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전도를 위한 말씀, 양육을 위한 말씀이 그것들이다.
전도를 위한 말씀은 간결하면서도 자극적이어야 하고 또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리고 다른 단체와 구별되는 교리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유의 말씀은 배타적이고 차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에 이런 특성을 가진 말씀을 부득불 전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씀로는 소속의 이동을 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말씀으로 인해 사람들이 전도가 된 후에 발생한다.
그들을 양육하는 데 쓰일 말씀을 가진 단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신자에게 전도를 위한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을 다시 전도현장에 내 보내는 제자리 양육법을 쓰기가 십상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버지 학교나, 취미활동 같은 문화적 행사로 결속력을 다진다.
그 결과 교회는 수적으로 발전하지만 타인과 타 단체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정서가 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이 특성이 바로 전도를 위한 말씀의 특성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보라.
타인이나 타 단체뿐 아니라 같은 신조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이해관계에 따라서 분열되어있지 않은가?
바로 전도형 말씀연구가 준 장기적인 영향이 원래 사랑과 융화의 종교인 기독교를 오늘날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켜버린 탓이다.
사상이 행동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작용을 중화시킬 방법이 담긴 말씀을 이곳에 소개한다.
교단과 교파와 교리와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전도된 사람에게 전도법을 다시 가르치지 않고 그 이후의 단계를 가르치는 것이다.
새신자를 장기간에 걸쳐 양육할 수 있는 말씀이다.
이 양육형 말씀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교우들 간에 사랑이 싹트게 하고 그래서 서로 융화하게 하는 그런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전도법처럼 재료가 금방 바닥나지 않는다.
끊치지 않는 샘물처럼 지속하는 힘이 있다.
예수님의 원래 정신인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거하는 모든 사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 외 모든 이방 사람들이 다 함께 할 수 있는 신비한 말씀이 여기 있다.
어떤 교단에 속해 있던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 말씀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가장 탐나는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전도형 성경연구는 아무리 오래 해도 양육이 되지 않지만 양육형 성경연구를 오래 하면 전도를 하지 않아도 양질의 새신자로 교회가 가득 차는 현상이 일어난다.
깊이 있는 신앙심과 교양과 지식을 갖춘 신자들이.
여기에 그 말씀의 일부 올려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많은 주님의 종들이 큰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룻기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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