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장지에 싼 그릇

by 김균 posted May 10, 2014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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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지에 싼 그릇

 

이런 이야기 시작하면

몇 사람 달려들어서 난리 칠 거다

내가 그것 알면서 오늘 또 한 번 건드려본다

일부러 그러느냐고?

아니다 절대로 일부러는 아니다

평소에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이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런 유의 글이 근심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난 내 신앙에 아무런 손해 보지 않는다

그만큼 내게는 열려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성을 매우 낮은 단계의 인간관계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1. 저속한 정욕

2. 동물적 속성

3. 음탕한 정욕

4. 음탕한 요구

5. 동물적 정욕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이 4개의 항목 가운데 3번인 음탕한 요구란 항목만이 눈밭님이 만든 단어이고

나머지 3개의 항목은 화잇여사가 사용한 단어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결혼이 이러한 단어를 상쇄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의학적으로(내가 보기에는 비의학적인 것 같은데)

20대는 주 몇 회니 30대는 그리고 70대는 월 1회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저속한 정욕이 되는 것인지

너무 자주 요구하거나 기술이 좋아서(?) 마누라가 녹초가 되는 게 동물적 속성인지

화잇여사도 분명한 답이 없다

그럴 것이 그분은 골골80을 살았으니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이

남편인 제임스목사와 문제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제임스 화잇이 누구냐? 바로 선지자인 하몬여사의 남편이고

화잇이란 성을 물러 준 남자며 직위는 목사이며

오늘 우리들처럼 한 성깔하고 남자 권위적인 사람이고

선지자의 등에 엎여 있은 적도 있는 평범한 우리의 신앙 선구자이다

 

우리는 우리 교단의 선구자들이 무슨 대단한 학자나 되는 것처럼 알고 있고

평범한 우리들과 전혀 다른 별개의 종족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들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싸우면서 전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지자도 호주로 보내는 간 큰 사람들이었다

거기다가 제임스 목사는 선지자의 남편이니 은근히 목에 기브스도 하고 다녔다

화잇여사는 아무리 선지자라도 한 집안의 여인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제임스 목사가 한 성깔 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lettiust님이 올린 증언에서도 위에 내가 올린 단어들이 자주 많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제임스 목사가 너무 심하게 요구했나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글이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이 없으면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그의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만드는 것은 순결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껏 하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동물적 정욕이다.“(2T 473)

 

내가 아는 한 분이 이랬다

“난 결혼 생활이란 성생활인줄 알고 결혼식하고서 1년간 매일 저녁 거시기를 했다”

얼마나 성에 대한 무지한 시대였으면 그랬을까?

그게 의무요 권리라 여겼다는 말이다

내가 웃었다

 

그런 세월을 우리는 살았다

한 쪽에서는 그것 많이 하면 여자가 몸 상한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 많이 하는 것이 자랑이요 의무요 권리라 생각한다는 거다

미국의 철로근처의 빈민촌에는 아이들이 가구당 평균 7명이라는 통계를 봤다

일을 하고 퇴근해서 할 일이 그것뿐이고 돈 아낀다고 전깃불도 끄고 자는데

수시로 지나가는 철도가 잠을 깨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시기 하는 것 이외는 여가선용할 거리가 없고

또 돈도 없으니 그런 것은 생각해 볼 수도 없기에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처럼

자식이나 줄줄이 낳는 것이다

 

그런 어려운 시대 이런 운동도 하지마라 저런 운동도 하지마라

운동이란 마귀가 만든 것이다 하는 소리에 교인들은 그 짓만이 유일한 낙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이 넘치는 교인들이 여자들 밤잠도 못 자게 했을 거다

그런 이야기 교회 오면 저들끼리 했을 것이고 그걸 선지자인 화잇여사에게도 했을 거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여자들을 괴롭히는 남자가 응징의 대상이 된다

동물적 정욕으로 여자를 괴롭히는 것은 죄다

물론 내게 그런 이야기 한 사람들이 다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대응했을 거다

앞에 말한 교인처럼 1년간 매일 거시기를 하면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한 여자가

얼마나 피곤했을까?

옛날 여자들은 밭일 집안 일 아이들 키우는 일 시부모 수발하는 일

거기다가 재수 없으면 시조부의 치매까지 모두 맡아서 했다

내가 아는 여 집사님이 자기 살아온 세월을 내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니 여자가 애 낳은 기계도 아니고 여자가 노예도 아니고

아이를 낳고 3일 후에 밭일을 나갔다는 거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허리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해서 지금도 고생한다는 거다

 

농사가 기계화되지 않았던 시절

사람 머릿수로 농사짓던 시절 우리네 여자들은 정말 고생했다

새벽에 기도하러 시부모에게 끌려(?)나와서 졸고만 있었다

그런 시절 화잇여사는 남자들의 졸열하고 비열한 여자 경시사상을

방종한 정욕이니 타락한 정욕이니 하는 비슷한 언어로 질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림교회의 초창기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여자를 어디 취급이나 하는가?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는 재림교회의 간 큰 남자들 보면 기도 안 찬다

성경이 뭐라했다고 핑계되면서 여자 목사제도도 반대한다

화잇도 선지자지 목사가 아니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여자 알기를

발끝의 때 정도로 여기는 남자들 보면 어떤 때는 같은 남자지만 반푼수 같다

3500여년 전에 기록된 성경절을 글자 그대로 믿는 재림교회 남자들

여자는 교회에서 종용하라 한다고 입 닫으라고 떠들어 대는 폼새는 못 봐준다

 

자 결혼해서 하는 거시기가 동물적 정욕인지 이걸 해석하려면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거시기를 할 적마다

이게 동물적인 속성인지 동물적 정욕인지 계산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그 짓 할 적마다 기도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쓴 글의 댓글에서 어떤 분이 이러셨다

“성관계 자체는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생존본능에 따른 동물적 행위일 뿐이지요.

다만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삶을 풍성하게 할수 있으니 그렇게 될 때에만이

거룩한 것이 되지요. 안식일에 성행위? 참 미쳐도 그렇게 미치면 곤란합니다.“

 

오늘날에도 성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가진 분들이 많다는 거다

요즘 곽건용 목사님이 쓴 하나님 몸 보기 만지기 느끼기 라는 책을 읽었는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리고 성경해석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연구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 뭐가 동물적 속성인지 법적 잣대가 없는 이상 구분할 수 없다

한 주일에 몇 번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년에 몇 번해야 하는지

그런 것 까지 교회가 간섭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로닉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100여년 전에 쓰여진 글로서 오늘 우리가 전쟁터를 만들 필요 없는데

그런 글까지 선지자의 강령으로 모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런 글을 오늘의 잣대로 사용해야 하는 분들이 있으니 그냥 두고 보자는 거다

어떤 구절은 오늘을 위한 것이고 내 맘에 안 드는 구절은 과거사이다 라고 한다면

그런 잣대도 맞는 거 아니다

그런데 그런 구절을 지금도 선호하는 분들이 우리 교단에 많이 존재한다는 거다

참 귀한 남은 교회여

공자의 도덕경에도 없는 구절

모세의 토라에도 없는 구절을 만들어서 어쩌자는 걸까?

혹시 유태인의 바다라는 그 책 탈무드에는 그런 구절 있을까?

동물적 습성 동물적 정욕 음탕한 정욕 이란 단어 말이다

골골80이 낳은 단어는 아닐까?

난 호기심이 많아서 오늘도 그렇게 읽는다

포장지에 싼 그릇이 어떤 건지 사람들은 모두가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그게 오늘의 성지식이다


(재림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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