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말해야 합니다.어찌할 겁니까?

by 하늘의통곡 posted Apr 21, 2014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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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란 말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자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쿡쿡 막힙니다
그 잘난 어른들의 무책임, 무능, 탐욕, 거짓, 보신…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은 가라앉아버렸습니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안 돼, 안 돼. 아, 안 돼.” 아내는 오늘도 가위에 눌렸는지 잠꼬대입니다. 단조롭지만, 절박합니다. 잠시 뒤면 일어나 서성일 겁니다.

예전엔 그래도 뉴스를 보며 울었습니다. 눈물에 가려 화면이 흐릿해도 자꾸만 티브이로 눈길이 돌아갔습니다. 퇴임한 지 1년 갓 지난 전 대통령이 포악한 새 대통령의 압박에 떠밀려 죽었을 때도 그랬고, 대구 지하철 사고 때도 그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

 

온종일 생중계하다시피 하지만, 도저히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르고 마음이 뒤집어 집니다. 아이들이란 말만 들려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해 머리를 감싸지만, 혼란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치솟는 슬픔을 억누르다 보니 아내는 그랬나 봅니다. 잠 들었나 싶으면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중얼거립니다.

 

 

자리에 앉은 아내는 두 손을 더듬거립니다. 무언가 걸립니다. 남편입니다. 그제야 헝클어진 머리카락 손으로 다듬은 뒤 일어섭니다. 불을 켜지않고, 더듬더듬 둘째에게 갑니다. 그리고 첫째에게 갑니다. 그제야 안심이 되나 봅니다. 목젖을 타고 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와서는 숨 한번 몰아쉬고, 오른쪽으로 웅크립니다. 아, 오늘도 우리 가족은 무사합니다. 운 좋게도 살아남았습니다. 내 이웃이 어떻든, 그 아이들이 어떻든, 우리는 무사합니다.

 

 

한숨이 나오고, 뜨거운 것이 콧속을 지나 목젖으로 흘러듭니다. 제발 아이들을 먼저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데려가려면 십년 이십년은 더 산 우리를 먼저 끌고 가라고. 주문처럼 되뇝니다. 그 수밖에 어찌하겠습니까.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어쩌지.”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 아빠… 살아서 만나요.” 아이들의 이야기가 덜커덩덜커덩 귓전을 때리는 기차 바퀴 소리처럼 지나가는데 어쩌겠습니까. 어른이 돼 가지고… 이 죄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런 작별 인사와 함께 물속으로 잠겨가는 아이들을 지켜만 봤습니다. 교활한 어른들은 거짓말을 했고, 무지한 어른들은 우왕좌왕했으며, 약삭빠른 어른들은 눈치만 반짝였고, 탐욕스런 어른들은 권력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고, 권력에 미친 어른은 좌빨 운운하며 설칩니다. 상황 파악도 못한 대통령은 아이들 대부분이 선체에 갇혀 있는데, “생존자가 있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침몰하는 선박에선 여기저기 물기둥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솟구치는 물기둥과 함께 피가 역류하고, 분노가 머리 위로 솟구칩니다.

 

 

당신의 지시를 받는 군, 경, 관리들은 선체를 에워싸고 수수방관했습니다.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을 구조하고는, 용케 탈출한 이들을 떨어진 밤 줍듯이 줍고는, 배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누구도 선체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수면 위에 있는 동안 누구도 배 안에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물에 걸린 고래가 힘이 빠지도록 주변을 배회하듯이, 배가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물속에 잠기도록 지켜봤습니다. 떨어지는 꽃이어도 마음 아픈 법인데, 생때같은 아이들의 목숨이 수장되는 걸 그냥 그렇게 바라봤습니다. 해군도, 해경도, 군 지휘관도, 정부 장관들도, 국정원장도 대통령도 그렇게 1시간 반 가까이를 허송했습니다.

 

 

자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숨이 쿡쿡 막히고, 분노가 치솟는 건 그 때문입니다. 저렇게 모여 있고, 배도 떠 있는데, 설마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랴, 저들을 믿고 방관했던 것이 참담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모두 구조했노라던 첫 발표가 잘못된 것이어도, 구조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겠거니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온전히 뒤집어지고서야, 마치 처음인 양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거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구나, 거기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구나, 숨이 막혀 발버둥치며, 엄마 아빠를 부르겠구나.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구나. 아니 죽었을지도….

 

 

그와 함께 대한민국도 가라앉았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버리고 떠난 세월호처럼 대한민국은 버려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민을 배반했던 대한민국이지만, 이번처럼 그렇게 고문하듯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배반한 적은 없었습니다. 무능하고, 무지하고, 약삭빠르고, 위선적이고, 비루하고, 허접스러운 그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었습니다. 이전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배반했다면, 이번엔 무능과 비루함으로 국민을, 아이들을 버렸습니다.

 

 

내게 비비총이라도 있다면…. 저 하늘을 갈겨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 건 그 때문입니다. 속절없이 맑은 하늘, 유유자적 떠도는 바람과 구름이 밉습니다. 그보다 더 가볍고 반짝이는, 그 잘난 어른들의 허영, 공명, 탐욕, 무능, 나태, 속임, 무책임, 도피, 보신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싶은 것입니다. ‘세월호 선장스러운’ 이 땅의 그 모든 것들을 맞히고 싶은 것입니다.

 

 

동틀 때면 한 번 더 그 소리가 더 들릴 겁니다. ‘안 돼, 안 돼, 제발 안 돼….’ 이번엔 떠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있을 겁니다. 아이들아, 봄날 죽은 땅을 깨우는 신록처럼 빛나던 너희들은 어디로 갔느냐. 봄 가뭄 속에서도 싱그럽고 촉촉했던 너희들 영혼은 어디를 떠도는 것이냐. 너희들과 함께 신록도 꿈도 잃었으니, 비겁하고 비루한 어른들은 이 봄의 침묵과 하늘의 통곡을 어찌 감당할 것이냐. 아이들은 세상의 배입니다.

 

 

 배를 잃은 당신은 말해야 합니다. 어찌할 겁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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