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살다가 바보처럼 가는 목사

by 김균 posted Feb 15, 2014 Likes 0 Replies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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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결혼식처럼

평생을 몸바친 교단에서

번듯하게 은퇴식 하고 싶을 거다

모두들 다 그랬으니까


내가 그만 두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먹여 살린 목사 구경 못한 교회야 어찌되건

자식들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해서

손자재롱이나 봐 주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간혹 젊은 목사들에게 잔소리나 하면서

설교 시간 배정해 주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나팔불면서

옛날 "나"를 못 잊어서 새로운 일거리 만들기 바빴을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비슷하게 하고 살아가잖아

남들 하는 만큼 하고 살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잖아


지난 주말 대구에 갔다

태근이 이 목사 어찌하고 있나 보려고 말이다

마지막 6개월 교회 청소하고

은퇴식도 없이 떠나는 고별 설교 하나로 마치고 있었다

(은최식에 가서 수건 못 얻어오긴 처음인데 집에 왔더니 집사람이 수건 하나 못 얻어왔어요? 하고 물어서

신경질은 냈더니 딸애가 아버지 신경질은 왜 내세요? 한다)


수건이 준비 안됐으면 휴지라도 하나 주지

마지막을 그렇게 시무하던 교회에서 고별 설교로 마쳤다

평생을 특별하게 살아가더니 마지막까지 특별하게 하는구나

실패한 목회자라고 자탄하지만 그건 자찬이다

아무리 봐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실패한 것 특별하게 꼽으라면 합회장도 한 번 못 해보고 옷을 벗는다는 것인데

그게 무슨 감투냐?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집으로 가는 길에 들린 교회에서 들은

그의 설교 때문이었다

나보다(?) 설교 잘 하는 목사가 있다니

아니 나보다 더 잘 예수를 설명하는 목사가 있다니

거기에서 뿅 가는 바람에 30년 이상 친구처럼 동생처럼 지났나보다

그가 적은 설교노트 빌려서 우리교회 집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인생사 대소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게 의논하고 지났다


재림교회 목사가 되면 죽을 때까지 입을 닫아야 할 일들 많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 대신 내가 더 떠들어 주려고 한다

주님의 손 잡고 남은 세월도 같이 가라

새로이 맡은 교회에서는 현직에서 하던 것보다 더 열심을 내도 좋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하늘은 꼭 모든 것을 신원하신다는 내 신앙의 목적을 그도 믿기를 바란다


고별설교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비록 수건 한 장 못 얻어도

수건보다 더 좋은 말씀 하나 건졌으니 기뻐하시기 바란다

제수씨인 장여사도 건강하시기를

조카들인 두 딸도 올해는 더 재미있는 해 되기를


바보처럼 살다가 바보처럼 가다가도

길에서 진주 하나는 주울 수는 있다

마13장의 비유가 통하는 남은 해 되기를


어제 올라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사 마신 핫식스 덕분에

수면제를 먹고도 새벽 3시반까지 말똥말똥했는데

오늘 등산 갔다가 힘에 붙여서 중간에서 내려왔다

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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