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6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이들’이란 말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자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쿡쿡 막힙니다
그 잘난 어른들의 무책임, 무능, 탐욕, 거짓, 보신…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은 가라앉아버렸습니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안 돼, 안 돼. 아, 안 돼.” 아내는 오늘도 가위에 눌렸는지 잠꼬대입니다. 단조롭지만, 절박합니다. 잠시 뒤면 일어나 서성일 겁니다.

예전엔 그래도 뉴스를 보며 울었습니다. 눈물에 가려 화면이 흐릿해도 자꾸만 티브이로 눈길이 돌아갔습니다. 퇴임한 지 1년 갓 지난 전 대통령이 포악한 새 대통령의 압박에 떠밀려 죽었을 때도 그랬고, 대구 지하철 사고 때도 그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

 

온종일 생중계하다시피 하지만, 도저히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르고 마음이 뒤집어 집니다. 아이들이란 말만 들려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해 머리를 감싸지만, 혼란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치솟는 슬픔을 억누르다 보니 아내는 그랬나 봅니다. 잠 들었나 싶으면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중얼거립니다.

 

 

자리에 앉은 아내는 두 손을 더듬거립니다. 무언가 걸립니다. 남편입니다. 그제야 헝클어진 머리카락 손으로 다듬은 뒤 일어섭니다. 불을 켜지않고, 더듬더듬 둘째에게 갑니다. 그리고 첫째에게 갑니다. 그제야 안심이 되나 봅니다. 목젖을 타고 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와서는 숨 한번 몰아쉬고, 오른쪽으로 웅크립니다. 아, 오늘도 우리 가족은 무사합니다. 운 좋게도 살아남았습니다. 내 이웃이 어떻든, 그 아이들이 어떻든, 우리는 무사합니다.

 

 

한숨이 나오고, 뜨거운 것이 콧속을 지나 목젖으로 흘러듭니다. 제발 아이들을 먼저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데려가려면 십년 이십년은 더 산 우리를 먼저 끌고 가라고. 주문처럼 되뇝니다. 그 수밖에 어찌하겠습니까.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어쩌지.”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 아빠… 살아서 만나요.” 아이들의 이야기가 덜커덩덜커덩 귓전을 때리는 기차 바퀴 소리처럼 지나가는데 어쩌겠습니까. 어른이 돼 가지고… 이 죄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런 작별 인사와 함께 물속으로 잠겨가는 아이들을 지켜만 봤습니다. 교활한 어른들은 거짓말을 했고, 무지한 어른들은 우왕좌왕했으며, 약삭빠른 어른들은 눈치만 반짝였고, 탐욕스런 어른들은 권력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고, 권력에 미친 어른은 좌빨 운운하며 설칩니다. 상황 파악도 못한 대통령은 아이들 대부분이 선체에 갇혀 있는데, “생존자가 있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침몰하는 선박에선 여기저기 물기둥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솟구치는 물기둥과 함께 피가 역류하고, 분노가 머리 위로 솟구칩니다.

 

 

당신의 지시를 받는 군, 경, 관리들은 선체를 에워싸고 수수방관했습니다.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을 구조하고는, 용케 탈출한 이들을 떨어진 밤 줍듯이 줍고는, 배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누구도 선체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수면 위에 있는 동안 누구도 배 안에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물에 걸린 고래가 힘이 빠지도록 주변을 배회하듯이, 배가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물속에 잠기도록 지켜봤습니다. 떨어지는 꽃이어도 마음 아픈 법인데, 생때같은 아이들의 목숨이 수장되는 걸 그냥 그렇게 바라봤습니다. 해군도, 해경도, 군 지휘관도, 정부 장관들도, 국정원장도 대통령도 그렇게 1시간 반 가까이를 허송했습니다.

 

 

자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숨이 쿡쿡 막히고, 분노가 치솟는 건 그 때문입니다. 저렇게 모여 있고, 배도 떠 있는데, 설마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랴, 저들을 믿고 방관했던 것이 참담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모두 구조했노라던 첫 발표가 잘못된 것이어도, 구조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겠거니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온전히 뒤집어지고서야, 마치 처음인 양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거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구나, 거기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구나, 숨이 막혀 발버둥치며, 엄마 아빠를 부르겠구나.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구나. 아니 죽었을지도….

 

 

그와 함께 대한민국도 가라앉았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버리고 떠난 세월호처럼 대한민국은 버려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민을 배반했던 대한민국이지만, 이번처럼 그렇게 고문하듯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배반한 적은 없었습니다. 무능하고, 무지하고, 약삭빠르고, 위선적이고, 비루하고, 허접스러운 그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었습니다. 이전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배반했다면, 이번엔 무능과 비루함으로 국민을, 아이들을 버렸습니다.

 

 

내게 비비총이라도 있다면…. 저 하늘을 갈겨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 건 그 때문입니다. 속절없이 맑은 하늘, 유유자적 떠도는 바람과 구름이 밉습니다. 그보다 더 가볍고 반짝이는, 그 잘난 어른들의 허영, 공명, 탐욕, 무능, 나태, 속임, 무책임, 도피, 보신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싶은 것입니다. ‘세월호 선장스러운’ 이 땅의 그 모든 것들을 맞히고 싶은 것입니다.

 

 

동틀 때면 한 번 더 그 소리가 더 들릴 겁니다. ‘안 돼, 안 돼, 제발 안 돼….’ 이번엔 떠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있을 겁니다. 아이들아, 봄날 죽은 땅을 깨우는 신록처럼 빛나던 너희들은 어디로 갔느냐. 봄 가뭄 속에서도 싱그럽고 촉촉했던 너희들 영혼은 어디를 떠도는 것이냐. 너희들과 함께 신록도 꿈도 잃었으니, 비겁하고 비루한 어른들은 이 봄의 침묵과 하늘의 통곡을 어찌 감당할 것이냐. 아이들은 세상의 배입니다.

 

 

 배를 잃은 당신은 말해야 합니다. 어찌할 겁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0441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6685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3698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5494
10135 개혁자 그리고 개종자 로산 2012.03.21 1333
10134 [평화교류협의회] 안녕하십니까. 새해 문안 인사드립니다 평화교류협의회 2011.12.30 1333
10133 여기도 뜨시구(이번엔 예일대학 법대교수되시겟다) 동대문복지관 2014.04.05 1332
10132 이런 방송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머저리들 머저리 2013.07.14 1332
10131 도장에 새겨진 의미 5 蠶 修 2010.11.21 1332
10130 순수한 동성애가 있는가! 2 회개한 자 2013.11.21 1331
10129 결국 이렇게 될껄... 7 아리송 2012.12.28 1331
10128 누구 곡을 붙여 주실분 6 로산 2012.09.13 1331
10127 주 앞에서 자빠지기 로산 2012.05.29 1331
10126 이번 주 '기도와 독서와 토론으로 여는 평화에 대한 성찰' 프로그램은 펀치보울 방문 일정으로 쉽니다.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사)평화교류협의회 2012.04.30 1331
10125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 빠다가이님 2 김주영 2011.01.06 1331
10124 미국식 예수 재림. 그 첫 번째 이야기 1 김균 2013.06.16 1330
10123 제25회 남가주 연합 성가합창제 DVD가 나왔습니다 이태훈 2012.11.28 1330
10122 이 누리가 자기 집 뒷간이라고 생각하는 누리꾼들께 (나 뿔났다.^^) 18 김원일 2012.11.05 1330
10121 떠나자니 공들인 것이 아깝고 1 로산 2012.09.29 1330
10120 하루 42.6명꼴 자살…여전한 'OECD 1위' 오명 arirang 2012.09.08 1330
10119 한미 FTA= 뿔난 이유들 3 로산 2012.02.08 1330
10118 [부고] 강영옥 집사님 주안에서 잠드셨습니다 admin 2012.01.03 1330
10117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믿음 - 바람, 바다 님께 6 김주영 2011.12.03 1330
10116 내가 만난 예수(간증) 5-의료 선교 사업이 확산되어 감-최차순 정무흠 2011.07.20 1330
10115 from an auction site...on Dr. Koh student 2011.07.06 1330
10114 상식 밖의 전직 대통령 예우 2 인간극장 2010.12.31 1330
10113 [평화의 연찬 제92회 : 2013년 12월 14일(토)] ‘우리 민족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3.12.13 1329
10112 십자가만은 사기다! 3 섬그늘 2013.12.11 1329
10111 박 희관님 3 프로테스탄트 2013.11.04 1329
10110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시킨다더니. 1 김재흠 2013.06.19 1329
10109 ' 우리는 모릅니다' (뉴 타운에서 숨진 26 영혼을 보내면서) 2 edchun 2012.12.17 1329
10108 반신반인-희랍신화 같다 청설 2012.12.13 1329
10107 제 언니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요. 언니가 하루안에 애송시 안찾아오면 맞는다고 해서.... 언니 2012.11.26 1329
10106 향기나는 대화법 3 박희관 2012.11.09 1329
10105 일월산에서 만난 안식교인 2 지경야인 2011.12.10 1329
10104 병원에서 3 로산 2011.06.02 1329
10103 다름 하주민 2014.09.15 1328
10102 깡통들이여! 7 제자 2012.12.06 1328
10101 플라워님의 맷돌 2 김주영 2011.01.21 1328
10100 바이블과 알람 18 아기자기 2011.01.06 1328
10099 재미동포들도 시국 선언문 발표. 2 모퉁이 돌 2013.07.07 1327
10098 오늘 황당님께 질문 하나. 5 아리송 2012.12.22 1327
10097 이러지는 맙시다. 3 file 박희관 2012.12.01 1327
10096 찔레꽃 / 장사익 - 그의 찔레꽃은 '한'을 담고 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울었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목놓아 울었지" 1 serendipity 2012.11.18 1327
10095 노무현 청와대는 이런 조롱까지 받았다[조선일보 비판을 이해못하겠다는 분들은 꼭 읽어보십시오] 2 코리안 2011.06.23 1327
10094 [평화교류협의회] 회원 여러분께 2010년 새해 인사드립니다 4 명지원 2010.12.31 1327
10093 "안식후 첫날"(막16:2,눅24:1,요20:1) "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마28:1) 번역상 오류에 대해 46 김운혁 2014.02.25 1326
10092 또 내가보니-마지막 4 단계 fallbaram 2013.12.27 1326
10091 오늘 즐겁고 기쁜날 인가(커넥트컷 참사를 들으면서) 3 edchun 2012.12.16 1326
10090 잔나비님 민초스다 글 좀.... 12 박진하 2012.10.25 1326
10089 구원은 소유인가 존재인가? 2 정용S 2012.01.20 1326
10088 여자 짓밟기 1 김주영 2011.11.28 1326
10087 인터넷 익스플로어와 애플 사파리에서 민초 사이트 로그인이 되지 않을 때 방법 4 기술담당자 2013.12.12 1325
10086 모든 권리와 의무는 법으로부터 도출된다. 3 케로로맨 2012.11.24 1325
10085 원일님! 1 바이블 2012.11.17 1325
10084 민초마당 누리꾼 여러분 3 유재춘 2012.10.21 1325
10083 성경 바로 읽기 아브라함 1 지경야인 2011.12.11 1325
10082 아덴만 사건이 물고 넘어 간 일들 1 로산 2011.01.30 1325
10081 NocutView - 도올 김용옥 "박근혜, 쇼하지 말라!" 근원 2014.05.18 1324
10080 남영동 십자가 4 file 김주영 2012.01.07 1324
10079 우리가 새롭게 만든 신(2) 4 로산 2011.08.12 1324
10078 생각하며 보는 사진 / 그림 잠수 2011.01.21 1324
10077 그래 돌아라.. 끊임없이 돌아라.. 윤회의 삶이여 ~~ 2 푸른송 2012.10.04 1323
10076 루머에 멍든 사람들 3 로산 2011.01.13 1323
10075 김운혁씨의 주장에 대한 동중한 합회의 답변(퍼옴) 6 file 김운혁 2014.05.14 1322
10074 딱 걸렸다 이 넘 1 로산 2012.09.12 1322
10073 나는 어떤가 현민초 2011.07.20 1322
10072 머리가 단단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강철호 2011.07.19 1322
10071 나는 왜 대총회 결의를 더 존중하는가 ? 2 이동근 2010.11.23 1322
10070 수사권 조정???? 개나 줘 버리라고요 1 김균 2013.06.23 1321
10069 사라진 보석 잠 수 2010.11.21 1321
10068 트리오 님에게 드리는 (오래된) 답변 1 김원일 2013.11.12 1320
10067 이태석 신부님2 / 이태석 신부님과 평신도들 - "나를 울리고, 너를 울리고, 우리를 울리고, 세계를 울리고, 그리고 하나님을 울린(echoed) 이태석 신부님" serendipity 2012.11.11 1320
10066 - 후천 개벽(開闢)은, 어느누가 하나 -...《해월유록에서》 문 명 2012.02.15 1320
Board Pagination Prev 1 ...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