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정말 궁금한 세가지 질문입니다.
첫째 질문.
순전히 율법의 울타리 안에서 의무적으로 지키던지 아니면 십자가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게 되어
은혜로 지키던지 간에 지구 역사가 대강 육천년이라는 시간적 흐름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삼분의 일 (거의 1900년)이라는 대단한 시간의 공백을 남기고 한점 점같이 작은 소수의 무리를 통해서
다시 이 날을 율법으로 시작해야할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셨나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율법이 중심이 아니고 언약이 중심이 된 당신의 구원의 역사가 한순간도 멈춘일이 없이
쉼없이 흐르고 있다는 나의 생각은 이 문제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읍니다. 아니라면 하나님의 도도히
흐르고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구속 사업에 우리의 미련한 식견이 끼어들어 흠집을 내고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인가요?
두번째 질문.
안식일을 옹호하는 우리의 입으로 "주님 속히 오십니다" 라는 종말적 외침을 꼭 해야 한다면
그리고 신랑이 이미 당도했다는 밤중소리를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말세와 종말을 경험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리도 급박한 상황에서 왜 이 무리는 "허다한 무리" 라는 예언적 표현에서 매우 동떨어지게도 지구 인구수에서 백분의 1도 안되는
점 하나의 무리 (소수)로 이 종말을 지금 맞이하게 하셨나요?지금도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세번째 질문.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까지니" 하시면서 육신에 주어진 구약적 율법의 저주도 구약에서 그 육신의
이스라엘 (구 이스라엘)과 시작한 모든 연대의 예언적 유효함도 구약을 대표하는 요한에게서 끝을 내시고 (사실은 십자가에서)
요단강에서 다시 영적 이스라엘의 주어지는 영적인 율법 (사랑)과 새로운 연대 (BC 와 AD로 )로 끊고 구분했는데
왜 다니엘의 2300 주야는 그 육적 이스라엘에서 시작하고 끊어지지 안은채로 영적 이스라엘의 연대속에서 시퍼렇게
살아서 옛 술 (율법) 의 모양으로 연결되고 1844 년 이라는 날까지 거의 아무도 모르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지가
의문 스럽습니다. 이 교회가 굳게 믿는 이 예언적 연대 말고는 영육간에 짬뽕이 된 시간대로 요단강을 건너간 그런 연대는 없지
않습니까?
다니엘서는 구 이스라엘 (모세와 모세를 따르는 무리)의 성소와 관련된 역사와 예언이고 그 예언의 마침은 십자가(초림) 이며
계시록은 그 십자가에서 다시 시작한 교회 (어린양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역사와 예언이고 그 예언의 마침은 재림의 영광으로 끝이 나는것 아니었읍니까?
하나님 제가 아는 당신은 매듭이 분명하고 짜임새가 확실한 그런 분이 아니시지 않나요?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우리가 먼저 우리의 눈 (육적인 눈-문자적 접근)으로 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시간과 뜻을 헤아리고 거기다 맞추려 한 것인가요?(Eisegesis)
아니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알고 난 다음 그 성경에 쓰여진 것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나요?(Exegesis)
만약에 재림전에 잠시 우리교단으로 오셔서 한말씀 하신다면 혹시 이렇게 다시 말씀하실건가요?
너희가 성경에서 또는 예언의 신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그것을 자세히 읽고 해석하지만 그것들이 다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율법과 예언으로 달려 갈 지언정 도데체 내게로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입술로는 나를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 아이고,
지가 생각 하는 대로 하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씨부렁 했삽고......
율법을 모르고,
율법의 기능도 모르면,
다 이노마같이 방자해 진다 아이가!
고약해 지는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