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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 / 주현절 넷째 주일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 1

마태 10:10-17

 

곽건용 목사

 

믿음이냐 이성이냐?

 

많은 기독교인들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느낍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성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느낍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교회에서 배우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우주가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진 작은 물질과 공간이 약 150억 년 전에 대폭발을 일으켜 만들어졌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람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화해왔다고 가르칩니다. 이에 반해서 교회에서는 세상은 약 6천 년쯤 전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하루는 스물네 시간 하루를 가리킵니다.

 

이 둘 사이에는 오랜 기간 갈등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일반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진화론을 가르칩니다. 반면 보수적인 교회 또는 근본주의 신앙으로 무장한 교회에서는 진화론은 전혀 근거가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우주는 창세기가 전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6천 년 전에 엿새 동안 만드셨다고 지금껏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배운 걸 그대로 믿는 학생은 학교에서 과학과목 성적이 좋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상상해봅시다. 엿새 창조론을 글자 그대로 믿는 목사가 자기 자식에게 그런 믿음을 강요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는데 그가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고 그것에 대해서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해봅시다. 아이가 얼마나 큰 혼동을 느낄까요? 아빠 말을 따라서 시험문제의 답안을 작성한다면 아이의 과학 성적이 좋을 수 없겠지요. 그렇게 되면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비록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믿음을 지켰으니 잘 했다고 칭찬할까요, 아니면 창조론은 교회에서나 통용되는 거지 학교에선 배운 대로 쓰라고 말했을까요?

 

창조론이나 진화론에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저는 종교학과 과목을 많이 택해서 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신학교에 진학해서 목사 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회학과로 과를 정하고 나서 첫 학기인 2학년 1학기 때였다고 기억하는데 그때 저는 종교학과에 개설된 기독교 윤리 과목을 택했습니다. 그 과목 교수님은 당시 서울의 한 대형교회 장로님으로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신학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교수님의 수업이 당시 제 신앙과 맞지 않아서 상당히 고민을 하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강의가 성경과는 동떨어진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엉터리 윤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간고사 때 수업에서 공부한 대로 답을 쓰지 않고 제 맘대로 답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저를 불러서 한참 얘기를 하셨지요. 그때도 저는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아마 저절 설득하길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낙제가 두려워 기말고사 때는 교수님이 원하는 답을 썼는데 겨우 C 플러스를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는 사람들에게 묻지도 따지지 말고 믿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억지로 믿으라고 가르쳤지요. 믿어지지 않는 것이나 믿기 어려운 걸 믿을수록 더 훌륭한 신앙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것이 먹혔습니다. 어렸을 때니까 그랬지만 자랄수록 갈등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지식이 쌓이고 이성이 발달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것에 의심이 생기고 지식과 신앙 사이에, 지식과 이성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교회에서 잘 자라온 아이들 중에 대학 가서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버리는 아이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 미주한인교회 경우에는 교회의 지나친 보수성 때문에 더 그렇긴 하지만 이는 어디나 마찬가집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열린 세상인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믿음을 강요받았음을 알게 마련이고 그에 대한 반발로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서구세계에 일어난 변화

 

그런데 이런 일이 어린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어찌 보면 서구세계 전체가 이런 일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할 분이 있을 텐데 이런 뜻입니다.

 

서구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였습니다. 유대교를 비롯해서 소수종교들이 있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가 큰 세력을 갖고 있어서 소수종교들의 영향력은 미미했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른바 제3세계의 종교들도 서구세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서구인들은 과거에는 알 필요가 없었던 ‘미개한’ 사람들의 종교가 의외로 깊은 영성과 윤리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불교입니다. 서구인들, 특히 서구 지식인들은 불교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습니다. 여기엔 서구 내부의 이유가 있는데 그건 이런 겁니다. 서구세계가 양차 대전을 치른 후 매우 깊은 정신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치르고 나서 자신들의 정신적 유산에 대해서, 특히 종교적 유산과 전통에 대해서 고민하고 회의하게 된 것입니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런 엄청난 전쟁을 치른 걸까?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왜 이런 엄청난 비극을 막지 못했을까?’라는 회의 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이런 고민과 회의의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황했습니다. 이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종교가 서구세계에 알려진 겁니다. 그 중에서 특히 불교에 서구 지성은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세계에 알려진 불교에는 기독교에는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우선 불교는 믿기 어려운 것이나 믿을 수 없는 걸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서구 지식인들이 불교에 매력을 느낀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가 종교 같지 않았다는 겁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요? 불교가 종교 같지 않아서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불교에는 제도적 속박이 없다는 점도 한 몫 했고, 불교가 외면보다는 내면을 강조하는 종교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불교는 사람의 이성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계시를 강조하기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불교를 믿기 위해서 지성을 희생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기독교는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기독교는 보편적인 것보다 특별하고 특수한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와 반대되는 접근을 해왔던 셈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긍정하고 동의할 보편적인 윤리입니다. 곧 어디서 누가 이 말을 했든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라는 겁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게 보편적 윤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십계명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렇듯 기독교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여서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진리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계시보다는 관찰과 실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책들

 

그런데 이 ‘계시’란 것이 참 묘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걸 의도하시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사람 편에서 보면 계시에는 수동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을 가리키므로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걸로 여겨집니다. 곧 계시는 하나님이 주시면 받을 수 있고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원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계시를 하나님이 주셨어도 사람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반면 깨달음은 사람 편에서 능동적으로 노력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불교에서만 통하는 얘기가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은 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깨달으려면 사람이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깨달음 역시 넓게 보면 성령의 인도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 편에서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깨닫기 위한 노력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경전을 열심히 파고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명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며 갑자기 깨달음에 이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어느 것이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는 믿음에 있어서 깨달음의 측면은 강조하지 않고 계시의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이런 교회의 태도와 입장이 성경 가운데 몇 권을 덜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잠언, 전도서, 욥기를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교회 다니면서 이 세 권의 책을 진지하게 공부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 성서학당에서 세 권의 책을 깊이 있게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제 질문은 여러분이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도 그랬냐는 겁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잠언을 인용합니다. 전도서는 그에 비해 덜 인용하고 욥기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구절 말고는 거의 인용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세 권의 책을 진지하게 공부하신 적이 없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 동안 지혜문학은 오경이나 예언서에 비해서 확실히 홀대를 받아왔습니다.

 

이런 오랜 흐름에 변화가 생긴 때는 불과 7-80년 전인 20세기 중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혜문학에 대한 서적과 논문과 글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지혜문학을 그렇게 홀대했을까요? 그것은, 지혜문학이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신학적 내용과 윤리를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과 윤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혜문학은 계시에 의존해서 신앙을 갖는다고 말하기보다는 관찰과 경험과 실험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잠언은 부지런하게 일하면 부자로 넉넉하게 살고 게으르면 가난하게 산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 어디어디를 펼치라고 말하지 않고 들에 나가서 개미를 관찰하라고 가르칩니다. 개미를 관찰하기만 해도 이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혜문학은 이렇듯 관찰과 실험과 경험을 강조합니다. 곧 사람 편에서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러데 성경을 잘 읽어보면 이와 같은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전체에 고루 퍼져있습니다. 물론 지혜문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세상 살아가는 지혜에서 뿐 아니라 신앙에도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그 동안 교회가 이 점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모든 걸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알 수 있다고, 사람 편에서는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고, 그런 노력을 하는 건 올바른 신앙에 어긋난다고까지 가르쳐왔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이 때때로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하느냐!”라며 듣는 사람들을 꾸짖으신 얘기를 만납니다. 이런 꾸짖음을 일반 군중들에게만 하신 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하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자들이 이 꾸짖음을 더 자주 들었습니다. 만일 깨달음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면, 곧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꾸짖음은 부당하지 않습니까? 깨달음이란 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면 사람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지요. 그런데 예수께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것은 깨달음이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일임을 예수께서는 잘 아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에 깨달음의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깨달음이 불교 용어라고 그것을 배척하기에 바쁩니다. 깨달음이 믿음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한 부분인데 그걸 모르니 믿음이 온전해질 리 없습니다. 깨달음은 신뢰와 더불어 믿음이라는 수레가 굴러가게 하는 두 바퀴라고 저는 지난 주일에 말씀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대한 얘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어차피 깨달음에 대한 설교를 몇 주에 걸쳐서 한다고 했으니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갖고 하는 설교는 다음 주일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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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관. 2014.02.08 12:35
    잘 읽어 습니다.
    결국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깨달코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군요.
    깨달음 을 주셔서 감사 합나다.^^
  • ?
    김주영 2014.02.09 01:05
    언제나처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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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burtra 2014.02.12 00:32
    I look forward to reading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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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lke 2014.02.12 10:31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항상 저보다 한발 앞서 가네요. 제가 추구하는 동서양 신학의 만남을 이미 목사님은 이루셨나 싶습니다. 저는 불교 (불교는 잘 몰라서) 보다도 유교와 도교에 더 관심이 많은데.

    요즘 바울서신서와 초대 교부들의 신앙을 공부하는데, 이미 그때부터 서양 (어거스틴을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파)과 동양 (크리소스톰을 비롯한 안디옥파) 의 사상의 줄기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더욱더 골이 깊어진 느낌입니다.



    김원일 교수님,
    곽목사님 설교를 좀더 자주 올려 주시지요. 목사님이 퍼온뒤 부터는 향린교회를 방문을 안하고 이곳에 설교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두분다 감사드립니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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