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by 빛과 어둠 posted Feb 17, 2014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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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5)

 

 

          사람은 아담의 타락한 생명을 받고 태어납니다. 

          타락한 생명이라고 해서 나쁜 일을 일삼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생명의 특징은 오히려 선한 것을 추구하여

          높은 이상적 삶을 실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높이고 만족을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며

          스스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삶이란, 

          자기 정욕에 따라 거짓과 사기, 속임, 살인 등과 같은 부정적 모습도 있지만

          높은 도덕적 삶을 추구하며 윤리를 실천하여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고 높일만 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상적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삶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타락한 삶은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악한 모습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절대적으로 선한 이도 없고, 절대 악한 자도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거룩한 삶은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자신들이 어두움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빛된 삶이란,

          선하고 의로우며 사랑과 자비가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것이 어두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추러 오셨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삶이 빛된 삶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의로운 삶을 권장할 만한 것으로,

          대신에 악하고 불의한 삶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악을 아는 지식에 근거한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같은 사람들의 판단이 어둠에 근거한 것임을

          사람들로 깨닫게 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빛된 삶임을 알고 있고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옳은 삶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는 빛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이 있었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기에 힘쓰고 또 그같은 삶을 권장하는 것이

          사람들은 옳다고 인정하거나 칭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이란 실제로는 죄와 악에 해당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선과 악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삶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며 살았지만

          그들의 내면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을 비추셨습니다.

          또한 간음하다 붙들인 여인을 돌을 던짐으로 정죄하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내면의 악을 드러내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간음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음욕을 가지고 이성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며 그들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셨습니다.

          또한 그 형제를 미워하기만 해도 이미 살인한 것과 같다는 말씀도 역시

          겉으로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으로 미워한다면

          살인죄와 동일하다는 말씀으로 살인자의 본성이 있음을 비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통해 유대인들의 어두움을 비추셨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외적으로 흠없는 삶을 사는 것이 빛된 삶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의 외적 삶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죄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리새인에게 다음과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6)

          많은 사람들이 예배와 기도에 열심을 내어 행하는 것이

          그들의 안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행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고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와같이 생각하지만 그리스도는 먼저 안을 깨끗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예배와 기도, 말씀과 전도에 열심이 있을 뿐아니라

          실제로 죄도 잘 짓지 않고, 양심에 가책을 받는 조그마한 죄의 행위에도

          곧 바로 회개기도를 하기 때문에 혹시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내면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선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치명적인 교만은

          자신이 선한 마음과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일들로

          자기 만족을 삼고, 자신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여

          그 분을 위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자신이 의롭게 여기는 것은

          내면을 지적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 있는 것입니다.  

 

          내면의 어두움을 밝히러 오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어두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종교적 삶을 멈추려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두움의 삶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문제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그처럼 기도했다고 해서

          자신이 의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제가 '먼저 안을 깨끗이 하십시오'라고 말했다면

          그는 저를 원수처럼 대할 것입니다. 어둠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의도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타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왜 어두움이라는 것일까요? 

          만일 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신 내면의 어두움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죄없는 자신들의 죄를 지적한다고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있고 경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신들에게

          누군가가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고 지적한다면

          그를 향해 곧 반발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 안에 어두움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 해도 또 못박을 것입니다.      

 

          아~! 참으로 답답하고 답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도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 못하더니,

          오늘날도 똑 같은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당신은 죄인입니다.

          십자가에서 당신을 죽음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믿고 있는 구원이나 영생은 없고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매주 예배를 드리며

          그 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다하여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십자가의 죽음을 실제로 거쳐야 할 존재입니다.

          당신은 아직 죄인입니다 !  어두움아, 깨어날지어다 !

          모든 자들을 어두움이라고 선포하시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남에게 죄를 지어본 적이 없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왔을지라도

          그는 사실상 어두움 가운데 살아왔었음을

          그리스도는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내면의 악한 본성을 보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신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은밀한 죄의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들을 정죄하던 자들이 

          은밀히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왔던

          그들의 은밀한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당신에게도 그같은 은밀한 죄가 있지 않습니까?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양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든지,

          또한 지금까지 아무런 죄없이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아왔었어도

          당신은 자신의 타락한 생명을 십자가에 버리고 죽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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