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1974: 긴급조치 시대가 만들어낸 울릉도간첩단사건 이야기

by 백근철 posted Apr 10, 2014 Likes 3 Replies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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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간첩이 되었어요."

1974년 2월, 울릉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47명의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그들은 모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30일 동안 불법구금 상태에서 협박과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드러내려 하였지만, 어떻게든 간첩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수사관들은 애당초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붙잡혀간  이들은 잔인한 고문 끝에 결국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조서를 받아 적고 지장을 찍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건은 1974년 3월 15일, '울릉도 간첩단사건'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38년, 울릉도간첩단사건도, 그렇게 간첩이 된 사람들의 인생도 묻히고 잊혀졌다.

이 책은, 최창남 목사가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지금은 노인이 된 이들과 엄마아빠를 한꺼번에 감옥에 보내고 어린 동생들과 함께 차디찬 세상을 헤쳐 나온 딸을 만난 이야기이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그들 여덟 사람의 가슴속의 응어리를, '남겨진 사람들'의 억울하고

한스럽고 아픈 사연을 풀어낸 가슴 시린 만남의 기록이다.

-'울릉도 1974' 소개글중에서



성경을 건성으로 읽을 때는 "안식일을 기억하라, 지키라"는 말이 그저 날짜를 지키라는 말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내겐 해지는 시간이 중요했고, 안식일이라는 날을 모르는 사람들, 다른 날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억하라", "지키라"는 그 날 속에

"너", "아들이나 딸", "남종이나 여종", "객"과 같은 사람(아담)들이 있었다. 심지어 말 못하는 짐승까지...

"안식일"이라는 날이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기억하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백번 읽고 들으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대학로 눈꽃 극장에서 요즘 '울릉도 1974'란 책을 각색해서 '상처꽃, 울릉도 1974'란 제목으로 공연하고 있다.

(5월 31일까지 공연한다)

수녀님들이 많이 오셨더라.

우리가 날짜만을 강조하고 그 날짜가 왜 중요한지 예수식으로 말하기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가 무시해왔던 소위 '짐승의 세력'들은 예수가 사랑한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지켜내고 있었더라.


연극공연중에 김수환 추기경이 한 무기수에게 견진성사를 베풀며 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예수님도 2000년전에 국가보안법에 걸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이건 돈받고 하는 전도회가 따로 없다.


알폰소 링기스는 '아무 곳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라는 책에서 잡음을 제거하는 디지털 기술이 숭상되는 이 시대에 배경잡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합리주의에 저항하면서 부패하는 육체를 가진 고문희생자, 외국인, 순교자, 노숙인, 신비주의자, 광인, 심리병자, 절규하거나 신음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땅에서 100년 동안 해왔던 예언전도회는 

사회의 "배경잡음"과 같은 사회적 약자 혹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무엇을 해왔던가?

성소기별을 타협할 수 없는 핵심 기별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

우리의 교회는 과연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성소"가 되어주었던가?

역사가 김원이 1970년대를 힘겹게 살았던 여공들의 역사를 다룬 책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라는 책을 내고 있을 때, 

사회학자 김동춘이 6·25전쟁당시 대한민국정부에 의해 자행된 학살자들의 기록을 파헤친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책을 내고있을 때....

안식일기별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시금석이라며 절대적으로 믿고 받드는 우리는

사회를 향해 무엇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었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연극이었다.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온갖 기회를 얻었던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유대인의 교만이 세워 놓은 분리의 담은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이방 세상을 동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장벽은 무너져야 할 것이었다." 시대의 소망, '장벽이 무너짐'장 중에서 


연전에 김주영 장로님이 그랬다.

"십자가는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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