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X는 거룩한 행위일까?
내가 어릴 때 교회에서는 성에 관한 이야기는 터부시했다
그래서 내가 성에 관한 책을 읽은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요즘 생각해보니 참으로 늦둥이였다
요즘 아이들은 13세도 안 되어서 맨스를 한다는데
그 당시에는 16세가 넘어서야 맨스를 했다
그만큼 성에 대하여는 무지였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일처음 복을 주신 것이
금요일 저녁 성행위를 허용하신 것이다
“땅에 충만하라“ 하셨던가?
그래서 금요일 저녁을 거룩하게 여기던 우리들에게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을 거룩한 행위의 날로 여긴다는 것을 다 늙어서 알게 된 것이다
(일찍 알았다면 더 즐거웠을 건데 말이다 ㅋㅋ)
증언보감을 읽으면서
화잇 여사가 왜 수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길게 적었을까?
이 창피해서 남에게 말도 못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증언에 적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연을 먹어라“ 화잇 여사가 하신 말씀이다
즉 증언이라는 말이다
아연을 먹어서 뭘 할 건데?
여러분들은 다들 잘 아는 것이니 설명은 안 하겠다
요즘 눈님이 퍼 오는 증언을 간혹 읽으면서(절대로 다 읽지 않는다)
참 할 일 없는 분이다 하고 생각한다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는데 이제야 100년 전에 쓴 글을 가져 와서
욕을 버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화잇여사의 주위에는 이런 병적 환상에 젖은 분들이 제법 있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권면을 했으니 말이다
성적인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소돔이란 글자는 소도미에서 왔는데 남색하는 자라는 말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금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동성애 재림교인을
교회 못 나오게 금하자고는 못하겠다
성경의 역사는 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을 사랑해서 문제가 생겼다
이런 문제가 무슨 뜻인지 오늘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성적인 문제로서 사회규범이 무너지고
타락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화잇 여사는 남은 자들에게 이런 행위가 못 생기게 권면했는데
수음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배꼽을 잡았다
사실 내가 이 문제를 한 번 다뤄 보려고 증언의 글들을 뽑아 놨는데
지금 서울근교에 있으니 뽑은 것을 집에 두고 와서 그냥 쓴다
수음을 하면 머리가 나빠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신 화잇 여사를
오늘 의학자들이 얼마나 옳다고 할지 나도 모른다
그것 하면 이상한 병에 걸린다는데 우리 주위에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았지만 그것도 커 가는 아이들의 성적 성장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들 글을 읽으면서 일면 수긍하기도 한다
금요일 밤 성적 놀이가 거룩한 것일까?
우리는 평생 그런 생각 자체가 죄라고 여겼기에 선뜻 수긍이 안 가는데
유태인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거룩한 행사로 여겼다는 대목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게 거룩한 행사가 맞긴한가?
아니면 유태인들이 잘못 판단한 것일까?
나는 오늘도 그에 대한 확답을 모른다
그것이 거룩해 지려면 그 행위 자체를 거룩하게 해야 하는데
거룩하게 하려면 이래야 할 것 같아서이다
“여보 사랑해요”
“여보 시작할까요?”
“여보 시작합니다”
“여보 재미있습니까?”
“흥아흥아... ”
이게 거룩한 행위가 될 수 있다니 하나님 재미있으신 분이시다
그것도 거룩한 금요일 밤에 이루어지는 행위라는데 말이다
나일 먹으니까 별 소리 다 하고 있네
눈녹은 밭님 힘내세요
화잇 여사가 오늘 우리에게 색X가 거룩한 일이라고
거룩하게 이 일 하라고 힘내라 하시네요
(재림마을에서)
후배위는? doggy style이니까 인간이 견(犬) 수준으로 내려가면 안 될 것 같고... 엉덩이를 잡고 안고 하는 것은 상대를 안아주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하나님이 어여삐 보실 것 같고, 금욕을 하면 하나님이 장하다고 칭찬하실 것 같으니까, 욕구가 땡겨도 참고 참다가 지쳐서 하고..................... 이건 축복이 아닌 것 같다.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언젠가 유형환 목사님이 신혼부부들은 부끄럽다고 잠 자기 전에 기도 안 하고 자지 말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는데...... 거룩한 지는 모르겠고, 그거 하면서 거룩하다는 생각 떠올려 본 적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열심히 하면서 이거 거룩한건가? 짐승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짐승도 이렇게 하면서 새끼를 낳는데, 나는 새끼 낳는 것은 다 했는데, 무슨 즐거움으로 이걸 하지? 이거 꼭 해야하나? 아, 이걸 해야 배우자와 사랑을 확인하고 부부 관계가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풀고 하니까 하라는 것이로구나. 김균 님이 말씀한 것처럼 유대인은 안식일 밤에 그걸 하는 걸 기다린다 하는 걸 보면, 그걸 할 때는 마음이 편할 때, 스트레스 덜 할 때 하라는 거구나, 이런 깨달음. 이건 상직이지만......... 왜 주기적으로 이 욕구는 찾아오지?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 적당히 해야하는데 탐닉하면 안 될 것 같고............. 스님들은, 사막의 교부들은, 틱낫한 스님은, 달라이라마는 이 욕구를 어떻게 처리하지?
예수님은 이러한 욕구가 있으셨을까?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처럼 시험을 당하시고, 그들과 같은 수준에서 사셨기에 인간을 이해하셨고, 그런 분이시고, 그것을 이기셨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으니까 그분을 믿는 자마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난 궁금하다. 예수님은 이 욕구를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한 번도 느끼지 않으셨을까? 공생애 시작 전에 적어도 청소년 시절부터 29세까지 말이다.
김균 장로님, 여기에 대해 장로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너무 불경한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