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애들 죽음을 그만 이용하라! 이런 글도 읽어봐라.

by LA boy posted May 21, 2014 Likes 0 Replie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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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족과 세월호 

미국에 살다 한국에 나가면 미국서는 못 보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중 하나가 캥거루족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 집에 눌러 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 부르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
 
한국은 과속 차량을 단속하는 경찰을 거의 볼 수 없다. 그 대신 도로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차에 장착돼 있는 내비게이션이다. 차에는 없더라도 초등학교 학생에게까지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이 사실상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 없이 운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 내비게이션은 감시 카메라가 나타나기 수백 미터 전부터 “카메라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 방송을 여러 차례 해준다. 일부러 과속 티켓을 받기로 작정하기 전에는 걸릴 염려가 없다. 제한 속도보다 시속 수십 킬로씩 과속을 하다가도 그 앞에서는 얌전히 달리고 거기를 벗어나자마자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들 모습이 캥거루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주행 속도를 지켜 운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한국인들은 모두 캥거루인 셈이다.
 
더 새로운 것은 빨간 불 무시다. 시골 한적한 도로에 가면 사거리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이 부지기수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한적한 길인데도 좀처럼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신호를 어겨도 잡는 사람도 없다. 미국식으로 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시간만 손해 보고 괜히 바보 취급 받는다.
 
누군가 보고해 이를 조정해야 할 텐데 아무도 하지 않거나, 보고를 받고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묵살하는 것이 분명하다. 가만히 있으면 무사할 일을 주민 편의를 봐준다고 신호를 짧게 했다 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그 책임을 뒤집어쓸까봐 모른 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 보고, 어쩌다 잡히면 내가 잘못 해서가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됐다는 풍토가 모든 국민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한 달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부에서는 이를 보고 ‘악어의 눈물’이라며 ‘박근혜 물러가라’고 아우성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다. 어린 학생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사고 발생 직후 인명 손실을 더 줄일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수없이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번 사고는 그간 한국 사회가 수십 년 간 안고 있던 문제가 곪아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고물로 폐기될 배를 들여와 화물을 더 싣도록 개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규정보다 몇배를 더 싣고, 그러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까지 뺀 업주에다,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선장과 승무원, 이런 규정 위반을 눈감아준 감독 당국, 승객 구조에 성의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해경 등등이 캥거루 식 점프에, 빨간 신호 위반을 밥 먹듯 하는 국민 의식 속에 안존하면서 이런 비극을 빚어낸 것이다.
 
9.11은 엄격히 말하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테러 방지에 실패해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9.11 사태가 터진 후 여야를 막론하고 “부시 물러나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이에 앞서 카터 때도 그랬다. 이란에 억류돼 있는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미군 헬기를 보냈지만 때 맞춰 불어 닥친 모래 폭풍 때문에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해 오히려 구하러 간 사람만 8명이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카터 사퇴를 외치지 않았다.
 
일만 터지면 지도자보고 나가라는 어느 나라와는 달리 국난을 당했을 때는 일단 하나로 뭉치는 게 선진국 국민이다. 미국과 한국은 아직 여러모로 다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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