천히 가자고 오히려 형을 달래는 모습이다.


율법에 찌들면 형제들의 연약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은혜를 받은자는 그들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것이 요단강의 건넘이다.

새벽을 건넌자 들이다.


이 야곱을 닮은자 또 하나를 신약에 소개하고 있다.


끝으로 십자가에 들어간자는 자신이 예정된자 속에 포함된 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것이다

이 아침에 민초에 기쁨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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